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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차 수요대화모임(05.09.28) 정리 - 문정현 신부(평택 범대위 상임대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09:58
조회
296
제34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9.28)- 평택 지키다 죽겠다

문정현/ 신부, 평택범대위 상임대표



난 74년 이후 소위 운동권 생활을 해왔다. 딴 짓 한번 해 본적이 없다. 내 의식은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느끼면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소위 국가기관에 의해 벌어진 인권침해에 항의하기 위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감옥에 가고, 나왔다 또 가고, 나오고를 반복하면서 독재정권 타도운동과 노동운동 등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분단이라는 상황이 독재정권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유보한다는 독재정권의 논리는 결국 분단이 해소되어야 깨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식이 결국 89년에 동생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파견해 임수경과 동행하도록 한 것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과 평양을 가지만 여하튼 남북분단을 극복해야만 군사정권도 무너트리고, 인권도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서 미국이 보였다. 그것이 지금 평택에서 싸우는 이유다.
모든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

사실 처음에 나는 친미적이었다. 영세 세례를 받은 나로서는 일제시대 때 매우 친일적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친미적이다 못해 완전히 반공에 앞장선 가톨릭적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내게도 가보고 싶고, 부럽고, 도와주는 나라였다.

이런 생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내 제자 조성만 때문이다. 그 이전에도 80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재판을 빠지지 않고 방청다니면서 어느 정도 반미교육이 되었다. 그런데 88년 조성만이 올림픽 남북공동개최와 한반도에서의 미군철수를 부르짖으며 명동 성당에서 할복투신자살을 했다. 조성만은 내가 영세를 준 신부고, 해성노동학교 제자이지만 내 신념의 스승이다. 그 사건 이후로 미국이 그렇게 고마운 나라만은 아니라는 의식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미국과 싸우게 된 것은 97년 군산에서다. 군산에는 230만평의 미공군기지가 있는데, 미군 범죄가 한 주가 멀다하고 벌어졌다.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범죄가 끊이지 않고, 소음과 오폐수 등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그 동네에서 ‘미군땅바로찾기시민모임’이 만들어져 매주 금요일에 지금까지 8년 동안 집회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의 패권을 손에 쥐고, 종속관계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평택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문정현 신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인 F-15K 비행기 선정과정도 이를 잘 보여준다. 조건이 가장 나쁜 보잉사의 비행기를 선정한 것은 미국과의 종속관계 때문인 것이다. 결국 2008년까지 40대를 들여오는데, 모두 12조가 든다. 또 동해에 이지스함 두 대를 들이는데, 한대가 2조 5천억에 이른다. 한국이 미국의 죽어가는 산업체를 살리고 있다. 결국 이런 경험을 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자주화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답을 얻었다.

미군기지 확장저지가 자주화의 관건

지금도 평택에서는 매일 촛불집회가 열린다. 오늘이 394차다.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필요한 땅이 모두 349만평인데,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2리 전체 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땅을 내놓지 않아 국방부에서 확장을 위해 필요한 땅의 겨우 2%만 샀다.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이 더 억울한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라는 점이다. 39년에는 일본군 공군기지 때문에 쫓겨나고, 한국전쟁 중이던 52년에도 기지를 확장하며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 갯벌 옆 움막에서 살아야 했다. 이렇게 움막에서 갯벌을 갈아엎고, 흙은 파다 메워 논을 만들었다. 소출이 일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국유지로 선정해 그 돈을 갚는 데만 또 10여년이 흘렀다. 겨우 자기 논으로 만들어 조금 살만한데 어느 날 갑자기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정부가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실정이다. 삶의 터전이 그곳이고, 할 줄 하는 것이 농사밖에 없는데 땅을 내놓으라니 어떻겠는가. 이렇게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미군기지 확장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주는 요원한 것이다.

협의매수 기간이 지난 8월 31일에 끝났는데, 지금은 건교부 산하에 수용재결위원회가 만들어져 강제매수에 들어갈 계획이다. 강제매수에 들어가면 매수에 필요한 돈을 법원에 공탁하고 강제철거를 한다. 아마도 그 시기가 설 전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평택은 긴장감이 매우 높다.

평택에서 죽을 것

지난 7월 10일 평화대행진에 1만2천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럼에도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은 계속되고 있는데, 무리수를 두다보면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부작용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 부작용이 큰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2월 11일 제2차 평화대행진을 계획하고 있는데, 1차때 보다 많은 사람들을 모을 계획이다. 단 절대 비폭력적이어야 한다. 1차 때도 평화행진을 했는데 지휘관이 얼마나 당황했으면 확성기에다 대고 공격하라고 했겠는가. 2차 때도 그런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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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평택들판에서 만나자


내 나이가 이제 곧 일흔인데, 지금까지 꼭 10년마다 한 번씩 큰 변화가 왔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자주사회라는 변화를 보고 죽었으면 한다. 평택에서 살아나올 마음은 없다. 땅을 빼앗긴다면 내발로 걸어 나오지 않겠다. 단지 평택 주민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또 싸우고 싸우면 바위가 계란에 의해 무너지듯, 흐르는 물에 바위가 녹아나듯 자주사회가 건설될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서 살다 가는 것, 이것이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는 12월 11일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