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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차 수요대화모임(05.01.26) 정리 -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대표신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09:50
조회
352
소비문화 시대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

박기호/ 예수살이공동체 대표신부


이 시대의 화두는 ‘소비문화’

공동체 운동은 영성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신부가 공동체 운동까지 뛰어든 이유는 우리 시대가 가진 어떤 변화와 특성을 엿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성당에서 복음선포를 해야 하는 신부로 살아가면서 내가 전하는 목소리와 복음이 과연 힘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복음은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회개하게 만들고 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인데, 과연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회의가 컸다.

그런 회의가 들면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다. 자기의 직업을 바꾸게 하고, 삶의 좌표를 바꾸게도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현대인들의 삶을 규정하고 의식을 장악하는 실태는 ‘소비문화’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 나와 강론을 듣는 것보다 작은 가전제품 내지는 건강기구 하나를 선물 받는 것이 훨씬 큰 즐거움이고 행복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분명 거기에도 타당한 이유와 선(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제품이건 문화건 내가 찾아서 나의 행복으로 놓는 형태라면 개인이 자기 의식의 주인으로서 자기 삶을 꾸려나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필요해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게끔 무엇인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가져야만 하는 흐름이 우리들의 의식과 삶의 일반까지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문화가 역사를 만드는 시대

지금의 소비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는 과거문제를 많이 얘기하고 있다. 과거문제는 당대에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맡겨진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당시 그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군사독재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역사적 판단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당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파악하지 못했고,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과거에 우리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했고,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면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해방, 정치적 측면에서의 자유가 그 시대에 우리의 욕구였기 때문에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지고, 밤낮없이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발전의 에너지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시대의 힘은 ‘소비문화’ 내지는 ‘소비욕구’ 그리고 그것에 의한 상품생산과 기술개발이라고 본다. 과거에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가 역사를 발전시켰다면 오늘날에는 개인들의 작은 행복과 안락을 보장해주는 ‘소비욕구’가 산업과 시대를 이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과거에는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거나 후퇴되는 것이 역사의 후퇴라고 보았는데, 오늘날에는 소비가 줄었거나 위축되는 것이 역사가 후퇴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대인 것이다. 경기불황을 얘기하면서도

소비가 일어나야 해결된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런 사회적 현상이 우리 자신들의 의식을 규정하고 자녀들의 삶을 만들고 있다. 소비문화를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그런 환경이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소비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품이 인간을 만든다.

소비문화가 만드는 새로운 인간은 개인주의적이고 생물학적으로 퇴화된 인간이다. 그리고 이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상품인데, 상품은 편의성, 개별성, 기술성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상품이건 손가락 하나라도 덜 쓰게 하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일은 펴게 하고, 서서 해야 하는 일을 앉아서 하게 하는 편리함을 가진다. 이것이 상품이 가진 편의성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하나의 상품을 가지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던 것이 이제는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정에 하나 있으면 됐던 전화도 가족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다니고, TV도 이제는 각자의 방에 들여 놓고 있다. 모든 시스템이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술성은 그렇게 만든 상품들을 마르고 닳게 사용하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에 지금까지 몇 개의 컴퓨터 사양을 바꾸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하나의 상품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개발은 없다.

상품의 편의성은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퇴화하게 만든다. 손가락 하나라도 적게 움직이고, 이동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을 조금씩 퇴화시키는 것이다. 소설「태백산맥」에 보면 벌교의 장광산에서 읍내까지 24km정도의 거리인데, 거기를 하루에 두 번씩을 왔다 갔다 한다. 소설 속의 얘기가 아니라 옛날에는 의례히 그랬던 것이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얘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기억력도 퇴보하고 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수십 수백개씨 외웠던 전화번호도 이젠 몇 개를 제외하고는 외우지 못한다.

그리고 상품의 개별성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져옴과 동시에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환경은 인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매일처럼 쏟아지는 새로운 상품은 곧 쓰레기가 되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심각한 생태 환경문제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소비문화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문제는 소비문화를 통해 얻는 행복이 우리가 정말로 추구하고 가야 될 행복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사실 복음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다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포기할 수 있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으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고, 이미 강을 건넌 사람에게 강을 건너라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건너간 곳이 가야할 곳이 아닌 경우 자신도 불행하고 주변도 불행하고, 불행한 주변의 환경이 자기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도 자유도 있지만 제어하는 능력, 자기 통제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다. 좋은 것과 새 것에 대한 욕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물러서게 해야 하고, 그리고 물러섬으로써 누릴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혀진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소비사회에서 반문명적인 삶, 기술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편리함을 포기하고, 상품의 개별성에 대항하는 것이 오늘날 예수가 요구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예수살이공동체(www.jsari.com) 운동인데, 이것은 하나의 정신운동이기 때문에 좀 더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산위의 마을(충북 단양)’이라는 공동체 마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개별적으로 나아갈 때 공동체성을 구현하고, 좀 더 불편하게 살면서 우리의 몸을 쓰면서 사는 것이 또 하나의 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