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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려는 분들에게(이재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6-30 16:33
조회
1841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창시절, 나로선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직업이 2개 있었다. 판사와 목사다. 둘 다 다른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죄를 묻고 단죄하고 교화시키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사람을 치유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한단 말인가. 더구나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고? 엄청난 사명감과 소명의식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 직업의 분들을 경외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를 하겠다 나선다면 좀 생각이 달라진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숙고하겠다”며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사표를 냈다.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사정기관의 수장이 본분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일었고 대통령도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퇴 전부터 대선후보로 거론됐고 그 자체로서 중립성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으니 ‘감사원장 수행이 부적절하다’는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궁금한 건, 어떤 지점에서 최 전 원장이 직접 정치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감사원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한 동료를 업어 등원시켰다거나 두 아들을 입양하는 등의 인간적 면모로 대중에 알려졌지만, 그는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지낸 것 외에 다른 정치적 경력이랄 건 없었고 굳이 정치판에 나설 이유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의 존재감이 드러난 건 월성원전 1호기 감사 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을 때다. 감사원 내부의 반발도 있었고 정부 부처의 비협조도 강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이 되고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신이 벽에 부딪히면 보통 끝까지 버티거나 미련 없이 물러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판을 갈아엎겠다는 결심까지 한 것 같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집권 연장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문제의식과도 닿아 보인다. 여하튼 검찰총장에 이어 감사원장까지 임명권자에게 등을 돌리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어색한, 정권으로선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헌법기관과 권력기관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갖지 못한 지 오래다. 사법부는 권위주의 군사정권 아래에선 권력의 시녀로 불렸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엔 정권과 거래하는 사법농단이 일어났다. 지금도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란 단어는 심하게 말하면 조직 이기주의와 보신주의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형 원장더러 당신만은 끝까지 임기를 지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라 말하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선거에 나설 수 있다.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도 아니다. 판검사 출신도 당연히 할 수 있다. 부족한 정치 경험이야 과외도 받고 대권 수업을 하면 된다. 머리 좋은 분들이니 습득도 빠를 것이다. 주위에 돕겠다는 인재들도 줄을 설 것이다. 여기에 강력한 정치적 동기까지 있으니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이 대통령에 도전 못 할 이유는 없다. 야당 후보로 나서든 여당 후보로 나서든 따질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왜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지,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법관, 법조인은 평생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원칙과 질서,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소명의식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도 이런 법과 양심의 발로에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대단히 소중하고 값진 문제의식이지만 나는 그 출발점이 위태로워 보인다. 법과 양심, 원칙은 가치로선 소중하지만 그걸 적용할 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원칙과 법과 상식, 공정, 정의가 얼마나 공허하고 내용이 없는 단어인가. 이 단어들이 의미를 갖고 가치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토론과 숙고와 합의와 절충과 양보와 이해와 에너지가 필요한가. 그런 노력을 생략한 채 단기속성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말리고 싶다. 집권자가 이런 가치를 섣불리 들이대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 민주주의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 법조인이 정치를 하려는 이유를 안티테제가 아닌 자신만의 비전과 생각을 좀 더 고민하고 다듬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그랜토리노’가 생각난다. 한국전쟁 참전의 상처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고집불통의 노인 월트에게 새파랗게 젊은 신부가 찾아와 아내의 유언이라며 고해성사를 하라고 설득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공에게 애송이 신부의 설교는 가당치도 않았다. 이 옹고집 노인의 마음을 연 것은 사명감과 소명으로 충만한 신부의 설교가 아니라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던 아시아 소수 민족 타오 남매의 삶과 고통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었다. 어려움에 빠진 타오 남매를 돕고 그들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월트는 자신의 무시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과 타오 남매를 돕는 젊은 신부를 다시 보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이웃 남매를 위해 내놓는 월트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 영화는 끝난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행동의 이유가 된다. 말씀만으로는 이 세상을 구할 수도 없고 한 인간의 마음을 열 수도 없다. 정치나 권력은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니만큼 그 힘을 가지고 싶은 이들은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개입의 책임 그리고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 명백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