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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없다(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2-17 14:47
조회
842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 중심의 사회에서 지역은 늘 소외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지역은 없다. 처음으로 기초자치단체장 출신의 후보가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이전투구 속에 정책은 실종됐고, 지역에 대한 담론은 아예 사라졌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동안에는 균형발전, 지방자치, 지방분권, 자치분권 등과 같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아예 지역이라는 말이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전국엔 243개(광역 17개, 기초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있고 이 가운데 서울(25개)·인천(10개)·경기(31개) 등 수도권을 제외하면 177곳의 ‘지방’이 있다. 인구의 절반인 2,570만여 명이 ‘지방’에 살고 있으나 대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홍준표 의원은 경남 창녕 출신으로 경남도지사를 지낸 바 있다. 대선 당시 자신의 고향에서 ‘경남의 아들’이라고 유세하던 그의 홍보 현수막을 우연히 전주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전북사위”


 그의 아내가 전북 부안군 출신이었던 것이다. ‘경남의 아들’이 ‘전북사위’가 되어 지역주민들에게 표를 구했던 모습은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모양을 바꿔 다시 등장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윤석열 후보는 충남 공주 출신인 아버지를 등에 업고 ‘충청의 아들’이라며 실체 모를 ‘충청대망론’을 외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이 등장하는 때는 고작 이럴 때 뿐이다. 연고주의를 조장하며 지역주민들을 수단화할 뿐 대부분의 정책에 있어서는 지역을 소외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권한은 물론 자율성과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상위법이 우선시 돼 조례가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난 2015년 당진시는 주민자치를 추진하면서 조례를 제정해 모든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고 권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당시 ‘주민자치회’에 대한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출범 1년도 채 안 돼 ‘주민자치위원회’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그러다 상위법령이 마련되자 다시 주민자치회로 전환했다. 지역에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든, 주민자치위원회를 운영하든, 국정을 혼란스럽게 할 일이 전혀 없는대도,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자치 모임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지역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보장받지 못한다.



사진 출처 - freepik


 지역의 인구와 예산 규모가 늘고 행정 서비스의 범위도 넓어짐에 따라 지역의 공무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더라도, 이를 결정하는 것 역시 정부다. 매년 행정안전부에서는 각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인건비 총액 기준을 제시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인건비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총액인건비를 초과하면 다음 총액인건비 인상에 제약을 받는 등 정부로부터 불이익이 따른다.


 방만한 인력 운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각 지자체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급격히 도시가 확대되는 지역은 총액인건비에 묶여 인력난에 허덕이고, 인구가 줄어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는 이미 정해진 총액인건비에 따라 인력을 운영해 인구 대비 공무원 수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도시에 비해 치안 및 소방 인력이 부족한 읍·면 시골 단위에서 사고가 나면 골든타임을 놓쳐 사고가 커지거나 사망에 이르는 일이 적지 않고, 집배원 인력 또한 부족해 월요일에 받아야 할 신문을 목요일에 받는 일이 지역에선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지역은 정부에 종속돼 있고, 서울과 수도권의 변방에 불과하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행정부 수장과 의회를 손수 선출하고 있음에도 지역은 ‘(지방)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전히 ‘(자치)단체’에 머물러 있다.


 언제쯤 지역주민이 ‘~의 아들’을 말할 때나 이용되는 게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적 주인이 될까.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을 말한 지 30년이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선 후보들 지역, 자치, 분권에 대해 어떠한 메시지와 비전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부국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