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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의식이 문제겠지(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4-26 17:18
조회
918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어째 갈수록 더 피곤하고 답답하다. 5년이라는 시간이 막막하게 느껴지더니 요즘은 두 달도 너무 지겹기만 하다. 그중 압권은 역시 공간에 의식을 지배당하는 차기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간략하게 나름대로 대선을 평가해 본다. 첫 번째, 국민들은 착한 척하고 무능력한 정부에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안 착하고 능력 있는 체하는 차기 정부를 선택했다. 둘째,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라는 위기 초기 높아졌던 연대감을 빠르게 고갈시킨 빈자리를 채운 건 각자도생과 혐오였다. 셋째,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는 ‘살아있는 권력’인 검찰 총수가 청와대까지 접수했다. 넷째, 양당제를 부추기는 대통령제 속에서 제3정당은 끊임없이 ‘철수’와 ‘비판적 지지’ 혹은 ‘너네 때문에 졌다’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섯째, 실력없으면서 청와대를 탐하는 자 선거 패하고 압수수색 90번 당할 각오를 하라.


 어쨌든 선거는 모 아니면 도, 승자는 모든 걸 갖는다. 그렇게 윤석열은 기분 째지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자꾸 머리에 아른거린다. 한 명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이끌며 강바닥과 남북관계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분이고, 다른 한 분은 대통령 되는 것만 생각하다 소원성취한 뒤로는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분이다. 사실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새 정부에 딱 하나 기대했던 건 공약 실천한다고 여기저기 번잡하게 만들지 않는 거였다. 어차피 제대로 된 공약도 없었고, 솔직히 공약 실천하는 걸 기대하고 찍어준 국민이 몇이나 되겠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광화문청사 공약만은 꼭 파기하길 바랬다. 청와대를 정부서울청사로 옮긴다는 건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가 공약했고 안철수와 단일화하면서 문재인이 받은 뒤 꽤 진지하게 검토를 했지만 결국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접었던 문제였다. 사실 정부서울청사는 조금만 생각해도 청와대가 들어가기엔 적합할 수가 없는 곳이다. 이미 검토가 다 끝난 걸 모른 척하며 무려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로 꺼내는 발상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만, 뭐 어차피 흐지부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놓고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청와대를 정부서울청사로 옮긴다는 건 깨끗하게 포기했다. 매우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용산으로 옮긴단다. 청와대를 국민께 되돌려 준다는, 국민과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단다. 도대체 어느 국민이 청와대를 되돌려달라고 했단 말인가. 대선 공약집 어디에도 용산 얘긴 없었는데, 어떤 국민들과 언제 무슨 약속을 했다는 것일까. 그럼 국민들이 ‘청와대처럼 용와대도 국민들에게 되돌려달라’고 국민청원이라도 하면 그때는 또 어디로 이사를 가시려고 이러시나.


 듣도 보도 못한 용와대 이전 사태가 제대로 될지도 걱정이지만, 그건 어차피 내가 상관할 문제 아니니 알아서 하시라고 하겠다. 그래도 두 가지는 짚고 싶다. 먼저 윤석열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말을 했는데, 처음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는 건 고백해야겠다. 맞다. 공간은 의식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무실 책상 배치만 달라져도 직장문화가 달라진다. 집안 책상 배치를 바꾸고 나서 성적이 올랐다는 얘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정학이란게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는 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미 5년 전에 문재인이 집무실을 청와대 본관에서 여민관으로 옮겼다. 대통령과 수석비서관들이 걸어서 1~2분 거리에 모여서 일을 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용산으로 굳이 옮길 필요가 있을까? 인공지능으로 직업 찾아주는 어플을 비롯한 다른 많은 대선공약처럼, 청와대 공간배치도 이미 다 실현됐는데.


 청와대가 풍수지리에서 흉지라는 어느 법사 얘기 때문에 청와대를 옮기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단 하루도 청와대에서 잠을 안 잔다는 얘길 듣고 보니 그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지만,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니까 신앙 문제로 왈가왈부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청와대가 과연 흉지일까 하는 건 따져보고 싶다.


 나는 청와대가 흉지가 아니라고, 결코 흉지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자리에 대통령 집을 지은 뒤로 대한민국이 거쳐온 길을 보자. 말레이시아에 개발원조 받아서 다리를 세우고 필리핀으로 해외 선진문물 견학을 가던 나라가 몇십 년 만에 선진국이 됐다. 경제력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고, 군사력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한국에서 생산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 심지어 먹거리까지 세계 각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이렇게 국운이 번성한 적이 없다.


 이게 다 청와대 자리에 궁궐을 세운 뒤에 일어난 일인데, 이 정도면 흉지가 아니라 천하의 길지(吉地)가 아닐 수 없다. 어떤 분들은 비명횡사하고 자살하고 감옥 간 전직 대통령 얘길 하는데, 그건 술 덜 먹고 전임자 정치보복 안 하고 돈 욕심 덜 부리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는 문제다.


 국민들에게 하루빨리 되돌려줘야 할 건 청와대가 아니라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이 아닐까 싶다. 이미 대선 당시 이재명-윤석열 모두 신속하게 50조 원 이상 규모로 손실보상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조차 금융위기 터지자마자 수정예산안을 편성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깔짝깔짝 추경만 열심히 했다. 마른 수건 쥐어짠다고 물 나오는 거 아니다. '자린고비 정부'이자 '수전노 정부'로서 최선을 다했을 때 대선 결과는 이미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간이 의식 지배하는 방법만 따지는 풍수만 쳐다보고 있기엔 국민들이 너무 피곤하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