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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이야기(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0-06 16:32
조회
949

최낙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 사오정과 오징어


사오정이 편의점에 들어갔다


사오정 : 아줌마, 햄버거 하나하고 콜라 주세요.


아줌마 : 햄버거 없어.


사오정 : 그러면 햄버거하고 사이다 주세요.


아줌마 : 햄버거가 없다니까!


사오정 : 아, 그러면 햄버거하고 생수 주세요.


아줌마 : 이 사람이 정말, 햄버거 없다니까 자꾸 왜 그래?


사오정 : 이 가게에는 없는 게 왜 그렇게 많아요. 그럼 햄버거만 주세요.


 오랫동안 적막강산 같았던 사무실에 어느 새부터인가 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한, 소위 ‘투명인간’ 지위를 득한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옛 동료 두 사람이 점심을 같이하자고 왔습니다. 식사 후 차를 한잔하면서 그동안 어떻게들 지냈나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로 별 볼일 없이 지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습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A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어느 당의 대선 주자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평소에도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던 B는 A를 무시하고 ‘오징어 게임’ 분석에 열을 올렸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A의 대선정국 열변-잠시 휴식-B의 오징어 게임에 대한 분석-잠시 휴식-또다시 A의 대선정국-휴식-B의 오징어게 임…. 식의 이야기가 경쟁하듯 이어지다가 결국 B가 A의 이야기에 말려들었습니다. 이제 대화는 A의 정치적 견해-B의 정치적 견해-A의 정치-B의 정치-A의...-B의... 식으로 이어지다가 논리적으로 약간 밀리기 시작한 A가 B에게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야 이, 사오정 같은 B놈아!”


B도 똑같이 응수했습니다.


“사오정은 네가 사오정이지, A놈아!”


그렇게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 제가 킬킬대며 한마디를 거들었습니다.


“너희 두 놈들이나, 대선 경쟁하는 그놈들이나 다 사오정들인 건 마찬가지!”


그러자 A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 놈은 간신 같은 사오정!”


B 역시 기가 막힌다는 듯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너 잘났다. 너는 사오정 말고 오징어 해라, 오징어!”


#2. 오징어의 손바닥


 두 사오정이 돌아가고 나서 퇴근 무렵, 또 다른 사오정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서울 근교의 개인 작업실에서 서각을 하는 그는 하루의 작업을 마친 후 작업실 근처 술집에서 한잔하고 퇴근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알고 있는 사오정입니다. 이런저런 문자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 그가 이만 퇴근해야겠다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제 정리하고 오랜만에 집에서 가볍게 한잔하려고 함.’


집에서 술상을 보겠다는 그에게 저는 부럽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부럽네. 나는 마나님 눈치 보느라 말도 못 꺼냄. ㅜㅜ’


얼마 후, 그는 집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안주와 술병이 올려진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부러우면 손바닥에 酒라고 써서 슬그머니 아내에게 보여줘 보든가. ㅎㅎ’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