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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차 수요대화모임(08.1.23) 정리- 류정순 소장(한국빈곤문제연구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31
조회
372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요즘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현안부터 말을 하겠다.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개혁’ 작업 중에 가장 의미있는 것이 바로 기초생활보장체계의 출범이다. 그저 보호의 대상이던 ‘생활보호대상자’가 ‘수급권자’, 곧 가난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중요한 반전이다. 물론 생활보호대상자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수급권자가 되었거나, 사회복지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 기초생활보장의 지급 체계가 노무현 정권에 의해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기가 다 끝나가는 정권이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된 개혁의 성과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퇴보시키고 있다. 현재의 급여 체계는 이른바 ‘통합형 급여 체계’이다.

수급권자가 되면 주거, 의료, 교육 등에 대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급여를 지급하지만, 수급권자가 아닌 ‘차상위 비수급 빈곤층’의 경우에는 급여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차상위 계층 중에는 일정한 수입이 있어도 수급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거에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이 때문에 빈곤의 악순환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급방식을 바꾸자는데

여관이나 여인숙 등에 주거하며 수입의 대부분을 주거비용으로 쓰는 어떤 사람에게 임대주택이 제공된다면, 그는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근거를 가지게 된다. 수급권자가 아니라도 주거, 의료, 교육 등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지원이 필요하고, 지금과 같은 ‘통합’의 방식이 아니라, 지급 방식을 분리(개별급여체계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었다. 자활후견기관이나 일부 NGO에서도 이런 주장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의미있는 주장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복지의 확대를 통해 보다 많은 빈곤층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생각하는 개별급여체계는 기초수급권자들에 대한 보장 수준을 낮춤으로써 절감되는 예산을 갖고 비수급권자들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밑돌을 빼서 윗돌을 쌓겠다는 셈이다.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다른 나라보다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근로능력이 있어도 실업상태로 빈곤에 처하게 되면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한 달 내내 일했는데도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적은 액수만을 번다면, 그 차액은 국가가 지급해 준다. 이런 급여를 받는 사람들을 ‘조건부 수급자 ’라고 부른다. 조건부 수급자들은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1만명 정도 밖에 안된다. 비수급 차상위 계층이 대략 400만명 정도 된다고 볼 때, 399만명쯤은 배제되는 제도이다.

그렇지만 자활후견사업에 참여한 각 기관, 단체, 대학 등은 자활사업을 통해 ‘자기들만을 위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였다. 빈민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자활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일자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자기들의 ‘밥그릇’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자활기관 종사자들은 수급권자들에게 지급되는 예산을 줄여서라도 자활기관의 사업대상이 되는 비수급권자들을 위한 예산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수급 빈곤층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면 교육, 주거가 필요하면 주거, 의료가 필요하면 의료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해주고, 수급권자에게는 이전처럼 모든 영역의 생활을 다 보장하겠다는 것이 ‘개별급여체계’의 핵심이라지만, 앞서 밝힌 것처럼 기초보장을 줄여서 ‘아끼는’ 예산을 갖고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는 그저 복지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수만 늘리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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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꼼수에 불과

기초생활보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장치이다. 수급권자(受給權者)라는 말은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생소한 표현을 쓴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국민은 국가로부터 적정한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확인을 하고자 한 것이다. 최소한의 생활수준은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만약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개별급여체계로 간다면, 이러한 권리로서의 사회보장체계의 원칙이 무너진다. 즉, ‘최저생계비 = 선정 기준 = 보장 수준’이라는 기초생활보장의 삼위일체 원칙이 훼손되는 것이다. 수급권자의 수가 줄어들게 되고, 지급받는 급여의 액수가 주는 것은 지금도 부족하기만 급여 지급을 통한 기초생활의 보장이라는 원칙을 훼손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전의 생활보호체제에서는 급여가 시혜였지만 지금의 체계에서는 권리이다.
복지병이 있기는 하나?

OECD 가입국 중에서도 가장 부끄러운 수준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가 한국인데도 일부에서는 ‘복지병’이 문제란다.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초수급을 받기 위해 일을 안한다는 거다. 복지병 환자들 때문에 아까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어선 안되고, 그저 국가의 도움에만 기대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재활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논의가 가능하려면 ‘과연 복지병 환자가 있냐?’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복지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유감스럽겠지만, 적어도 한국에는 이른바 복지선진국에 있다는 것과 같은 복지병 환자들은 없다. 기본 제도 자체가 엄격한 기준을 갖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능력이 있는 빈곤층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기초생활보장의 혜택을 받고 있을 뿐이다.

혹시 일부 장애인들이 앞서의 지적에 해당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자리가 있는데도, 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게을러서 또는 생활보장으로 받는 급여가 탐나서 일부러 일을 하지 않는 장애인은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고,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등에서는 기껏해야 월 6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 굳이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55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 의료보험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5만원을 더 받기 위해서 언제 짤릴지 모르는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일을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게 복지병에 걸린 장애인의 탓인가, 아니면 실질적 복지를 보장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잘못인가.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근로장려제가 올해부터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일을 하는 수급권자들에게는 받은 임금에 대해 그만큼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근로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빨리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대안이 시행되는데도 복지병 운운하면서, 수급권자들의 급여수준을 낮추려는 정부의 의도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초생활보장법의 입법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그래도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복지병 환자가 많다면(아니, 있다면) 근로장려제를 시행하여 그 효과를 분석해보고 난 다음에 제도를 바꿀지를 고민해도 늦지 않다.
수급권자들의 급여수준을 낮추면 안된다

나는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해왔던 인권단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노력해줄 것을 바란다. 자활후견기관 등이 각자의 처지에 따라, 각자의 밥그릇 때문에 원칙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을 보이는 지금과 같은 때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권단체들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기 때문이다.

정리: 임수정/ 인권연대 인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