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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호)잇단 노동자들의 죽음, 희망을 위해 싸워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없어야 하지만, 희망이 없어보이는 냉혹한 현실도 타개해야
열흘 동안 세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지부장은 목을 매어 숨졌고, 대구의 세원테크 이해남 지부장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조합 이용석 지부장은 분신했다. 분신한 두명의 노동자는 중태이고,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이들은 2,3년전부터 사용자측의 신종 무기로 등장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 문제의 해결, 노동탄압 정책의 중단, 부당노동행위의 근절,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제 민주노총 강당에서는 각계 사회단체 지도자들이 모여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지금 상황을 매우 비상한 상태로 규정하고, [손배. 가압류, 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어제 간담회는 최근의 상황을 반영하듯 시종 침통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더 이상 분신항거와 같은 비극적인 사태는 되풀이되어선 안되며, 벼랑끝으로 몰린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민중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제대로 된 싸움만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 :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인다.
오 : 실제로 상황이 심각하다. 열흘동안 3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들어서는 벌써 다섯 번째이다. 이는 농민 이경해열사의 자결이나, 가계 부채 등의 이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름없는 도시빈민들의 수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모두 61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독재정권의 공안폭압기구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총이 추산하는 노동열사가 지난 33년 동안 모두 61명인데, 올해만 5명이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수치이며, 지금 상황이 매우 비상한 상황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 우리가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노동자들의 분신 등에 큰 충격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이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 아닌가?
오 : 동의한다. 신호는 줄곧 있었다. 정치인들이 1개 기업으로부터 100억원이니 수십억원이니 하는 거액을 받아 챙기는 그 순간에도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출구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진 선택을 해야 했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손배, 가압류 문제만 해도 그렇다. 가압류라는 것이 참 묘한 제도이다. 이름 그래도 假押留인데, 파업이나 기타 파업에 준하는 행동, 또는 노조의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서 사용자 측에서는 이런 저런 손해가 발생했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이런 경우 법원은 정식 재판을 하기 전에 재산상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가압류 신청을 받아주고 있다. 가압류 신청에 대해 법원은 신청한 액수의 8,90%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진짜 손해가 있는지의 여부는 본안소송에서 다투게 될 것이기에 가압류는 받아주고 있는데, 이 제도가 신종 노동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손배. 가압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법률적인 개념이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도 많다. 회사도 노조에 의해 손해를 입게 되면 당연히 그 손해를 배상받을 권리가 민법에 보장되어 있는데, 뭐가 문제가 되고 있는가?
오 : 손배, 가압류가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막대한 액수의 가압류 조치를 당하게 되는데, 그 범위도 광범위해서,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급여, 급여계좌(주거래 통장), 부동산, 회사 입사시 보증인의 부동산 등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진행되기에, 당장의 생활에 곤란을 겪게 된다. 김주익 위원장의 경우에도 급여에 대한 가압류가 결정되어, 실수령액은 1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로지 봉급에 의탁해 사는 봉급생활자에게 정작 회사에 손해를 끼쳤는가의 여부조차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손해가 있다는 주장만을 받아들여 월급을 묶어두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무기가 된다. 법의 맹점을 이용한 비인간적인 노동탄압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의 민영화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전개했던 발전노조의 경우, 발전노조 산하 동서발전은 파업 당시 711명의 조합원에 대한 가압류 신청이 받아들여졌지만, 정작 1년이 지난 최근 법원은 동서발전이 노조간부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파업을 인한 회사의 대체 인력비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노조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액수보다 적기 때문에 회사의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고, 따라서 손해배상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난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노동자들이 1년이 넘도록 급여의 1/2묶어두게 함으로써, 생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오로지 노동자들이 감당했어야 했다.
이 : 한진 중공업은 상당히 많은 단기순이익을 냈음에도 노동자들에 대한 급여 인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노조가 저항을 하자, 대화도 단절하고, 앞서 설명을 들은 손배, 가압류, 형사적인 고소 등의 탄압으로 대처해서, 지탄을 받고 있는데, 다른 사안도 그렇고, 구체적인 사안들은 다 이해가 되고, 참으로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데, 최근의 잇단 분신사태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볼 무엇은 없는가?
오 : 딱한 상황이다. 당연히 더 이상 죽는 사람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절박한 상황에 놓여져 있을 수록 더 싸워야 한다. 물론 이런 호소가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서 노동운동, 사회운동진영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어려운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철저하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더 이상 노무현정권과 정치권의 정치놀음에 놀아나지 않고,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죽지 말자. 그리고, 정권과 자본도 더 이상 이제는 우리 가난한 서민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는 것이 모두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이 : 이런 상황에서 어제는 경찰간부가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망언을 했다는데?
