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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가는 말 오는 말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5:02
조회
690
말과 관련된 속담들이 많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말만 잘 하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 글속에 글 있고 말 속에 말 있다(말과 글은 그 속뜻을 잘 음미해 보아야 한다는 말),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로 온 동네를 다 겪는다(실천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말만으로 해결하려 듦을 이르는 말), 내가 할 말을 사돈이 한다(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남이 대신 해 주어 잘 되었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제가 한 말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을 항상 조심하라는 뜻),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자기가 먼저 남에게 잘 대해 주어야 남도 자기에게 잘 대해 준다는 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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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담을 통해 말이 가지는 의미를 반추해 본다. 말은 약속이다. 말은 속내의 표현이다.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의 일상생활이요, 사회생활이며, 국가간 외교이다. 말이 갖는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말은 행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불문의 율이 있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이래저래 문제가 심각하다. 아빠가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을 한들 아이들로서는 함께 생활하며 뒷바라지는 하는 엄마만큼 아빠의 존재를 느낄 수는 없다. 아이들은 바쁜 아빠를 보며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로부터 아빠가 하는 말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곤 한다.

말이 가지는 막강한 규정력을 느끼면 느낄 수록 말의 사용에 있어 특히 심리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말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하고 싶다. 부부싸움의 많은 것이 말에서 시작하여 말에 의해 상처받고 말에 의해 조정된다. 상대방이 툭 던지는 말에 의해 가슴깊은 상처를 안고 지내는 사람들은 상대의 말과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번지며 결국 상대방의 성격까지 걸고 넘어진다. 이 세상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루어가는 가장 중요한 행동이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의 쓰임새가 있다. 관료사회에서는 서열이 잡혀있고 아래에서 위에 말하는 분위기가 직접화법보다는 에둘러 유화시켜 나가는 간접화법이 횡행한다. 자기의 솔직한 말을 표현하기 힘든 곳이고 말할 자유가 억제당하는 곳이다. 재판관은 관료체질에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재판을 하다보면 피고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재판관을 상대로 그 재판장의 재판지휘에 심히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내 법정을 존중한다는, 피고인을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입에 발린 그럴싸한 간들거리는 변들을 쏟아낼 때마다 스스로 패기없고 주눅든 모습에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다. 시국사건 재판에서 실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정당성을 강력히 피력하다 재판관의 눈 밖에라도 날까봐 조심조심 우회로를 따라 적당히 정당성을 주장하며 사상이라도 검증될 시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조바심으로 그 좁은 우회로를 간접화법을 따라 스쳐스쳐 겨우 빠져나올 때마다 재판과 재판관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곤 한다.

한총련 학생들에 대한 재판에서 으레 나오는 질문은 미국은 제국주의냐,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냐, 남한 정부는 사대정권이냐는 식의 사상검증식 질문이고 여기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 학생의 양형이 결정되는 형국이다. 미리 간접화법에 대한 주의라도 주지 않으면 속없는 학생은 그 재판이 무엇을 심판하는지 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 생각없이 예라고 대답하면 참으로 냉혹하고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 기다린다. 피를 말리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직접화법이 살아남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본다. 간접화법은 인간에 대한 예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직접화법이 불러올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조롱, 적대적 감정의 표현,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포용, 설득, 인내심의 부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으면 한다. 그런 자리에 간접화법이 들어서 인간사회를 부단히 인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언중유골이라고 뼈있는 말들이 오가는 정치, 외교의 현장에서 말의 의미를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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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불일치는 비단 가정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와 외교에 있어 말이 가지는 규정력은 대단하다. 정치와 외교에서 책임있는 지위나 나라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의 말은 바로 국내외의 중요한 정책을 표현하는 의미를 가진다. 말로써 이루어지는 정치, 외교라해도 될 듯 싶다. 독도와 관련된 대통령의 서신이 파문을 던졌다. 대통령의 말이 외교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가도 싶더니 의례 그 말의 해석을 둘러싼 언론의 앞서감을 나무라는 또 다른 말이 선보이곤 한다. 그래도 이번에 독도 관련 대통령의 발언은 언행일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 신뢰가 지지율의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친미적 자주, 자주국방의 용어는 웬지 의심스럽다. 언행불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작전지휘권이 외국에 있는 나라에서 자주국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선차적으로 고민해야 할까 반문하고 싶다. 그러나 패권질서가 자리잡은 힘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굴절된 의식은 언행불일치의 현실을 합리화하고 공고화하는데 기여한다. 그래서인지 이라크 전쟁은 침략전쟁일지는 몰라도 그에 참가하여 파병하는 것이 번듯한 말잔치로 도배질되어도 친미사대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는 쥐죽은 듯 조용한 이슈로 소멸되어간다.

