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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력 지역에 소형원전을 짓겠다고?(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3-24 14:42
조회
714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20년 넘게 석탄화력발전소로 고통받아온 당진이 뜬금없는 핵발전소 건설 대상지로 언급돼 지역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진지역에는 현재 한국동서발전(주)에서 운영하는 10기의 대형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1999년 6월부터 500MW 규모의 1호기 가동이 시작된 이후, 같은 해 12월에는 2호기가, 이듬해인 2000년 9월에는 3호기, 그리고 2001년에는 4호기가 차례로 건설됐다. 이렇게 하나씩 늘어난 화력발전소는 2016년, 기존 발전용량의 두 배에 달하는 1020MW 규모의 9·10호기까지 잇따라 건설되면서 현재 총 6040MW를 생산하는 석탄화력 10기가 운영되고 있다.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대형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피해는 두말할 나위 없다. 석탄을 떼서 물을 끓이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그 과정에서 받아온 주민들의 일상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외국에서 수입한 석탄 하역 과정에서, 다 태운 석탄재를 야적하는 회처리장에서도 검은 탄가루나 석탄재 등의 물질이 바람을 타고 인근 마을까지 날아와 집과 자동차, 농작물 등에 내려앉는 피해가 종종 발생해왔다. 특히 수확을 앞둔 배추 속 사이사이에 비산먼지나 강하분진이 잔뜩 껴 다 키운 농산물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사진 출처 - pixabay


 석탄을 저장해 놓는 대형 저탄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길게는 열흘 이상 지속돼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가스 등으로 주민들이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함으로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은 지역의 환경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지역사회의 피해가 커지고 계속해서 민원이 발생하면서 당진화력발전소는 지난 2017년부터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며 과거에 비해 상당한 개선을 이뤘다. 또한, 지자체 차원에서도 발전소 인근에 민간환경감시센터를 운영해 환경피해 조사와 사고 발생 대응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해서는 고압송전탑과 같은 송전설비가 필요하고, 고압송전탑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는 여전하다. 그리고 당진지역에 마지막 남은 생태환경의 보루라고 불리는 지역에 추가적인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발이익과 피해보상, 각종 이권개입 등 경제적 문제가 얽히면서 발전소 일대 지역공동체는 완전히 와해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캠프에서 에너지정책 분야를 주도해온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충남 당진 등 기존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 지으면 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지역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주 교수는 지난 18일 경향신문 6면에 실린 「‘탈원전’서 ‘원전강국’으로…원자력, 녹색에너지 전환 주목」 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석탄화력발전소에 이미 전력망이 깔려 있기 때문에, 발전기를 석탄 대신 SMR로만 하면 된다”며 “고용승계의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이 온갖 피해를 감내하면서 생산한 전기를 그저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대도시 주민 입장에서는 “기존에 있는 발전소를 활용해 소형핵발전소를 지으면 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겠지만, 20년 넘는 세월 동안 대규모 발전회사와 싸우면서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얘기다. 전기를 생산해 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왔는지, 지역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한다면 이렇게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당진은 전력자립도가 400%가 넘는 지역이다. 지역에서 소비되는 전력보다 4배 이상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수도권 시민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들러리도 아니다.


 탈석탄·탈원전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시대를 역행하며 원전 강국으로 나아가겠다는 발상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지역을 배제하고 지역주민을 소외시키는 SMR 추진은 결코 현실화돼서는 안 될 일이다. 조만간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주한규 교수의 발언이 단순한 발언에 그치지 않을까 봐 우려스럽다. 덕분에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지역주민들은 “이제는 정말로 지역을 떠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있다.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부국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