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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와 조동연의 사생활에 대한 이중적 태도(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2-22 17:51
조회
4551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김씨의 결혼 전 사생활은 검증의 대상도 아닐뿐더러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다.”


 “김씨가 유흥업소 접객원 ‘쥴리’로 일했다는 주장은 여성 혐오가 어떻게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지난주 하루이틀사이로 <한겨레>에 실린 사설과 칼럼의 일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이른바 ‘쥴리 의혹’은 검증 대상이 아닌 사생활이며, 여성 혐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나는 그 배경에 특정한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생활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 의혹이다


 ‘쥴리 의혹’이 왜 단순한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인 주제인지부터 (다소 지겨울 수 있겠지만) 다시 따져 보자. 이른바 쥴리 의혹의 개요는 재벌(조남욱 삼부토건 회장)과 검찰(양재택-윤석열)의 결탁에 여성(김건희)이 동원됐으며, 김건희는 이렇게 소개받은 검찰의 권력을 뒷배 삼아 엄마 최은순(윤석열의 장모)의 사업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대택씨를 비롯한 숱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법률적 다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만약 피해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희대의 권력형 비리가 되는 셈이다. 검찰 권력을 활용한 스캔들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의 주인공들이 대통령 부부가 되겠다는데 이걸 사생활이라고 묻어버려도 될까. 윤석열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검찰총장이 아니라 평검사였더라도, 끝까지 파헤쳐 진실을 밝혀야 할 공적 의제임이 분명하다.


 양재택 전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와 김건희씨의 특수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고, 김건희씨가 양 검사에 이어 윤 검사와 사귀게 되는 과정에 조남욱 회장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려운 정도로 취재가 이뤄져 있다. 이들의 만남이 시작된 장소가 라마다르네상스호텔 6층에 있었다는 조 회장의 특별연회장인지, 같은 호텔 지하에 있던 나이트클럽 볼케이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 호텔에서 ‘쥴리’라고 불리는 여성을 봤다는 익명과 실명의 인터뷰가 잇따라 나오고 있고, 이들의 기억은 김건희씨의 인상착의나 이력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김건희가 쥴리였고, 조남욱이 양재택과 윤석열을 소개해준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더 묻고 싶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사생활이라고 보호하고 여성 혐오라고 화를 내야 할까. 나는 당연히 취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건희가 ‘위조인생’을 살았던 이유


 김건희씨는 이른바 ‘쥴리 의혹’에 대해 석사, 박사학위 받느라 바빠서 “쥴리 하려고 해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번역한 이른바 ‘유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엉터리 박사라는 점이 드러났다. 강사 또는 겸임교수 지원을 위한 각종 이력서는 허위 경력이 워낙 많아서 거짓이 아닌 걸 찾기가 더 힘든 지경이다. 인생 자체가 위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런 거짓말쟁이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내가 말하고 싶은 논점은 아니다. 대통령 부인은 예산이 투입되는 공적인 자리이지만, 이수정 교수 말대로 국모를 뽑는 선거가 아니므로, 백번 양보해서, 거의 완벽한 ‘위조인생’을 살아온 거짓말쟁이도 퍼스트레이디가 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김건희는 무엇을 위해서, 왜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 사문서를 위조하면서까지, 경력을 만들고 학위를 따려고 발버둥 쳤을까, 라는 의문은 남는다. 원래 부지런해서였을까? 공부를 좋아했을까? 그렇다면 제대로 공부해서 진짜 경력을 만들지, 왜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을 속이기까지 했을까. 정말 왜 그랬을까?


 이것은 쥴리 의혹의 본질과 직결되는 물음이다. 나는 김건희가 어쩌다 접하게 된(그 입구가 조남욱 회장이었을 것이다)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학위와 경력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법대 출신의 재벌 회장과 역시 서울법대 출신의 잘 나가는 검사들이 어울리는 상류사회에서 내밀 수 있는 명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위조한 경력으로 얻은 명함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조남욱은 김건희를 ‘김 교수’라고 불렀고, 어느 순간 김 교수는 중앙일간지들과 유명 전시회를 공동 주최하는 반열에 올랐다. 김건희의 경력 조작은 신분 상승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가져다준 성공적 사기 행위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김건희는 ‘스폰’을 받지 않고 베풀었다


