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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차 수요대화모임(08.6.25) 정리 - 이명원 박사(문학평론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37
조회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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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대학은 무엇인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사람들은 대학을 지식인들의 거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다소 회의적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들의 대부분은 단편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굳어진 구조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위기’란 말이 한국의 대학들을 이야기할 때 전혀 무리 없는 표현이다. 크게 보면 현 대학의 위기는 한국사회 전반에 만연한 구조적 위기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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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위기는 한국 사회의 위기를 반영


최근에 언론이 KBS 이사로 활동하다 해직된 경희대 모 교수 문제를 다루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학 당국은 그 교수에게 KBS 이사직을 그만두라는 권고를 하였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해임됐다고 한다. 대학 측은 학교의 승인 없이 이사가 되고, 또 그로인해 수업에 소홀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당사자는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다가 집권하는 정부가 바뀌니 해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항의했다. 정권의 변화에 오락가락하는 대학 운영의 한심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시간강사의 경우는 너무도 고질적인 문제다. 6만 여명의 사람이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일용직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임용과 재임용에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고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강사들이 스스로를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낀다.

법제도의 사각에서 암울한 대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현 대학사회에 적용되는 교수임용제도나 대학 이사진, 경영진, 총장 등에 대하여 활발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핏 보더라도 연구 능력이 뛰어나고 학생들과 친화력도 좋아 모범적인 교수라 할 만한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이런 교수들 중에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다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내 문제가 심각한 대학에서 재단이나 총장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해직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신입교수들을 뽑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학의 교원 임용이 연구나 강의 능력이 아니라 이사장이나 총장의 취향에 따라 좌지우지되니 어찌 대학이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1950-60년대에 냉전체제의 영향으로 지식인들을 전폭적으로 통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현상의 일부로 좌파를 착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핵심적인 거점이 대학이었다.

많은 연구의 실질적인 목적은 냉전체제를 확대재생산하는 논리 개발이었다. 냉전체제에서 미국 등의 자유주의 진영의 우위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연구에 많은 연구비가 지원되었고, 이 과정에 많은 교수들이 동원되었다. 연구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무기개발, 위성개발을 통한 적국감시, 군사작전과 관련된 내용,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자유주의 진영의 체제우월성, 제3세계 진영의 포섭을 위한 전 지구적 비교연구 등이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정부 지원 외에 기업의 연구비 지원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다. 기업과 정치기관이 연구비의 재원을 대고 이에 대학 교수들이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한편으로는 조직연구를 수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에서 제공되는 용역 연구를 행했다. 교수들은 국가 주도 연구를 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냉전체계에 협력하게 되었고, 연구 결과 또한 국가의 의도에 종속되는 것들이 나타났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를 통해 비판적 지식인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연구자의 문제의식이 정형화·협소화되었으며, 학술연구에 대한 국가 통제라는 위험한 관행이 만연하게 됐다.
국가와 시장 권력에 종속된 대학

시대적 상황은 다를지라도 현재 한국에서는 지식인의 통제라는 맥락에서 냉전체제의 미국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와 시장 권력을 위한 대학 지식인의 통제는 특히 IMF 이후에 활발해졌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신자유주의의 맹목적 추구와 더불어 대학 지식인들의 초라한 전락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수계약제 문제도 이 시기부터 대두되었는데, 이때 도입된 것이 교수업적시스템이다. 교수업적시스템을 만들어낸 학술진흥재단은 학술재단에서 인정하는 학술지만 인정하고 평가에 포함시키는 식의 기준을 만들었다. 표준화된 시스템에 의해 우열이 가려지고 이분법적인 평가 잣대가 고착화 되며, 이에 따른 거액의 연구비 지원에 대부분의 지식인과 연구 결과가 종속되는 매커니즘이 탄생했다. 흔히 ‘연구 용역’이라고 쉽게 이야기하고, 쉽게 생각하지만 연구과제가 설정되고 그것을 수주하기 위해 연구팀을 조직하고 지원하며 선정되는 과정에서 교수에 대한 사회통제가 강화되기 마련이다.

취임하자마자 대학에 ‘실용’의 가치를 들이댄 이명박 정부는 대학을 연구 성과가 아니라 학생들의 취업 성적으로 평가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 대학의 취업률이 떨어지면 교육부의 지원을 삭감하고 평가서열을 낮추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교수들을 학문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연구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영역에 잘 진입할 수 있는 예비회사원을 얼마나 많이 양성했는가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취업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학과는 구조조정 되고, 얼마나 많은 수주를 받았느냐에 따라 교수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달라진다. 이런 측면에서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대학의 위기, 학문의 위기, 교수로서의 정체성의 위기와 직결돼 있다.

교수들의 봉사활동에 관한 항목 또한 정부 관련 위원회나 세미나에서의 강연이나 특강만을 봉사로 인정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에서의 강연은 봉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연구만 열심히 한 교수는 점점 더 좋은 평가 점수를 얻기 힘들어지며,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교수들은 이 시스템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된다.

최근 보편화된 대학의 기업화도 시장경제형 지식인을 장려하는 정부의 지향과 연관돼 있다. 학부제가 들어서면서 학과단위가 폐지되었으며,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실용적 인간형으로 바뀌어가고 대학시스템도 퇴행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쯤 되면 고등교육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비판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노동자를 만드는 것이 과연 고등교육의 올바른 지향이라 할 수 있는가.
내부의 자기반성이 절실하다

대학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압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부에서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주체는 교수와 학생이며 그들이 상황을 방치하면 대학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비록 기존 체제의 대안으로 대안학교나 외부 연구공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는 대학 내부 문제에 무책임한 것이 될 수 있으므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대학은 분류체계에 저항해야 하는 곳이다. 근거 체계에 대한 회의를 하게 만드는 것이 대학의 기능이고 그 존재 이유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교수들은 자신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최초로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등록금과 그 밖의 다른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나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 교수사회는 정권의 차원에서, 또한 다른 여러 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 대학의 총체적인 상황이며 이 시스템대로 가다간 괴멸이 멀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이정아/인권연대 인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