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개인적인 책 이야기, 어쩌면 전면광고(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18 17:00
조회
1232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스토우 부인이 쓴, 세 권의 책
 고등학교 시절, 교회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였습니다. 중학교 동창의 ‘전도’에 감동받아 세례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적당히 즐거운 교회 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되던 어느 날, 새 목사님이 당회장으로 오셨습니다. 그전의 목사님은 연세가 많아 원로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새로 오신 목사님은 40대 중후반의 비교적 젊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새 목사님은 곧 일요일 대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셨습니다.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링컨 대통령과 노예 해방 등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미국의 위대함 등등에 관한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 중에 스토우 부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스토우 부인이 말이에요, 책을 세 권 썼어요. 이런 건 적어둬야 해요. 알아두면 좋은 거니까. 그 책의 제목은 <엉클>이라는 책과, <톰스>라는 책 그리고 <캐빈>이라는 책입니다!”


 그 설교를 들은 몇 주 후, 저는 교회를 그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출판 관련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책들 중 일부에는 영문을 한글로 표기할 때 단어 사이에 중간점을 찍기도 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목사님이 설교에 참고하신 책은 아마도 ‘엉클 • 톰스 • 캐빈’이라고 표기된 오래된 자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책이란 무엇인가
 십 수 년 전, 일본 도서관협회에서 격주로 발행하는 신간안내 자료를 뒤적이다가, 엉뚱하기 짝이 없는 책을 보았습니다.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자>쯤 되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작은 집을 짓고 사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코끼리를 기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니!


 목차와 소개 글을 살펴보니 그 책의 내용은 정말 진지하게, 따라 하기만 하면 일반 가정집에서 코끼리를 기를 수 있는 실제 방법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코끼리를 기르기 위해서는 집 안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며, 코끼리의 습성은 이러저러하니까 어떻게 해주어야 하고, 먹이는 어떻게 구해 주어야 한다는 등등. 읽고 나면 코끼리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동시에 정말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기를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자>라는 책의 지은이는 실제 집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책을 썼을까요? 저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마치 집에서 코끼리를 기르고 있는 상상을 하는 즐거움 혹은 자유로움, 그것이 지은이의 집필 의도였겠지요. 그 이후 출판 일을 하면서 저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과연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문득 그 책이 궁금해서 일본 도서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애석하지만 당연하게(!) <집 안에서 코끼리를 길러 보자>는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책이 되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진 출처 - yes24


#3. 바이러스와 한 권의 책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야말로 난리북새통입니다. 가끔 들러보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폭발할 지경이고 끊임없이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려댑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만나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전화조차 뜸해졌습니다. 가까운 지역도서관에서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오지 말라는 문자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니 정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며 집에서 뒹굴 거릴 때는 좋았는데,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하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어째서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확한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으니 여기저기 ‘썰’만 분분합니다. 가장 신난 것은 역시 좌우 양쪽의 애국자들과 언론들입니다. 잠깐 들여다보니 벌써 이쪽에서 죽일 놈과 저쪽에서 죽일 놈들을 지목하며 패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멍해지고 짜증이 쌓여갑니다. 그러다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답답한 제 가슴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책의 한 부분을 여기 옮겨 봅니다.


... 각자 자기가 처한 시대적 환경과 조건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나를 짓는 자유를 근본적으로 가로막지 못한다. (...) 나는 나를 짓는 주체면서 내가 짓는 객체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서 하나인 나, 인간이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외로운 존재인 것은 이 점에서 비롯된다. 자유롭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다. (...) 자기 내면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참여, 연대의 의지가 없고 자유의 조건인 외로움과 불안이 버거워지면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할 위험이 있다 ...


 <결: 거칢에 대하여>(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를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놓치고 있었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문득 사방이 고요해지는 느낌,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