 나는 일부 진보 인사들이 쥴리 의혹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성형 수술에 대한 언급을 비롯해 여성 혐오적 성격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상당히 많은 사람이 쥴리를 술집 접대부와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볼썽사나운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당연히 비판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증거로 확인된 내용을 종합하면, 김건희는 양재택 검사로부터 이른바 스폰(경제적 지원)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베풀었다. 해외 유학 중인 양 검사의 처자식에게 돈을 보냈고, 엄마를 대동해 셋이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송금과 여행 모두 2004년에 있었던 일로, 정대택과 최은순이 한창 소송전을 벌일 때다. 일반적인 스폰 관계가 아니라 로비의 대가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조남욱과 김건희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였을 가능성이 크다. 조남욱은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 김건희를 활용했고, 김건희는 조남욱을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특히 김건희가 여기서 획득한 검찰 네트워크는 엄마의 비즈니스에 활용된 의혹이 있다. 요컨대 나는 김건희가 일반적인 술집 접대부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술집 접대부를 김 교수라고 부르거나 친구는 왜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사실의 영역, 믿음의 영토


 쥴리 의혹이 여성 혐오라고 주장하는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른바 ‘쥴리’ 논란의 기저에는 젊은 여성이 ‘육체 자본’을 무기로 삼아 권력자 곁을 차지하고 있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편견’이라는 단어다. 지금까지 취재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 ‘편견’이라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쥴리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거의 예외 없이 이 사안에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앞의 사설이 표현했듯이, 거론하는 것조차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내용을 잘 모른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추론의 영역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런데도 편견이라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것은 본인이 편견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무지를 믿음으로 뭉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의 대부분이 실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다. 직접 보거나 겪지 않은 사실은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억이 다를 때 발생한다. 누구의 기억과 주장을 채택할 것이냐에 이르면 사실은 믿음의 차원으로 전환된다. 누구 말이 더 신빙성 있느냐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기억을 토대로 사실을 확인해 나가는 기자도, 법대에 앉아서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결정하는 판사도 결국 누구 말을 더 믿을 것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엇갈리는 진술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결단이다. 자신이 평소 지니고 있는 신념이나 철학, 가치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행위다. 정대택과 김건희 가운데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역시 마찬가지다.


 예의 칼럼은 24년 전 한 번 봤다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의심하지만 <오마이뉴스>의 해당 기사 ‘김건희 “내가 쥴리 아니란 것 증명하겠다”…안해욱 “쥴리와의 만남 사실대로 이야기”(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5017)’에는 80대 체육인 안해욱씨가 이날을 특별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소상히 나와 있다. 태권도 대회가 서울 역삼동 국기원에서 열렸고, 대회 중 이틀 연속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나이트클럽에 갔으며, “나이트클럽에서 술 먹다가 호텔 회장에게 초대받은 것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어떻게) 기억이 안 나겠나”라는 것이다. 태권도 대회가 열렸던 날짜를 증빙하는 자료도 있다. 사실이라고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최은순과 정대택 중 누구를 믿느냐


 결국 ‘정대택 사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정대택씨 말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럿 있지만 이른바 쥴리 의혹을 처음 제기하고, 관련 증거를 상당 부분 찾아냈으며, 지금까지 줄기차게 싸우고 있는 사람은 정씨가 유일하다. 쥴리 의혹의 신빙성 여부는 정대택의 기억과 주장을 채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내용을 아는 분들에게는 불필요할 수도 있지만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생각이 다른 분들과 토론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확인된 사실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잘 아시는 분들은 건너뛰셔도 된다.)


 최은순과 정대택의 기나긴 송사는 2003년 ‘송파 스포츠센터’에 투자해 생긴 이익금 53억 원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최씨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정씨가 가압류를 청구했고, 최씨는 강요와 사기미수로 정씨를 고소하면서 비롯했다. 정씨는 똑같이 나누기로 약정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고, 최씨는 정씨의 강요로 약정서를 작성했다고 맞섰다. 사건의 열쇠를 쥐게 된 사람은 약정서 작성에 참여했다고 정씨가 주장하는 법무사 백아무개씨였다. 정씨와 백씨는 중학교 동창이다. 백씨는 약정서 작성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최씨 편을 들었고, 정씨는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백씨가 나중에 자신의 진술을 뒤집으면서 위증의 대가로 최씨로부터 정씨 몫인 26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3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소송이 벌어지던 시기에 최은순은 여러 차례로 나눠 백씨에게 2억원의 현금을 건넸고, 김건희 명의의 2억3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사실상 무상으로 팔았다. 돈으로 매수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13억 원 모두를 받기를 원하는 백씨와 2억 원과 아파트만으로 거래를 끝내려던 최씨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진술 번복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씨가 추가로 가져온 1억원을 백씨가 거부한 적도 있다.


