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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재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2-19 17:03
조회
1336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월요일마다 함께 하는 점심 모임이 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식당을 찾아서 갔는데 얼마 전 인사발령으로 새로운 멤버가 합류하면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동료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엄격한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했다. 회사 근처의 수많은 식당들이 월요일에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늘 가는 곳이 보리밥집으로 자연스레 정해져 가는 분위기다.


 그 동료는, 어린 시절 닭 잡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목뼈가 딱하면서 꺾이는 소릴 듣고선 이후로는 닭고기를 먹지 못했고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에 선명하게 찍힌 보라색 마크를 본 순간 그 고기가 고기가 아닌 마치 살아있는 돼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져 이후로는 고기를 씹는 것이 불편하고 슬퍼지고 괴로워졌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마당에서 돼지를 잡아 선짓국을 끓였고 나는 직접 닭을 잡은 적도 있었다. 내겐 약간의 무용담같은 추억이기도 한데. 누구에겐 식생활을 바꾸는 트라우마로 누구에겐 평범한 일상과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나는 동료의 얘길 들으면서 감수성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을 뿐 나의 당연하고 일상적인 육식을 심각하게 돌이켜 보진 않았었다.


 그러다 환경캠페인 녹음을 하면서 전 세계 교통수단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13%)보다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18%)의 양이 더 많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예전에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의 양이 지구온난화의 양이 상당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흘려들었다. ‘소가 방귀를 뀌어봤자 얼마나 뀐다고 너무 허무맹랑한데?’라고 말이다. 내가 고길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그런데 육식이라는 일상을 위한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오염, 온실 가스배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일회용품, 자동차와 비행기 매연, 석탄발전 탓이라고만 믿었던 내게 적잖은 당혹감과 불편함이 밀려왔다. 적당한 위안과 핑계거리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내 동료가 어린 시절 고기를 씹으며 느꼈던 괴로움과 불편을 나도 이제야 조금씩 느끼는 중이라고나 할까.



사진 출처 - pixabay


 “뭘 먹는지 말해보시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겠소” 프랑스의 법률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얘기다. 이 말이 나는 이렇게 들린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고. 내가 생각 없이 먹어온 고기가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가져오고 있었다니... 내가 바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아닌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 아주 작은 일이지만 습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늘 만만치가 않다. 이건 마치 신앙과 같은 것이다. 단순히 신을 믿는다는 말이나 생각이 신앙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막연한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고 실천하는 일에 맞닥뜨리면 나의 신념은 너무 쉽게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다.


 스웨덴의 환경운동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어떻게 감히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몇몇 기술적 해결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척 할 수 있나”라고 일갈했다. 이것은 정치지도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던져진 질타이기도 하다.


 ps. 나의 이런 결심을 아내에게 말한 적 있다. “우리도 이제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해볼까?”라고. 하지만 이 결심은 아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대신 저녁마다 족발과 삼겹살을 찾는 나를 향한 아내의 비아냥거림만이 들릴 뿐... “남편님, 채식 하신다면서요!”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