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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국가보안법의 위력 앞에 공포감을 느끼며 사는 트라우마의 피해자(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6-16 16:03
조회
142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21대 국회를 향한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소리가 갈수록 드높아지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았냐는 낙관론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지난해 15인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국가보안법 제7조를 삭제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고 지난 5월 19일에는 단 열흘 만에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10만 국민동의 입법청원이 성사되었으며, 국민들의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염원하는 뜻을 반영한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 법률안도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열망과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분단 냉전의 장막은 한 치의 파열구도 허용치 않고 있다. 북 지도자의 자서전 출간에 대해 국가보안법 탄압이 횡행하는 단 하나의 사실만 보더라도 총체적 파시즘 체제에서 탈주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한국 민중의 힘이 파시즘 악법 국가보안법을 능가할 정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안이하고 섣부른,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주관적 국가보안법 폐지 낙관론에서 벗어나 국가보안법에 의해 거세당한 민중의 저항력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 계기로써 21대 국회를 향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야, 2004년 ‘하마터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뻔했다’는 식의 추억 바라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북에 대한 미군 주둔과 북에 대한 적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도구다. 반제국주의 평화운동, 북과의 평화공존, 자주적 평화통일을 가로막아 한국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차단한다. 친북 성향이라는 이유로, 동족인 북과 화해하고 연대해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었다. 지금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주한미군의 철수와 관련된 문제다. 국가보안법의 파시스트적 영향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반미 반제국주의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고,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진보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과정에서 남북은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 과정은 제국주의의 동북아 정치 군사개입을 영구 배제함으로써 미군기지가 없는 동북아 평화를 만드는 길과 연계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치안유지법>이 해방과 함께 폐지되었으나, 국가보안법은 치안유지법을 답습하여 형법이 만들어진 1953년보다 훨씬 앞선 1948년 12월 1일 친미반공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제정되었고 국가보안법의 유년기는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그에 이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였던 통일애국세력을 고문·학살하는 반공, 반통일, 반민중적 성격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기였다.


 국가보안법은 반공법 제정 후에는 반공법과 함께, 나중에는 반공법을 흡수한 비대해진 몸으로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로 성장하며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군사독재정권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억압하고 군사정권을 연장, 강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 반외세 민중민주 운동과 자주통일운동을 좌경용공세력으로 몰아 고문·학살하는 법적 근간이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중장년기, 노년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한국 민중을 위한 선진 사상과 선진 정책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절대무기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이웃하는 동족의 사상과 체제와 정책은 금기시되고 비방과 폄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북맹과 허위의 우월의식으로 우리 민중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극우보수세력의 절대무기로 진보정당을 해산시키고 극우보수세력의 집권과 정권유지에 악용되었고, 지금도 극우보수세력의 재집권을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게 느끼도록 세뇌당하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민중의 저항력을 상실시켜 왔을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폐지되기 전에는 어디에서도 사문화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민중의 투쟁에 의해 국가보안법의 악폐성에 대한 저항력과 견제력이 커질 때 파시스트적 독성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는 있으나 그도 잠시일 뿐 호시탐탐 자주적 평화통일운동과 진보적 민중운동을 겨냥하고 한국 민중을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분단냉전체제에 길들이며 반민중적 파시즘 체제에 안주하게 하려고 분주히 작동해 왔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저항이 있는 곳에 탄압이 있듯 만약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된 듯이 보인다면 민중의 저항력이 거세되었기 때문이기에 이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국가보안법의 파시스트적 악폐성은 차고 넘친다.


 국가보안법은 평화통일의 대등한 동반자로 신뢰증진의 대상으로 존중하여야 할 동족인 북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북의 사상과 이념, 체제와 제도 일체를 붕괴시키거나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비방하고 적대시한다.


 국가보안법은 1991년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을 무색하게 만들며 유엔의 정식 가입국인 북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 중 유독 동족인 북의 국가성을 부인하며 반국가단체(내란단체)로 규정하여 북의 지도자, 간부, 북의 민중들 모두를 반국가단체(내란단체)의 구성죄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반국가단체인 북과 같은 주장과 정견을 개진하거나 한국 정부의 허가 없이 북 주민을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을 처벌 통제하며 심지어 북의 인터넷 사이트조차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며 형사처벌을 한다.


 특히 미군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물론 남북이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로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방안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하는 것까지 형사처벌한다. 평화적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안한 북에 대하여 적화통일방안이라고 비방하는 적반하장의 논리가 득세하는 비정상의 극치다. 외세와 야합하여 북 사회주의 붕괴를 노리며 자본주의로 흡수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셈은 휴전 후 정전협정에 근거하여 일관되게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 북에 대하여 한사코 대화와 협상을 회피하고 거부하며 북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노리고 온갖 핵 전략자산을 동원한 가공할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북의 무력통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해준다는 구실로 방어적 훈련이라며 위장하여 북 지도자 참수, 북 정권 격멸 및 평양점령 훈련을 자행하는 것과 똑같다.


 국가보안법은 한국 민중을 분단 냉전체제의 어두운 장막 안에 가두어두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매카시즘보다 더 악랄한 암흑의 장막을 뒤집어씌운 채 북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로지 북에 대해 비방하고 적대감을 고취할 자유만을 우리 민중에게 강요하며 동족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동족과 민족단결을 추구하며 반미자주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민중의 요구를 철저하게 짓밟는 파쇼악법으로 작동하고 있다.


 북에 우호적이거나 미국을 반대하는 일체의 활동이 불온시 되고 형사 처벌당하는 국가보안법의 위협과 억압 앞에 우리는 모두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무고한 형사처벌을 받았던 양심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양심수는 국가보안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에 맞서 저항하였으므로 오히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로 볼 수 없다. 한국 민중 모두가 누구나 기나긴 국가보안법의 악행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본능적으로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야만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진실과 정의가 뒤바뀌고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뀐 사회가 되었다. 한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포는 북이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광기의 폭력에 가위눌린 것이다. 한국민은 국가보안법의 위력 앞에 공포감을 느끼며 사는 트라우마의 피해자이다. 한국민은 누구나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광기의 폭력 앞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는 트라우마에 익숙해진 나머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다 국가폭력에 희생당하는 길보다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언제나 미국은 동맹, 북은 적이란 허위의 틀로 스스로를 검열하고 재단하기 십상이다.


 동족만을 적대시하고 동족을 붕괴시킬 목적의 국가보안법은 반통일, 반민중 악법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등 남북 정상의 합의를 이행하는 데 걸림돌이다. 한반도 종전선언 및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적대관계를 끝내야 하므로 북을 처벌하고 붕괴시킬 대상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선결적으로 폐지되어야 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하는 최우선의 최고의 과제다.


 일본 제국의 통치질서의 핵심 도구였던 치안유지법이 일제의 패망과 함께 비로소 폐지되었던 것처럼 국가보안법 폐지도 어쩌면 제2의 해방을 이뤄야 가능할 최후의 과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