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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유공자예우법 논란에 대한 단상(이재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0-28 17:35
조회
816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민주유공자예우법의 발의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발의자들은 ‘보상을 받으려고 민주화운동을 하였는가’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으니 보기에 안쓰럽다. 군인이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지 않듯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도 부와 보상을 바라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법안을 특권적 발상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치와 공직영역에서 정치사회적 보상을 받은 상황에서, 무명으로 활동하다가 피해를 입고 허명뿐인 민주화유공자로서 여전히 고생하는 옛 동지를 배려하는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공적인 희생을 한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법의 원칙이기 때문에 이 원칙에 입각해서 생각해보자.


 필자 개인적으로는 고인이 된 장인어른이 남녘의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전두환 정권의 등장 이후 시국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다가 50대 초반 한창 나이에 해직되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울분의 세월을 보내셨다. 다행히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도입한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약소하게나마 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그 분은 해직사정을 빼곡하게 적어와 구제가능성이 있는지 물어오셨다. 당시 법적으로는 더 이상 방도가 없다고 해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 트라우마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강제해직자로서 그 분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 민주당 의원들이 제안한 민주유공자예우법은 민주화보상법을 전제로 한다. 민주화보상법상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명예가 인정된 사람은 민주화유공자예우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런데 민주화보상법은 외형적으로는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는 하였지만 실질적인 피해와 고통을 구제하는 데에는 상당히 미흡하였다. 이 법이 보상대상으로 고려한 사항은 제한적이었고 보상금은 기대수준에 미달하였다. 동시에 이 법은 보상금을 수령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봉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은 이 법이 위헌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마침내 2018년 헌법재판소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적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결정하였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80 등). 국가나 국회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민주화보상법을 개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민주당의원들은 민주유공자예우법을 대안으로 제안하였다.


 이 법안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 최근의 논의양상을 참조하지 못했다. 필자는 2018년부터 1년 남짓 국가보훈처(당시 피우진 처장) 산하의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에서 보훈제도의 정책방향에 대한 논의에 관여하였다. 실제로 당시 위원들의 제안 가운데 일부는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제안의 상당부분은 아직 서랍 속에 있고 언젠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강의 골자는, 전몰상이군경 위주에서 벗어나 독립유공자, 민주유공자, 사회공헌자도 국가유공자로서 동등한 예우를 시행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경제적 보상수준은 국민의 정의감정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두 번째 원칙과 관련해서는 보상금이 전적으로 국민의 세금에 기초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겼다.


 보훈법제들은 대체로 절박한 사정에 처한 사람들에게 부응할 만큼의 충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출현한다. 그러한 사정으로 인해 기본적인 경제적 보상은 미흡하다. 그런 까닭에 별도의 보완수단들이 얼기설기 덧대어진다. 이러한 방식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 보통 사람들은 길어져만 가는 노후의 시간을 국민연금법에 기대어 염려한다.


 사실 전국민이 국민연금법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으며 이러한 방향은 지극히 타당하다. 국민연금을 통합적 기반으로 삼는다면 유공자들에 대해서는 그 공적과 희생을 감안한 보상을 일정률로 연금에 가산하거나 일회적인 또는 한시적인 보상금을 제공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통합적인 제도가 실현되기 전이라도 세금에 기초한 보훈제도는 좀 더 합리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보훈혁신위원회는 보훈법상의 보상제도에 과소나 과잉이 없어야 하고, 경직된 보상수단을 지양할 것을 제안하였다. 희생과 공헌에 부합하는 적절한 보상을 시행하고, 여전히 품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유공자들에게는 생활조정수당을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유연한 방식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월남참전군인들과 5.18민주화유공자들의 예우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취업가산점제도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유공자 본인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알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유공자 자녀의 취업에 가산점을 주는 경직된 방식은 지양하라고 권고하였다.


사진출처-MBC


 실제로 오늘날 20-30대의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계급격차는 운명으로 수용하지만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개혁을 표방하는 세력들이 결과의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고 조건의 불평등도 제대로 시정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인식한다. 젊은이들은 지난 인천국제공항공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보듯이 기회의 평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냉소와 불신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젊은이들이 보수화되었거나 옹졸하게 군다고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상의 적확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기성세대의 안이함을 탓해야 할 것이다. 희생에 대해 보상을 시행하는 것은 옳다. 그럼에도 그 부담을,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젊은이들의 등에 올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국가유공자법의 취업가산점제도는 배가 지나가도 표가 안 나는 고도성장기(완전고용)에서나 어울릴법한 수단이다. 그 당시 국가의 재정적 여력이 지금보다 제대로 확충되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당시의 취업 가산점 제도는 비난할 사항도 아니다.


 지금의 사정은 어떤가? 폭발적인 기술혁신 아래 노동의 종말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고용의 기회를 찾아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보상수단으로 삼는 계획을 불평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경제적 보상이 불충분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유공자 본인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민주유공자예우법은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반영해야 한다. 물정이 바뀌면 수단도 바뀌어야 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