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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분단 참사(慘事)(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0-20 17:34
조회
1057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분단 참사는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적대와 전쟁구조가 낳은 비극적 사건들을 일컫는다. 분단냉전체제가 빚은 재난이다. 분단 적대로 인해 발생한 인도주의적 문제도 분단 참사에 해당된다.


 분단 참사로 인하여 교전 쌍방은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하였다. 전쟁을 정지시키고 항구적 평화가 달성될 때까지 적대 쌍방의 일체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기 위한 조건과 규정에 상호 동의한 것이 정전협정(휴전협정)이다. 정전협정에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남북으로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후 정전협상 과정에서 생겨나 국제법 용어가 되었다.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지만 용어의 실현은 요원한 일이다.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희생과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단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뇌에 가득찬 국제법 용어는 그 실현을 위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용어를 떠올린 것은 평화협정의 필요성과 분단 참사에 해당하는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다.


 정전협정에서 적대 쌍방의 군 사령관들은 각 국 정부들에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정전협정 효력 발생 후 3개월 내에 고위급 정치회담을 소집하여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이해 당사국들 사이의 북미 간 2자, 남북미 간 3자, 남북미중 간 4자, 남북미중, 러시아, 일본 간 6자회담이 열렸으나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법은 도출되기도 힘들거니와 도출된 합의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적대 쌍방 사이의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위기와 갈등의 연속과정은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문제의 발생원인이 되었고 그 해결과정에서 적대 쌍방 사이의 정치적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모색은 교착 국면을 거쳐 일정한 합의를 도출하였으나 이후 합의 이행을 둘러싼 불신은 새로운 정치군사적 위기를 낳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분담 참사가 발생하는 무한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악순환의 반복 과정에서 적대 쌍방 사이의 의견불일치 해소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상호주의, 타협주의보다는 적대관계를 강화하는 일방주의와 군사적 대결주의가 심화되었다. 상호 군비증강에 대한 불신은 군비증강을 제약하는 정전협정 규정의 무효화로 이어졌다. 소련제 항공기를 몰래 반입하였다며 북측을 비난한 유엔군(미군)은 핵무기를 배치하였다. 적대 쌍방 사이의 극도의 불신이 작용하는 분단냉전체제에서 정전체제의 항구적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 정전협정의 준수와 이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간이 갈수록 정전협정의 각 조항들의 상호 위반과 체계적 파기만이 남았다.


 그나마 전쟁을 멈추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의 정전협정 덕분에 포로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문제인 포로송환의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전쟁은 2년이나 더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정전협상에서 포로교환의 방법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상호 양보를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기나긴 과정 동안 무수한 희생을 낳은, 밀고 밀리는 육박전을 벌인 고지전이 계속되었다.


 적대 교전 쌍방 사이의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참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적대 교전 쌍방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길은 정전협정과 같은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상호 수용 가능한 합의와 상호 동의에 의한 평화적 문제해결 방법 밖에 없다. 그것이 전쟁을 막고 분담 참사를 예방하는 길이다. 정전협정은 정치회담을 통한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예정한 잠정협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정치회담을 통한 평화협정의 체결은 이 땅에서 이적시되고 있다. 북 지도자의 참수와 북 정권의 격멸 및 평양 점령을 위한 군사작전 계획이 영구히 취소되기는커녕 은폐된 채로 훈련되는 상황이다.


 끊임없이 분단 참사를 발생시키는 분단냉전체제에서 오로지 적대와 대결을 추구하며 상호 이해와 타협 없이 일방적 주장만을 강요하는 일방주의가 이 땅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무서운 진리로 둔갑했다.


 북 주민과 북 사회주의 정권 일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북 사회주의의 일체의 산물 그 자체를 적대하며 부인하는 국가보안법이 분단 참사의 예방과 분단 참사로 인한 인도주의적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고 있다.


 서해 북측 인근 해상에서 북측 군인에 의해 피격 사망한 실종 공무원 사건에서 분단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상호 이해와 타협의 정신이 발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론은 일부에 불과하다. 오로지 상대에 대한 비방과 대결만이 난무한다. 서해 분쟁 수역에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정하기로 남북 간 상호 합의가 수차 이뤄졌음에도 의견불일치로 구역과 수역 설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근본원인이 되어 서해분쟁수역에서 발생한 이번 분단 참사를 교훈으로 남북 간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와 분단 참사를 예방할 공동의 노력이 재개되어야 한다.


 분단 참사를 빙자하여 상대방을 비방하며 적대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정전협상에서 군사경계선 확정을 둘러싸고 적대 쌍방이 지리한 교전을 이어간 것과 같다. 상호 일방적 해상경계선을 설정하고 이를 군사력으로 수호하고자 군사적 대결을 지속하는 한 제3의 연평해전과 제2의 연평도 포격전과 제2의 피격 사건과 같은 참사는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에는 실향민들이 군사분계선을 통한 안전한 귀향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이 있지만 단 한 번도 남북 실향민들의 귀향 문제를 군사정전위원회나 그 밖의 남북 간 협상에서 합의하고 이행한 적이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성과로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측으로 송환되었지만, 이는 일시적, 정치적 합의에서 비롯된 혜택일 뿐, 정전협정의 규정과 같이 실향민들의 안전한 귀향을 보장하는 남북 간 합의는 현재 없다.



