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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차 수요대화모임(08.11.26) 정리 -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42
조회
337

뉴라이트와 역사교과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2004년 10월경 뉴라이트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나 도대체 뭐가 ‘뉴(new)'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꼴보수’의 대표격인 김용갑 의원 등 여러 명이 ‘저게 바로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라며 맞장구를 쳤을 정도니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흔들기가 한참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근현대사 특강 강사들 경력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뉴라이트가 왜 그렇게 역사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의아해 할 것이 없다. 뉴라이트는 원래 그것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명박 집권 후 뉴라이트의 활약을 예상하긴 했지만,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왜일까. 아마 촛불집회를 거치며 그 해답을 얻었을 것이다. ‘좌경용공’의 운동권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촛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즉, ‘전교조 빨갱이'들이 새빨간 역사교과서로 애들을 다 버려서 그렇다는 것이 뉴라이트의 일치된 견해일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이 별거 있겠는가. 전교조 몰아내고, 교과서 뜯어고치는 식의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다.
친일잔재청산의 실패는 실패, 그 이상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우파가 없다. 서구에서 우파는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일단 상식적이며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수긍이 가는 자기 나름의 원칙도 있고, 관점이나 생각은 달라도 삶의 태도에 있어서 배울게 적지 않은 것이 서구의 우파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합리적인 ‘진짜’ 우파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것은 친일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이른바 ‘지식인’들이 많은데, 이들 중에 친일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 죄질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의 반역자들’이 문젠데, 한국의 경우 바로 이들이 집권함으로써 친일 잔재의 청산에 실패하게 되었다. 이것은 밋밋한 실패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한다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이 친일파에게 거꾸로 역청산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청산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4.19 이후엔 5.16 때문에 못하고, 박정희가 죽고 난 뒤 이른바 ‘서울의 봄’도 속절없이 날려버렸다.

좋은 기회 다 날리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과거청산을 했는가. 아니다. ‘인권 대통령’께서는 과거청산 대신에 국고 5백억 원을 들여 박정희 기념관을 짓자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15 경축사에서 포괄적 과거청산 얘기를 꺼내면서 국가보안법(국보법)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때 나는 평화박물관 운동을 하고 있는 터라 ‘국보는 국립박물관에, 국보법은 평화박물관에’라는 구호를 외치며 환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과가 어떤가. 국보법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다.

과거청산이란 게 쉽지 않다. 특히 노무현 정부를 보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 민변 초대 회장이 국정원장이 되고, 민변부회장 했던 이가 법무부 장관, 민변 초대 대표간사가 여당의 원내대표가 되었다. 17대 국회에서 국보법으로 감옥 갔다 온 사람들도 30-40명이나 되었다. 여당단독 과반수에 민노당 10석이 있었다. 말 그대로 국보법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을 폐지시키겠다고 했을 때, 과거청산이 불안한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했을 것이다. 대통령과 의회라는 선출권력을 다 내어주었으니 ‘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구도에서조차 국보법 폐지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청산 대상 세력들은 뜨끔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등장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다. 한국의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과거청산에 대한 대응 활동을 하기 위해 뉴라이트를 앞세웠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반동적인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이 내세운 것이 바로 건국정신이다. 좌경용공들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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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뉴라이트의 ‘건국정신’

뉴라이트에서는 입만 열면 ‘국가 정체성’을 내세운다. 과연 저들이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나 읽어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제헌 헌법은 3.1운동 정신의 계승을 전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부칙에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에 대한 헌법적 근거도 마련해두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에 가까운 경제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중요 산업 국유화, 토지개혁, 무상교육과 무상치료, 8시간 노동, 남녀평등과 같은 임시정부의 강령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툭하며 ‘좌빨(좌파 빨갱이)’로 지목되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도 이런 식의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달랐다. 제헌 헌법은 누가 만들었던가. 독립 운동 진영 내에서도 가장 오른쪽이 만든 것이다. 현재의 ‘우파’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국유화다 토지개혁이다 하는 것들은 이미 과거의 ‘우파’들이 그렇게 바라마지않았던 내용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의 뉴라이트들이 입에 담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진정한 모습이며, 그들이 수행해야 할 ‘우파’의 참 역할이다.

이렇게 수립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과제가 일제청산이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들은 남로당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해산,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등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일련의 ‘쿠데타’를 일으키며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좌절시켰다.

친일 청산을 무위로 그치게 한 반민족 행위자들은 제헌 헌법 위에 서서 그들의 권력을 말 그대로 ‘초헌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무기를 만들어냈다. 바로 국보법이다. 지금 저들이 떠들어대는 국가 정체성이란 제헌 헌법에 기초한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에 불과하다.
“민주화가 담긴 역사교과서를 만들자”

마지막으로 교과서 이야기를 해 보자. 지금 뉴라이트 세력들은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마치 굉장한 좌편향을 지닌 불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과서들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들이 거기서 거기다. ‘붕어빵 교과서’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거의 미비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학자들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공통된 이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비록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한 역사가 짧고, 실제로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전문가들도 수적으로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 드러나 있고 그에 대한 평가가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이러니 역사교과서들이 다양하게 있더라도 사실상 그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가 제시하는 역사라고 특별히 새로울 것이 있겠는가. 큰 차이가 없어야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다’. 전혀 엉뚱한 내용들로만 말이다. 그들은 1948년의 정부수립만 이야기할 뿐 거기서 조금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임시정부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 온통 친일파와 독재에 대한 미화로 가득하다. 유신시대의 ‘시련과 극복’, ‘한민족의 용틀임’ 등 ‘웅비사관’의 재탕뿐이다. 하긴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교과서’ 필진에 역사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2010년에 교과서 편찬 기준이 변한다. 이제 우리는 뉴라이트에 대한 무시를 넘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바로 현행 교과서가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한 과거청산의 역사, 우리가 손으로 일군 민주화의 역사를 교과서에 담아 다시는 역사의 후퇴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