5번 기소당하고 2번 실형을 산 정대택씨


 검찰의 개입 의혹은 여기부터다. 검찰은 백씨가 진술을 번복한 지 8일 만인 2005년 9월 30일 백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백씨는 2년의 실형을 살았다. 정대택씨는 5번의 기소를 당하고 2번의 실형을 살았다. 정씨가 최씨를 위증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최씨가 일부 혐의를 인정받아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도, 검찰은 정씨의 고소 내용 가운데 일부가 허위라는 이유로 정씨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다. 매우 이례적인 ‘인지 기소’다. 정씨가 두 번째로 실형을 산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10월이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지 한 달 만이었다. 이른바 검찰의 ‘고발사주’ 사건도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대택의 주장이 사실일 거라고 내가 믿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대택과 최은순의 동업 관계다. 송파 스포츠센터에 먼저 관심을 갖고 투자를 준비했던 사람은 정대택이다. 최은순은 정대택이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투자자다. 둘이 함께 투자에 나섰다면 수익금을 나누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최은순은 정대택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준 법무사에게 현금과 아파트를 줬다. 백씨의 위증과 진술 번복 사유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일방적으로 최씨 편을 들었다.


 정씨는 십수 년 동안 검찰 권력을 상대로 싸웠고 그중 한 명이 검찰총장이 되고 지금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는데도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단순한 집착이라고 보기엔 통한의 피눈물이 느껴진다. 나는 정대택 사건이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전형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검찰을 구워삶아 진실을 왜곡하고 재판부마저 농락한 사건이라는 말이다. 또한 최은순-김건희 모녀가 법을 이용해 재산을 불린 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내용은 <뉴스타파>의 보도 ‘윤석열 장모 사건…김건희 씨도 깊숙이 개입’(http://newstapa.org/article/_qx4L)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진보 언론의 고의적 태만


 이상의 내용은 <MBC>를 제외하면 모두 비제도권 또는 신생 매체가 취재한 내용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기성 진보 언론은 무시로 일관했다. 이들 신문은 김건희 허위 경력 의혹에 대해서도 타사가 보도하면 수동적으로 따라갔을 뿐 새로운 사실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쥴리 의혹은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의 가치 지향은 무엇을 보도(취재)하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보도(취재)하지 않는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한 사실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역)정파성이 그 배경에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당지 아님’이라는 알리바이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여 사실 취재와 진실 추구조차 게을리하는 고의적 태만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중도강박증이 유력 대통령 후보와 가족의 권력형 비리 의혹 자체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생활이 검증 대상이라니


 <한겨레>의 중도강박증은 심각한 상태다. 기계적 균형을 지키려다 선을 넘기도 한다. 혼외자 문제로 민주당 선대위에서 사퇴한 조동연씨 관련 기사와 사설이 대표적이다.


 “이번 조 위원장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이 민주당의 ‘부실한 시스템’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영입 이벤트에만 몰입하다 보니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사안도 검증하지 못해, 결국 당사자에게도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어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한 민주당이 외부 엘리트들을 영입해 상임선대위원장이라는 허울뿐인 자리에 앉히려다 사달이 났다”며 “부실한 시스템의 문제를 여성 혐오의 피해인 것인 양 어물쩍 넘어간다면 그것 또한 여성을 도구로 쓰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검증 미비’를 비판했다.”


 “무엇보다 조 교수의 ‘스토리’가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기본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요직에 발탁한 민주당 책임이 막대하다.”


 (위의 기사가 인용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대표가 며칠 전 국민의힘이 영입한 페미니스트 신지예씨였다. 본인은 얼마나 치밀한 사전 검증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중시해온 한겨레가 사생활을 검증하지 못했다고 정당을 비판하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정치와 사생활을 섞지 말라고 앞장서 싸우기는커녕 여야 모두를 비판하기 위해 (민주당 비판을 끼워 넣으려고) 최소한의 자유주의적 가치조차 던져버렸다. 이 기사와 사설은 조씨가 성폭행 피해를 밝히기 전에 보도한 것이다. 약간의 비약을 무릅쓰고 말하면, 결과적으로 한겨레는 성폭행 사실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했다고 민주당을 비판한 셈이 되어버렸다. 성폭력 사건에서 원칙으로 적용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르면 한겨레는 이 보도에 대해 대오각성하고 공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쩍 넘어갔다. 나를 제외하고는 내부에서 문제제기도 없었다. 이 글을 굳이 공개적으로 쓰는 이유다. 온 국민의 비난에 직면해 막다른 길에 몰린 여성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자녀의 인생을 걸고 폭로한 진실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민주당 정치인이 될 뻔 한 자의 인권은 짓밟혀도 되는 것인가.


 김건희의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사생활이라고 눈감고, 조동연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검증 미비라고 비판하는 이중성은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며 기회주의적이다. 독자들은 묻고 있다. 한겨레는 여전히 진보 언론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