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혁용(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중(병원장),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교수), 이재승(건국대학교 법전문대학원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 글을 씁니다.

기획예산처와 이혜훈 지명(권혁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1-06 13:48
조회
624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2021년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이 말이 상징하듯,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오랫동안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 그리고 시민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온 기관이다. 그 기획재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으로 올해 1월 2일부터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뿌리는 1960년대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출범한 경제기획원이다. 발전국가의 기관차 역할을 수행하며 형성된 이 조직은 ‘대한민국 경제는 우리가 이끈다’라는 강한 엘리트 의식을 계승해 왔고, 예산 편성과 재정 집행 권한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수사와 기소 권한을 독점한 검찰이 그 과정에서 각종 병폐를 드러냈듯,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재정부로 이어지는 조직 역시 막강한 권한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낳아왔다. 이런 점에서 재정 집행과 예산 편성 기능을 조직적으로 분리한 이번 개편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분리된 기획예산처의 초대 장관 후보자로 보수정당 출신 정치인 이혜훈이 지명되었다. 그는 서초구에서 3선을 지낸 정치인이자 계량경제학 박사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12년 동안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평가할 만한 입법 성과가 무엇인지, 보수 정치인으로서 20여 년 동안 어떤 정치적 신념과 철학을 일관되게 보여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혜훈이라는 이름은 이회창 총재 시절 영입된 ‘서울대 출신 전문직 여성 정치인’ 그룹—나경원, 조윤선과 함께—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가 보수정당의 ‘경제통’으로서 시장 중심주의, 정부 개입 최소화, 재정 균형을 강조해왔을 것이라 짐작할 수는 있지만, 경제학자로서 어떤 학문적·정책적 신념을 가졌는지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계엄·탄핵 국면에서 탄핵 반대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기록은 남아 있다. 이를 두고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명했는데, 이런 그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인물로 보기 어렵다. 오랜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따르는 이익보다, 이재명 정부가 부여한 장관직과 권력을 추구하는 데 따르는 이익이 크다는 선택을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전·현직 기재부 관료가 아닌 정치인을 지명한 사실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재부 관료 출신이 장관이 된다면, 관료 조직 특유의 관성 속에서 ‘전년도 대비 증감률’ 중심의 예산 편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구 기재부의 특권 의식과 ‘부처 위의 부처’로서의 관행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정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과 예산을 통해 보다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면 관료 출신에게 기획예산처를 맡기는 선택은 오히려 부적절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 장관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이혜훈 후보자가 그 역할을 수행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었는지다. 초대 장관은 경제 불안정 국면에서 적극적인 재정 운용 방향을 제시하고, 재정경제부 관료 기득권을 견제·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가올 인사청문회는 바로 이 점을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사진 출처


 

국가역량(state capacity)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는 흔히 세 가지가 거론된다. 공정하고 정확한 조세 징수 능력,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량, 그리고 공직자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조직 개편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편된 조직이 국가역량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강화하느냐가 관건이다. 신설된 기획예산처 역시 마찬가지다. 대외적으로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기술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심화하는 소득·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정 확대와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강조하는 전 세계적 흐름은 이혜훈 후보자의 경제 철학과는 정반대다. 그의 정책 신념은 오히려 구 기획재정부 관료들과 더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과연 기재부 관료 집단과 선출된 권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가치와 규범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통령제는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린다. 이는 미국 정치학자 슐레진저가 말한 imperial presidency를 번역한 표현이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과 달리 법안발의권과 예산편성권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한국은 행정부발의법안의 가결률이 의원발의법안 가결률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법안발의권은 오로지 의원에게만 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산하 행정관리예산국(OMB)이 예산안을 제안하고, 연방의회 산하 의회예산처(CBO)가 이를 분석·검증하며 의회가 예산의 최종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예산 권력이 행정부에 집중된 한국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분리한 것은 분명 중요한 첫걸음이다.

나아가 예산편성권 자체를 국회에 부여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를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행정부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국회 예결산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하는 방식은 국민의 정책 수요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물론 국회의원 지역구 민원예산(쪽지예산)과 같은 비효율적인 폐해는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광역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주민참여예산제를 확대하고, 일정 부분 국민참여예산제 요소를 결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왜 이혜훈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분명하지 않고, 경제 철학은 현 정부와 거리가 있으며, 검증된 행정 역량도 확인하기 어려운 인물을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더 근본적인 우려는 이것이다. 이혜훈 후보자가 분리된 기획예산처가 맡아야 할 시대적 책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이 자리가 단순한 ‘관리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와 국가역량을 좌우하는 핵심적 자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재명 정부 시기, 대한민국의 국가역량을 실질적으로 증진하겠다는 소명을 가지고 있는가. 인사청문회는 바로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