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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을 버릴 권리와 국적을 가질 권리(이재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5-08-11 17:32
조회
1006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2024년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최민희 의원 간에 ‘식민강점기에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인가?’를 둘러싸고 오간 설전에 대한 단상이다. 이 설전의 학술적 성토장으로서 2025년 6월 20일 <광복 80주년 일제강점기 한국인 국적- 국회 학술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필자는 토론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교리문답으로 단순화된 국적 문제에 대해 ‘종합판단’의 필요성을 시사한 이철우 교수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하나의 접근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제국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국제법학자 오펜하임의 100여 년 전의 주장부터 살펴보자.1) 그는 당시 국적에 관한 조약법이나 국제관습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병합된 나라의 국민이 병합국의 국적을 ‘사실상’ 취득한다고 전제하였다. 오펜하임은 병합 시점을 전후하여 그 나라를 떠나 외국에 머무는 사람의 지위와 관련해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거론하였다. 하나는 병합국의 국민이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병합국의 국민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오펜하임은 병합 시점을 기준으로 병합 전에 떠난 사람은 병합국의 국민이 아닌 반면, 병합 후에 떠난 사람은 병합국의 국민이라는 중간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오펜하임은 병합된 나라의 국민이 병합국의 국적을 원치 않는 경우 병합국이 그에게 이탈권을 부여할 수 있지만, 그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제법상의 의무는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민권에 대한 단초들은 적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서 아테네가 성인이 된 시점의 시민에게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날 권리를 인정하였는데 자신은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아테네의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말하고는 탈출 권유를 뿌리쳤다. 이 얘기는 식민지 강점기와는 상관이 없으나 이민권이 고대 도시국가에도 인정되었다는 사정을 알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1555)는 통치자와 다른 신앙을 믿는 신민에게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가진 통치자의 영토로 떠날 권리, 즉 이민권(ius emigrandi)을 부여하였다. 1581년 네덜란드 독립선언(Plakkaat van Verlatinghe 결별선언)은 명칭에서 보듯이 스페인으로부터 떠날 권리의 집단적 선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 기초자들이 이를 참조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망명권과 나라를 떠날 권리를 규정한 국제법(세계인권선언, 자유권 규약)은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후에 탄생하였다.

오펜하임은 예민한 쟁점을 언급하였다. 그는 병합된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이 병합국의 국민이 되는 문제와 병합국 안에서 그 국민이 어떤 지위를 누리는가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국적(nationality)과 시민권(citizenshiup)은 다른 것이고, 전자만이 국제법의 사안이고, 후자는 국내법 사안이라고 하였다. 당시 국제법의 관점에 따르면 망명자로서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조선인은 일본 제국의 국적자가 되었다. 그런데 일본 당국은 헌법과 국적법을 다른 식민지인들에게는 적용하면서도 조선인들에게는 적용을 배제하였다.2) 일본 국적법(1899년) 제20조는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일본 국적을 상실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는데, 일본 제국은 병합 과정에서 일본에 끈질기게 저항한 조선인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국적이탈 조항의 적용을 정책적으로 배제하였다.

일본은 해외로 이주한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감시와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일본 제국은 조선인들이 외국의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도 국적 이탈을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안창호 선생은 일본 국적자라는 이유로 국내 송환을 피하지 못했다. 3) 조선인은 일본 국적이라는 족쇄를 끌고 세계를 유랑하는 국가 노예였다. 유대인이 독일 국적을 박탈당하는 것이 제노사이드의 시작이었다고 통찰한 아렌트에게 근본적 인권이 국적을 가질 권리였던 반면, 조선인 안창호에게는 국적을 이탈할 권리가 바로 근본적인 인권이었다.

국제법학자 웨스트레이크는 인도인의 국적에 관한 관행을 제국적 원리로 해명하였다.4) 국제법적 차원에서 영국 식민지 인도인은 영국인이지만 헌법적 차원에서는 인도인이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시카와 켄지는 조선을 국제법상 일본 영토 안에 헌법상의 외국으로 해명하였다.5)  국제법적인 상위국적(supra-nationality)은 일본 제국의 신민이지만 국내적 차원(호적법)의 하위국적(sub-nationality)에서는 조선인이다. 하위국적에서 내지인(일본인)은 최상위 시민권자이고, 조선인은 하급의 외지인이다.

