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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차 수요대화모임(2011.09.28) 정리- 이철수(판화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1:06
조회
436
목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나뭇잎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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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은 대중들과의 소통 방법을 찾는 것이었단다. 1981년 첫 전시회를 열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왔지만, 역시 고민은 ‘소통’이었단다. 8년전 홈페이지 ‘이철수의 집’(www.mokpan.com)을 열었다. 이철수 화백의 작업은 나무를 다듬고 그림 그린 종이를 나무에 붙여서 칼로 파내는 아날로그적 작업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가상공간으로 투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많았단다.

2-3년쯤 고심이 거듭되었다. 그러다 온갖 선정적인 기사, 욕설, 이치에 닿지 않는 공허한 주장들이 난무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또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소통인데, 그러면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초등학생부터 팔순 노인까지 6만4천여 명의 독자와 소통하는 ‘나뭇잎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많은 독자가 읽고 있지만, 댓글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눈팅’만 하는 과묵한 손님이 많다. 역시 소통은 쉽지 않다.

25년 전 충북 제천으로 귀농했다. 박달재 밑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처음 도시를 떠날 때는 민중미술을 하는 사람이 투쟁의 현장을 떠난다는 생각에 번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서 살아보니 좋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굉장하다’는 느낌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박용길 장로님 빈소에서 문상을 하고, 새벽 2시쯤 집에 돌아왔다. 문득 하늘을 보는데, 밤하늘의 별들, 그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정말 굉장했다. 굉장한 우주를 접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우리의 고민들이 얼마나 누추하고 또 초라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림 그리다가 또는 책을 읽다가 막히면, 그냥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 그러면 머리가 단순해진다. 농사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한다. 사도 바오로가 갑자기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처럼, 갑자기 글과 그림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연 속에서 온전히 내가 서 있다는 느낌, 세간의 평가 같은 것과 상관없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연 속에서 노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있다. 내게 있어 농사는 그래서 공부이기도 하다.

나를 긍정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생명들을 긍정한다는 거다. 뭇생명을 긍정하는 활동이 바로 인권운동이다.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인권연대를 가슴에 각별히 담아두는 까닭이 여기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좋은 뜻으로 일하는 분들이 서로 친하지 않다는 거다. 인권센터를 짓는 사람들과 인권연대 사람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진보정당에서 일하는 분들의 갈등도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 불화 없이 관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운동을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무 큰 꿈을 꾸지 말고, 가까운 데서 하나씩 실천해보자. 보잘 것 없는 엽서 얘기 하느라고 이렇게 길게 왔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