오 : 영등포 경찰서 김성훈 서장(경찰대 1기)은 최근의 사태에 대해 기자들에게 지금은 자살이 잇따를만한 때가 아닌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다른 게 있다며, 노동계 지도부가 최근의 사망사태에 대해 커다란 밑그림를 그려놓고 기획하고 있다는 망언을 했다. 민주노총 단병호위원장의 머릿속을 들여다봐야 한다고도 했다. 심지어 자결한 노동자들을 성격이상자로 규정하기도 하였는데, 분신하는 사람들은 대개 성격이 독특하고, 대다수 분신은 우발적이라며, 학교 다닐 때도 얻어맞고 괴롭힘 당하면서 아무 말 못하다 갑자기 욱하는 친구가 있지 않았냐고 하기도 하였다.
이 : 정신없는 사람이 아닌가? 이게 한 개인의 시각인가, 아니면 경찰의 시각을 대변한 것인가?
오 : 노동계에서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경찰청은 당연히 개인의 망언이라고 반응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같은 망언을 한 당사자는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영등포경찰서장은 이 발언이 물의를 빚자, 기자들에게 자신은 노동자들의 분신 이유를 알만한 위치에 있지 않고, 발언이 와전되었다고 발뺌을 하였는데, 영등포 경찰서장의 발언을 직접 들은 기자들은 서장이 분명히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확인해주었다.
이 : 이 말을 전해 들은 노동계의 분노가 적지 않을텐데?
오 : 민주노총의 대변인 격이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분신이 기획된 것이라면, 그 발언에 대한 증거를 대고, 아니면 책임을 지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자세”라며, 이번 발언이 일선 경찰서장이 노동문제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천박한 의식이 드러난 것이고, 따라서 서장의 사퇴 여부와 상관없이 법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 아무튼 최근의 사망사태가 심상치 않은데, 무슨 대책이 있는가?
오 : 누구나 하는 이야기이지만, 대통령이 왜 있어야 하는지, 국회의원이 관료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논쟁과 내년 총선 준비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대책은 대통령과 국회, 법원이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 법원이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우리 모두에게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싸우는 방법 밖에는 없다. 앞으로 11월 9일 노동자 대회를 비롯하여 많은 일정이 진행될 것이다. 내일부터 사회단체들의 농성도 시작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참고 - 경향신문 기고 절망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부장의 자결, 이해남 세원테크 지회장의 분신에 이어 10월26일 또 한명의 노동자가 분실자살을 기도해 생명이 위독한 상태이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본부장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주최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끝날 무렵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불을 붙인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가? 왜 그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침해받을 수 없는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모진 결단을 내려야만 했는가? 생명이 소중한 만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이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만 한다. 우선 이들이 속한 사업장의 노사관계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사용자들이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교섭기간이 길게는 6개월을 넘기기 일쑤이고, 1년에 이르고서도 파업사태로 치닫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호전적이고 적대적인 수단들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경영진이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을 회유·협박하는 부당노동행위는 물론, 조합비와 조합 간부들의 재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를 통해 이들에게 감내할 수 없는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 사인간의 재산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민법상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인권, 즉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데 악용되는 역설적 상황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마땅히 정규직을 써야 할 상시적 업무에조차 비정규직을 채용함으로써 노사갈등의 불씨를 만들고 있다. 사실 한진중공업 사태의 발단은 2002년 사측이 ‘인력체질개선’이라는 명분으로 650여명을 명예퇴직시킨 데서 비롯되었다. 말이 명예퇴직이지, 노동자에게는 강압적인 해고일 따름이다.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규직이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협력업체를 통해 재입사하여, 명예퇴직 전에 하던 업무에서 일한다는 사실이다. 한해 2백39억원의 순이익을 내고도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린 것은 구조조정이 이윤 추구를 위한 한낱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대다수 사업장으로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갈등 또한 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그리고 차별이 버젓이 용인되는 극심한 분열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그릇된 노동정책이 크게 작용한다. 88년 이후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된 노동자가 3,600명에 이르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120여명의 노조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용자 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노조탄압이 횡행하고 있다.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던 ‘제3자개입 금지조항’은 97년 이후 무력화되었지만, 이후 노동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혹한 업무방해죄와 신종 탄압수법인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였다. 업무방해죄 적용 남용은 몇년째 ILO가 시정을 권고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살하고 있다. 또 노무현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이 사회가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7백80만 비정규노동자에게 안긴 것은 절망뿐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온데간데 없고, 되레 파견근로 허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소리만 들릴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 정부는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당장 시장만능의 노동배제적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생명을 경외하고, 노동기본권이 존중받는, 나아가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 책임은 그 누구보다 위정자들에게 있음을 비통한 마음으로 촉구한다.<조진원/한국비정규노동센터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