조선인은 고대 스파르타의 신분제도에서 정복자인 스파르타 시민과는 다른 정복당한 메세니아 원주민(헤일로타이)과 같다. 여기서 메세니아 사람들은 다른 폴리스들과의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스파르타인이지만 국내법적으로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 농노였다. 이들은 토지에 매여 주인에게 소출을 상납해야 했고 정치적 권리나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잠재적 반란 세력으로 간주되어 항상 감시받았으며, 전쟁 시에는 스파르타를 위해 동원되어야 했고, 그중 일부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국가 노예 신분을 벗었다.

 

 


사진 출처


 

 

국회 설전에서 김문수 장관은 제국적 원리에 따른 조선인의 지위를 불변적인 순수 사실로 퉁명스럽게 간주했던 것 같다. 설혹 국적 문제가 사실의 문제라 하더라도 이는 순수한 사실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질서 아래 강요된 법적 사실이다. 어떠한 사실도 재해석과 재평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도 법의 세계에서는 엄연한 사실이다. 법의 세계에서는 기성 상태를 인정하는 논리 이외에 교정하는 논리도 존재한다.

무효라는 제도가 그것이다. 혼인의 무효, 입양의 무효, 병합의 무효도 존재한다. 병합이 무효가 되고 원래의 국적이 회복된 사례들도 존재한다. 무효는 사실 자체의 물리적 제거가 아니라 법적 의미의 원천적 제거에 관한 제도이다. 재심은 죽은 자를 살려내지는 못하지만, 부당한 사형 판결을 소급하여 제거하고 죽은 자에게 정명을 부여하는 빼어난 제도이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6)의 해석과 관련하여 을사늑약과 병합조약을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천명하였고, 2012년 대법원은 강제동원 판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불법 지배로 규정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국은 나치독일의 수권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악법을 무효로 했으며 독일법원은 1952년 레머 재판(Remer-Prozess)에서 나치 체제를 불법국가라고 판결하였다. 이러한 판결은 나치 체제의 존재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체제를 불법화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박탈하는 조치는 후속국가나 후속 체제의 고유한 권한사항이다. 유대인의 국적을 박탈한 독일국적법이 ‘정의와의 모순이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1968년 독일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주목할 만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병합조약이 원천무효이고 식민 지배가 불법 지배라는 한국정부와 대법원의 입장을 구체화하는 법적 조치이다. 국적에 대한 문답은 순전한 일차원적인 사실의 확인이 아닌, 배후의 오염원에 대한 평가와 총체적 진실에 기초한 정명(正名)의 문제이다.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판단에 기초하여 조선인에게 강요된 일본 국적을 당연히 무효로 하고 소급하여 관철할 수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개정된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조선을 떠난 사람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재외동포로 간주하고 이들에게 국적회복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이제 이 원칙을 국적법에 관철한다면, 국회는 대한제국의 국적 관행을 고려하여 원한국인(protokorean)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혼란스러운 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 필자는 식민강점기의 국적 문제가 사실학의 영역이 아닌 법철학적 근본 물음에 해당한다고 본다.

 

  1. Lassa Francis Lawrence Oppenheim, International Law. A Treatise, 3rd ed., vol. 1(Peace), Longmans, 1920, pp. 397-399. 한일 관계에 대한 오펜하임의 여타 기사 중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다.

  2. 2025년 6월 20일 <광복 80주년 일제강점기 한국인 국적- 국회 학술토론회>에 제출한 김창록과 호사카 유지 교수의 발제문 참조.

  3. 武井義和, “戦前上海における朝鮮人の国籍問題,” 中国研究月報 60[1], 2006/01, pp. 7-21.

  4. John Westlake, Chapters on Principles International Law, Cambridge U.P., 1894, p. 42.

  5. 石川健治、“憲法のなかの「外国」”、日本法の中の外国法-基本法の比較法的考察, 早稲田大学 比較法研究所(編)、2014.

  6. 한일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