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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이길 수 있을까(임아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2-17 12:01
조회
967

임아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게임스톱은 미국의 게임 관련 회사다. 게임 CD나 게임기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소매점을 미국 전역에서 운영한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온라인 반려동물용품 쇼핑몰 ‘츄이’의 최고경영자인 라이언 코언이 지난해 8월 게임스톱 주식 900만주를 산다. 당시 주가는 4달러였다. 대주주가 된 코언이 게임스톱 이사진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더욱 상승한다. 개미들이 게임스톱을 매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대쪽에서 헤지펀드는 오프라인 소매점인 게임스톱이 과대평가됐다 봤고 가격이 ‘거품’이라 판단해 공매도 물량을 확보한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팔아 차익을 얻는 투자기법이다. 한 마디로 주가가 내려가야 수익을 얻는다.


 이같은 소식에 ‘미국 개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에서 결집했다. 게임스톱을 더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1라운드에서 ‘주가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은 큰 손실을 봤다. 멜빈 캐피털은 37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냈다. 한화로 4조원이 넘는 규모다. 멜빈 캐피털이 게임스톱에서 손을 뗀 지난달 28일 게임스톱 주가는 469달러까지 치솟는다. 2라운드 이때부터 ‘게임스톱 사태’는 공매도 세력에 맞서 개미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금융 민주화’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국 주식앱 로빈후드가 게임스톱의 매수를 제한했고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다. 3라운드 이제 게임스톱 주가는 5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공매도’가 뭐기에 개미들은 공매도 세력과 전쟁을 벌였을까. 한국에서도 ‘공매도’는 뜨거운 감자다. 내 주식의 주가가 올라야 하는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투자자들은 유쾌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공매도가 있는 이유는 거품을 완화하고 주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순기능 때문이다. 투자자가 기업의 부정적 정보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이 2009~2014년 6년간 코스피에 상장된 제조업 기업을 대상으로 회귀분석한 결과 전년도 공매도 잔량 비율이 증가할수록 주가 급락 위험이 유의미한 수준에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매도가 많은 주식은 부정적 요인이 있는 종목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물경제 위협이 본격화되자 코스피가 1400대까지 급락했고 금융당국은 공매도 6개월 금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해 9월 이 조치는 다시 6개월 연장됐고 올해 3월 재개를 앞두고 있었지만, 새해 들어 3000포인트를 넘어선 코스피를 향한 개인투자자들의 열기에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다시 5월 2일까지 연장됐다. 그만큼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공매도를 비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에 정치권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스톱 사태’의 손실도 결국 개인이 봤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460달러를 넘어섰던 주가는 50달러대로 떨어졌고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들이 뭉치면 가격을 올릴 수도, 공매도 세력을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게임스톱 사태는 보여줬지만 이러한 ‘머니게임’에서 손실을 보는 투자자들도 개인들이라는 것 또한 보여줬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괴리된 가격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게임스톱 사태는 증명했다.


 내가 가진 주식의 주가는 계속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탓할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 등에서 연합해서 가격을 올려 버틸 수 있다고 믿는 개인투자자들이 무리했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 씁쓸함이 남는다. 한국의 ‘동학개미 열풍’, 특히 ‘영끌’ 통해 주식에 투자하는 2030세대의 절박함이 느껴져서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나를 위한 일자리는 찾기 어려운 세대에게 주식 투자의 기회조차 놓쳐버리면 어떡하느냐는 두려움 말이다.


 애초부터 기관투자자와 동등하게 겨룰 수 없는 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구호처럼 써먹으며 공매도만 선거 뒤로 미루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정치권에는 분노를 느낀다. 그들이 할 일은 부동산 정책, 노동 정책, 사회보장 정책 등 근본적인 것을 바로잡아 ‘진정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이다. 바람이 빵빵하게 차버린 풍선은 어디부터 터질까. 풍선이 터지면 먼저 쓰러지는 쪽은 자산이 적은 이들일 것이다.


임아영 위원은 현재 경향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