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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3호)올해의 노벨 평화상
올해의 노벨 평화상
이란의 여성변호사며 인권운동가인 에바디
서구에서 이슬람세계는 그저 좀 다른 세계를 넘어서 야만스런 반인권의 세계로 비춰져 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서구적 잣대로만 인권문제를 보는, 즉 보편성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지역적 종교적 특수성이 무시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슬람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인권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굳이 명예살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슬람 사회에 분명 많은 인권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 진영은 이슬람 사회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이나 실천을 벌이기 보다는 그저 ‘다르다’ 그저 ‘야만이다’며 단죄하기에만 급급했다.
수많은 이스람여성들이 단지 간음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만 받고도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에 의해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저널리즘적 관심을 있었지만, 이에 대한 규탄은 있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원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노벨평화상이 이슬람의 여성 인권운동가에게 주어진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는 이란의 여성 변호사이고, 인권운동가이다.
이란 최초의 여성판사였고, 단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판사직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변호사와 법과 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난민, 여성, 어린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운동가로 변신하였다.
노벨평화상 발표 이후 에바디는 자신도 이슬람 신자라고 강조하면서 이슬람인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으며, 이슬람과 여성인권,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란정부도 정부관계자들을 통해 에바디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두선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에바디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자신의 수상소감처럼 이슬람과 여성인권,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서구진영이, 또한 서구진영의 영향을 받는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함을 일러주고 있다.
동아시아도, 유교적 전통 기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민주주의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슬람이 어떻고, 동아시아가 어떻고, 유교적 전통이 어떻고 하는 것은 진지한 관심을 표현이기도 보다는 우월의식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지금 이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인권문제가 전혀 없다. 우리는 그저 행복할 뿐이라는 거짓말도, 온통 야만적인 반인권상태에 놓여있다는 단죄도 아닌, 실질적인 지원과 관심이다. 이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이슬람 신자인걸요. 그러니까 이슬람인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어요.”
그는 이슬람과 여성인권,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수상자 소감에서 빼놓지 않았다. 이란의 여성 법조인 시린 에바디는 이슬람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아직 이슬람권에서 ‘명문대를 나온 전문직 여성’은 생소하다.
에바디씨는 명문 테헤란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4년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듬해부터 79년까지는 테헤란시(市) 법원장도 지냈다. 그러나 79년 이란혁명으로 보수적인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 여성의 법관 임명을 금지함에 따라 강제 해직됐다. 이후 난민, 여성, 어린이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가로 나섰다.
▽강철로 만든 여성=그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건의 변호를 나서서 맡았다. 98년 11월 다리우시 포루하르 부부 등 반체제 지식인과 작가 등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자 가족의 변호를 맡아 이란 비밀 정보기구의 개혁을 이끌어냈다.
99년 당국이 개혁 성향의 신문을 강제 폐간한 데 대한 항의로 테헤란대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이 대학 기숙사를 공격해 학생 1명이 숨지자 에바디씨는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고 노력하다가 투옥됐다.
2000년 반정부 인사들의 비디오테이프를 배포하다 ‘여론을 교란한다’는 혐의로 체포됐으며 2001년에는 이란 문제에 관한 베를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투옥됐다.
그는 1999년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인권운동가들은 평생을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데 나는 이런 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란 여성의 비공식 대변인=여성 법조인이며 인권변호사로서 그는 이슬람법과 여성 및 어린이의 인권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혼과 상속 관련 가족법 개정을 이끌었고 사고로 다쳤을 때 지급되는 보상금이 여성의 경우 남성의 절반에 지나지 않던 규정의 개혁에도 앞장섰다.
올해 6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이슬람교가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를 문제 삼는 것”이라며 “‘부정한’ 여성에게 집행되는 투석(投石) 형벌은 이슬람 경전 코란 어디에도 근거가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이란 어린이 인권 후원협회 창립자이기도 한 에바디씨는 94년 유엔아동기금(UNICEF) 후원으로 어린이 인권에 관한 저서를 내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노르웨이 라프토(Rafto) 인권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