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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1호)인권연대의 세상읽기-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최고의 코미디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최고의 코미디
-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대구 유니버시아드(U)대회가 끝났다. 대학생들의 아마추어 스포츠 잔치인 U대회를 두고 이토록 커다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유난히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민감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난 부산 아시안게임이 그랬듯 이번 경기를 통해 남북한이 함께 참여하고 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연출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이번 대회는 북한 선수단의 참여로 시작해서 그들의 귀환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미디어가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에 초점을 맞추었고 대중의 관심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녀응원단과 관음증과 민족화해
그 관심의 한 가운데에 북측 응원단이 있었다.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사실상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북측 응원단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카메라의 중심을 차지했고 열렬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미디어가 그들에게 붙여준 공식명칭은 북한 '미녀응원단'이다.
여기서 북측 응원단에 대한 남한사회의 시각이 어떤 속성을 가진 것인지 드러난다. 남한의 카메라와 대중의 시선은 일단 그들이 '예쁘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남한사회에서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적이고 다소곳하며 조신한,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판받을 표현을 쓰자면 '여성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뜻에서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남한 남성들의 시선에는 다분히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배어 있다. 잃어버린 여성적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가 분단된 조국의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오버랩되면서 그들의 열광은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쉽게 전이된다. 그렇게 보면 북측 응원단에 대한 남한사회와 미디어의 관심에 대해 '남북한의 마초들이 공모해 벌이는, 민족주의로 포장된 관음증'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분명 일리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마초적이고 결과적으로 여성비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남북화해와 긴장완화, 나아가 남북한 대중의 민족적 동질감과 일체감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그런 정도의 관음증은 눈감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북한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증오를 앞세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집단들이 있고, 최근 들어 이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현장에서 인공기를 불태우며 '북한 인권 개선'과 '김정일 타도'를 주창한 일군의 집단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 북측 응원단의 미모에 쏠린 대중의 관심은 그저 북괴의 미인계에 놀아나는 한심한 작태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아마도 북한 사회에 그렇게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그 응원단이 '세뇌되고' '훈련되고' '조종된' 여성들임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오른쪽 벼랑끝에 선 사람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측 응원단에 열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보여주는 어느 순간의 부자연스러움에 멈칫하며 어쩔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이질감이 오랜 분단의 역사가 배태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고 새롭게 껴안을 줄 아는 포용력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미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사진이 비에 젖은 것을 보고 그들이 보여준 행동에 대해 대다수의 시민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그것을 문화적 차이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을 보여준 바 있다. 그것을 두고 마치 몰랐던 사실이라도 발견한 듯 흥분한 것은 바로 인공기를 불태운 사람들과 그들을 편드는 일부 언론뿐이었다.
맨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왼 편으로 보인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렇지 않으면 빨갱이고 친북이며 좌파다. 그러니까 극우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그저 맹목적인 증오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극우단체들이 주장하는 '북한 인권'이란 기실 북한에 대한 증오를 감싸는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집단에게 일부 언론은 '인권단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낳은 최고의 코미디다.
(이 글은 [노동과 세계] 257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