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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차 수요대화모임(06.03.22) 정리 - 전규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03
조회
429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평소에 강의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개념’에 대한 접근에서 출발하곤 한다. 왜냐하면 개념이 제대로 안서면 제대로 못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모든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올바른 개념의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바로 ‘나 자신’

그렇다면 ‘언론’이란 무엇일까? 언론은 ‘말(言)로써 설을 푸는 것(論)’이다. 다시 말해 추상적인 뜻과 사고를 구체화해서 말을 통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하면 신문, 방송부터 떠올릴 텐데 이는 올바른 개념이 아니다. ‘언론’과 신문 등의 ‘언론매체’는 구분되어야 하는 다른 개념이다. 언론은 말을 통해 내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 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 의식을 표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어릴 적에 읽어봤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회적 발언이 억압될 때 극한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인권과 언론이 밀접한 관계임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인권의 가장 기본은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믿는 바를 말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권리, 즉 ‘언론인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때만이 비로소 인간 주체의 본질을 지켜나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셀 푸코의 ‘파르헤시아’란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말로 ‘자유언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바를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항해 두려움 없이 발언할 수 있는 능력과 도덕적 책무’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용기를 가지고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발언함으로써 사회적 소통을 촉발하고 진행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도 진정한 자유는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했다.

결국 권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공식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공적 자유와 이것이 발휘될 공간을 더욱 더 확대하는 것이 언론의 요구이며, 우리의 역할이다.

그런데 파르헤시아란 개념을 통해 사적 차원뿐만 아니라 공적인 차원에서도 언론을 실천해야 할 때 우리는 스피커가 필요하다. 즉, 언론을 증폭시켜서 사회적 수준에서도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매체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문, 방송과 같은 언론매체이고, 우리는 이들에게 ‘매개체’로서의 역할과 자격을 위임한 것이다.

‘언론매체’가 ‘언론’으로 인식되는 오류

하지만 오늘날 언론매체가 스스로를 ‘언론’이라고 부르며, 이로 인해 우리도 언론을 나 자신이 아닌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각한 인식의 오류에 빠져 있다. 또한 언론매체는 앞서 언급한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체 오히려 민중의 소통을 억압, 통제, 왜곡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언론매체가 아닌 권력과 자본의 선전매체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위기’와 ‘언론매체의 선전매체화’가 언론 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의 오류에 대한 각성과 함께 언론매체의 선전매체화에 대하여 언론의 관점에서 비판해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늘날의 언론 현실에 맡게 새로운 미디어 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생각한다면 비판의 대상을 설정함에 있어서 신문과 방송을 분리하고, 다시 신문을 조·중·동과 그 외로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논리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비판의 대상은 ‘미디어 전체’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 있어서 시장경쟁의 메커니즘이 지배적인 운영원리가 되고 있고, 이로 인해 미디어의 전반적인 수구화, 동질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총체적 수렴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각각의 미디어가 사회의 다양한 소통의 목소리들을 담아내기 보다는 월드컵, 야구 등 소위 ‘팔리는 아이템’만 다루려는 선전매체화, 장사 안되는 파르헤시아의 상실 등 미디어 전체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경쟁 논리 속에서 각각의 차이를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제 진보적 관점에서의 미디어 운동은 안티조선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또한 미디어 운동의 재구성 전략은 ‘어떻게 하면 미디어 내부에 잔존하고 있는 진보적 존재들과 미디어 바깥의 진보적 영역이 연계, 협력하여 미디어 위기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접근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미디어 내부에서 신자유주의적 세례 속에서 성장한 신세대와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이전 세대 간의 운동적 흐름의 단절을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진보적인 운동을 재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미디어 외부에서는 진보적 언론개혁운동 세력들이 정치 영역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도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보다는 점차 경영, 경제학 등의 ‘돈 되는’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진보 세력의 고민과 연대가 매우 절실한 시점이다.

그리고 거대한 자본의 네트워크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 역시 단결하여 보통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공고한 네트워크 속에서 각각의 운동적 에너지의 흐름들이 서로 만나 강렬한 스파크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때 기존 시스템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네트워크에 대항해 네트워크로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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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에 네트워크로 대항하자

정리해보자면 현재의 언론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 스스로가 언론으로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담론을 형성하고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 미디어를 비판함에 있어서 비판과 생산의 이중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전면적인 FTA의 실시와 함께 올 자본의 총공세 속에서 우리의 미디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들을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며, 동시에 민중을 위해 존재하는 미디어 본연의 체질로 다시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언론매체가 민중의 스피커로서 본래 자리를 되찾아 갈 때 진정으로 자유가 보장되고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성옥/ 인권연대 인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