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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차 수요대화모임(08.9.24) 정리 - 한정숙(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39
조회
475
2008년 촛불집회와 여성의 역할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여성이 공공성의 주체로 대두하고 있는 모습, 즉 단순히 여성이 공적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한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사실 여성은 가정 안에 들어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한 오랜 통념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가 여성의 지위와 관련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나누고 여성이 속하는 영역은 사적 영역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여성의 공적 영역 진출을 제한해 왔다.
여성은 가정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

나는 여성이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고 사회, 정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자주 말해 왔다. 여성교육이 확대되어 여대생의 수가 늘어나고 대학 졸업 후 취업하는 여성의 수도 늘어났지만 적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익, 사회정의,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여성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나의 이런 작은 바람에 대해 한 여성 후배가 “독특하다”고 평한 적이 있다. 좋다, 나쁘다는 평가가 아니고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은 표면 아래서 여성의 사회적 관심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많은 여학생들이 학생·노동운동에 참여하여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이들 운동은 많은 경우 위계서열과 집단의식을 특징으로 하였고, 젊은 여성참여자들은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에서 남성 지도자, 동료들을 위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였다.

반면 여성은 이와 다른 차원에서 사회 전체를 향해 발언하고 공공의 이익 수호를 위해 나서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2008년의 쇠고기 반대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많은 여성 참여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이 공공성의 영역에서 주된 행위자로 등장하되, 이는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권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여성의 희생 위에서 공공의 이익을 획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여자들이 여성의 권리 신장, 여성을 위한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전체의 문제, “우리 모두를 위한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정책”을 이야기하다

구체적으로 2008년 광장에서 드러난 특징들을 몇 가지 짚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촛불집회에 여성이 활발하게 참여한 데는 화장품, 생리대, 여학생들의 생명 안전 문제 등 여성 고유의 문제가 부분적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고유의 문제보다 사회 전체적인 문제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다. 여성은 “나의 생명을 지키면서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새로운 국면이다. 보수 세력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보수 세력은 광장에 나온 여학생, 주부들이 동원되고 사주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체 누가 누구의 사주를 받는가.

2008년 광장을 살펴보면 담론의 주체로 등장한 ‘소녀들’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이른바 ‘촛불소녀’들의 전면적인 등장이다. 촛불집회에 나선 소녀들은 스스로의 정치적인 관심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소녀들의 의식전환을 보여주는 예를 어느 네티즌이 글에서 찾아보자.

중 3인 큰 아이는 알아서 책을 뒤지더니 꿈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사람에서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요. 특히나 거울공주 작은 딸래미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언니와의 말씨름에서 지지 않으려고 인터넷만 뒤지고 있습니다.

단지 쇠고기 문제만이 대상이 아니었다. 5월 6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만난 여중 2학년 학생은 또렷한 어조로 “대운하 정책만 해도 대통령이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여학생들이 그렇게 집회에 많이 참여했을까. 입시경쟁에다 외모경쟁에까지 시달리는 소녀들은 그런 삶이 고달프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에 대한 애정과 배려에서 출발하여 공익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갔다. 남성들보다 높은 네트워크 이용도는 이런 관심이 표출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과거 남자들의 네트워크가 ‘연줄’에 집중된 것이라면, 현재 여자들의 네트워크는 ‘연대’에 집중된다고 할 수도 있다.

주부들도 육아 사이트, 교육 사이트 등을 통해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어 있고, 정보에서도 소외되지 않는다. 특히 주부들은 타인을 보호하는 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였다. 한 주부는 “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저 아이들은 음식선택권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집회에 참석하여 자기 친자녀들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의 건강도 함께 지키고자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유모차 부대’가 지닌 진정한 의미이며,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커다란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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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부대’의 핵심은 공적 참여

이처럼 쇠고기 반대 논의에서 여성들이 보여준 것은 권력욕, 지배욕에 바탕을 두지 않은 공적 관심이었다. 공적 활동이 소득 활동, 권익 옹호만을 의미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여성의 의식과 활동에서의 공공성 확보가 ‘모두의 하녀’, ‘모두의 식모’, ‘모두의 청소부’로서의 여성이라는 성(gender) 논의로 이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평등한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여성주의는 희생자 담론에 입각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여성이 불쌍하고 배려 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여성은 물리적 폭력 앞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약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체로서 더 불리한 점은 없다.

여성은 공공성의 주체로서 나를 살리고 전체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럴 때 여성은 시민의식을 넘어서 인간적 가치의 실현자로서의 참 인간의 경지를 탐할 수 있다. 나는 여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사랑을 하고 개인적 행복을 누리고 공적 영역에서 권익도 누리면서 공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공공성 수호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해 가기를 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덧붙여야 할 사항이 있다. 패권국가에서는 여성의 위상이 낮다. 미국에서는 힐러리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데 결국 실패했다. 반면,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여성 대통령도 활동했다. 한국에서 여성이 공공성의 수호를 위해 활동하는 것은 군사주의 극복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동시에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