정전협정 67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26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최근 조성길 전 대리대사 부인의 북한 송환 의사가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행을 원치 않았고 북에는 현재 딸이 살고 있다고 한다. 북송을 위한 국내법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단언컨대 국내법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국가보안법이 헌법과 국제법 위에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지옥의 땅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국가보안법 탈출죄로 처단되고, 이를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자들 또한 국가보안법에 한데 엮어 처벌받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남녘땅에서 감히 누가 북송을 거론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이 남쪽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이 국가기밀이 되는 국가보안법 아닌가. 남측에 정착한 탈북자의 이름 등 신상정보가 국가기밀이 되고 신변보호 보안경찰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화통일에 도움을 주는 국가기밀이 되는 데 북으로 송환되면 남측 탈북민의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가서 처형될 수 있고 신변보호 보안경찰의 생명마저 위태롭게 될 수 있다. 이처럼 국가안전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데 누가 감히 북송 주장을 한다는 말인가.


 북으로 돌아갔다가 재탈북한 이들이 전부 국가보안법 간첩죄로 3년 6월의 징역을 살고 나오는 파시즘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대법관들마저 국가보안법 앞에서 이성을 잃고 북맹으로 전락하여 공안의 일방적 주장에 사로잡혀 북 악마화와 적대의 논리를 확인해 주고 있는 마당에 북측으로 귀향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국 정부에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따른 보호신청을 한 경우 보호신청 무효를 주장하며 북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평양시민 김련희씨 사례와 북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유인납치 사건에서 익히 경험하였다.


 국가보안법으로 세뇌된 인식들에서 나오는 반응들을 보자. 북으로 돌아가면 이러나저러나 죽을 것이고, 남측의 자유로운 세상을 맛보고서 지옥의 땅에 돌아가겠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 아니냐는 조건반사적 반응은 북송 절대 불가의 세뇌된 여론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 북측으로 가겠다고 주장하는 자는 그 사람의 동기를 불문하고 이적으로 취급받는다. 브로커에 속아서 한국으로 입국하였다가 그리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언론에 보도된 김련희씨는 현재 국가보안법 수사 중이다. 온갖 종북몰이 딱지가 붙었다. 김련희씨가 브로커에 속아서 한국에 입국하였다고 하며 단식투쟁까지 하였지만 국정원 조사관들은 돌아갈 방법이 없다며 오히려 남쪽에 온 것이 북에 알려지면 북의 가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다는 황당무계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 없이 한국 땅에 정착 후 여권이 만들어지면 제3국을 경유해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북송 요구를 하며 단식을 한 경력으로 인하여 신원이상자로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2018년 집단유인납치된 북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여권 미발급이 사회문제가 되어 한국을 동경하여 입국한 종업원들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한국 정부가 여권을 발급하여주지 않은 자체가 앞뒤가 모순된 것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자 국정원은 입장을 바꿔 집단유인 납치 피해자인 종업원들과 함께 김련희씨에게도 슬쩍 여권을 발급하여 주었다. 그러나 김련희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출국금지가 연장되고 있다.


 적대 쌍방 사이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만이 남은 분단냉전의 적대관계에서 쌓인 불신과 증오는 상호 우발적 무력 충돌과 분단 참사를 만드는 도그마가 되었다. 북에 대해 오로지 모든 것을 부인하기만 하다 보니 북측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진리 아닌 진리가 되었다. 북측에는 외세의 제국주의에 맞서 자존심을 지키는 우리 겨레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해가고 있다고 하면 아마도 다들 죽일 듯 행패질할 반인권적 사회가 되고 말았다.


 진실을 말할 권리는 없고, 공갈칠 자유는 넘치는 사회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는 박상학 같은 자들이 반북 망동을 부리기에 안성 맞춤한 세상이다. 진실을 호도하는 일방주의가 초래한 극도의 불신과 대결의 냉전 한가운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언제나 평화가 목마르고 분단 참사가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증진하며 상호이해와 타협을 통해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길로 나아가는 인식과 감성과 해법 마련은 평화를 위해, 분단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시급히 준비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길이 여전히 요원하다. 정전협상과 정전협정의 정신을 살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은 언제 한번 제대로 열린 적이 없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고 분단 참사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쟁취할 그 길에서, 국가보안법과 그에 길들여지고 세뇌된 북맹을 타파하고 맹목적 불신과 오해, 비방과 대결의 난장판을 갈아엎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넘어, 정전협정의 긴 터널을 넘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이루는 그날을 앞당기고 싶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