세계의 패권을 쥐락펴락하는 나라의 국무장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전쟁과 평화를 오가며 우리 민족의 숨통을 조였다 폈다 하는 현실이다.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지다보니 많이 무감각해지고 있는 현실이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일국의 국무장관의 입에서 나온 폭정의 전초기지와 주권국가의 말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북한에 대한 표현으로서 주권국가는 그 나라의 국무장관의 입에서는 나온 최초의 발언으로서 그녀의 말대로 심사숙고 끝에 한 말이니 이제 주권국가로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북한을 공격할 의사는 없다고 재삼 약속하므로 빨리 대화에 복귀하는 것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이라는 얼뜨기 사대꾼들의 번드레한 말이 여론을 도배한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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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바로 얼마 전 인준청문회에서 한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말은 주권국가라는 말 한마디로 취소나 된 듯 호들갑을 떠니 말이다. 조금만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북을 공격할 의사는 없다라는 말이 가지는 패권적, 호전적 의미를 무섭게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감히 다른 나라를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선언할 수 있는 나라가 그 나라 외에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주권국가라는 말 한마디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의 변경 가능성을 거론하며 6자회담의 분위기가 성숙되었다고 지레짐작하여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기 전에 지체없이 대화에 복귀하는 것이 북한에 이롭다 하는 것은 진지한 조언자, 충고자로 비치기 보다는 미국의 새로운 압력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분명 폭정의 전초기지로서는 붕괴의 대상이지만 주권국가로서 인정될 때는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진지하게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만큼 대화에 빨리 나오라고 하나 대화에서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실내용을 갖추고 협상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어 다시는 주권국가가 폭정의 전초기지로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선제공격의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는 어찌되었든간에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독도의 주권을 수호하는 대통령의 직접화법에서 우리는 주권국가의 힘을 느껴보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현실적 외교의 모습에서 참으로 답답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시리곤 한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간접화법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상전이 존재한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성명이 벼랑끝에 몰린 죽음을 각오한 자들의 절박한 저항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세계최강대국에 맞서 할 말은 하고 사는 우리들의 반쪽에 대하여 우리는 정말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오늘도 뇌리를 맴돈다. 폭정의 전초기지와 주권국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의 직접화법은 북을 적대국가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북한 주민의 해방을 위해 체제를 붕괴하고 선제공격도 감행할 수 있는 그런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권국가라는 발언은 북한을 일정하게 달래는 신중한 고려 속에 나온 간접화법이다. 주권국가라는 발언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는 미국이 북한과 수교까지 고려한 관계개선의 의지를 보인 것이고 체제붕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고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므로 북한이 더 이상 지체없이 6자회담의 대화의 문으로 나와야 할 마지막 기회라고 몰아세워 본들. 과연 그런가. 남해에 들어온 핵잠수함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대규모로 방어훈련으로 포장되어 진행되는 그런 마당에 주권국가라는 그 말을 신뢰하며 대화에 나설 수 있을까.

더 이상 말과 행동의 괴리에서 벗어나 우월적 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의 외교전략, 패권전략을 동원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미국의 고도의 외교전, 심리전이 통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기에는 세계가 깨어있다. 북미간의 가는 말과 오는 말이 평화적 공전의 정신 아래 화해롭게 진행되어 불신을 씻기를 바란다. 공정한 협상 분위기 속에 합의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약속이 동시에 제대로 이행되어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평화정착의 훈풍이 불어오기를 고대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전쟁의 위험에서 영원히 벗어나 평화롭게 살아가는 평화적 생존의 희망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