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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소리 6호] 사법개혁위원회 공청회, 국민의 사법참여 '배심제-참심제 공방'...
•배심제와 참심제
•고문의 근절을 위해서는 사법민주화가 절실하다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
•시민참여 없는 사법개혁은 없다 홍성수/ 방송대 법철학 강사
•미국의 배심제도
•독일의 참심제도
•'수요대화모임' - 홍세화 선생에게 듣는다
사법개혁위원회 공청회, 국민의 사법참여 '배심제-참심제 공방'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위원장 조준희)가 한국공법학회(회장 박수혁)와 공동으로 전문가 및 일반 시민 의견 파악을 위해 22일 법원 종합청사 별관에서 개최한 공청회에서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인사들은 국민의 사법참여 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현행 헌법에서 참심제와 배심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각자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황성기 한림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 조항이 '직업법관만에 의한 배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따라서 직업법관이 일부 관여하는 한 참심제나 배심제를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장석조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은 지정토론에 나와 "현행 헌법은 직업 법관을 전제로 한 재판을 규정하고 있다"며 "실정 헌법의 해석상 배심제 및 참심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권영설 중앙대 법대 교수도 주제 발표를 통해 “참심제는 개헌 이전에는 위헌성을 피할 수 없고, 배심제도 ‘사실인정’과 ‘법률판단’을 구분하기 어려워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김승대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은 “‘법관에 의한 재판’이 ‘법관만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법관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배심·참심제가 꼭 위헌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측에서 나온 나온 이완규 대검 검찰연구관은 배심제의 경우 "검사의 수사권을 유지하면서 이를 도입하면 운영이 파행적으로 이뤄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제시했으며, 참심제에 대해서는 "대륙법계 형사사법체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체계에 보다 적합하다"고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법부측에서 나온 최완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현행 헌법이 재판 과정에 법관이 아닌 사람의 참여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중요한 사건은 배심제를, 민사사건과 가벼운 형사사건은 참심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제도와 관련하여서 이완규 대검연구관은 “배심제를 도입하면 검사의 수사권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참심제가 적합하다”고 주장했고 참여연대 차병직 변호사는 “참심제는 결국 법관이 모든 것을 주도하게 되고 시민들은 조정위원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배심제를 통해서만 궁극적인 시민재판을 실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한국여성단체연합 정현백 대표는 성적 소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참여재판을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는 헌법적합성 여부와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놓고 긴 토론을 가졌으나, 특별한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서로가 가진 생각의 차이를 나누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사법개혁위원회가 '국민의 사법참여'에 대한 직접적 방안을 두고 공청회를 마련함으로써 그 동안 논의되지 못하던 '배심제와 참심제 도입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배심제와 참심제]
01_ 배심제
- 사법에 대한 시민참가의 한 형태이다. 비전문인이 재판관과는 다른 직분을 맡아 재판에 관여하는 제도로 보통 사실문제를 인정하고 심판을 하는 것을 소배심(小陪審, 심리배심·공판배심)이라 하고, 기소를 행하는 것을 대배심(大陪審, 기소배심)이라 한다.
배심의 기원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영국에서 12, 13세기경부터 발달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검시관(檢屍官)의 사인(死因) 조사에 입회하여 자연사 ·고살(故殺) ·모살(謀殺) 등의 평결을 하는 검시배심(檢屍陪審)의 제도도 있으나, 보통 소배심과 대배심을 배심제라 하고, 협의로는 소배심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배심, 즉 기소배심은 중죄(重罪)의 기소에 있어서 12∼23인의 배심원 중 12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정식기소를 할 수 있는 제도이고, 소배심은 배심원 명부에서 선임된 12인의 배심원이 선서한 후에 민사 또는 형사 사건에 있어서 공판에 제출된 증거에 의거하여 사실문제(쟁점 또는 유죄 ·무죄)에 관하여 심리한 후, 원칙적으로 전원일치로 평결하는 제도이나 세부적으로는 예외가 있다. 법원은 이러한 배심원의 평결에 따라 법률을 적용하여 판결을 선고한다.
이러한 배심제도는 프랑스 혁명 후 프랑스에서 일시 채용했다가 폐지되었고, 독일에도 계수되었으나 그후 폐지되고 참심제(參審制)를 취하고 있다. 참심제는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合議體)를 구성하여 평결하는 점에서 배심원이 법관과 독립하여 평결을 하는 배심제와는 구별되나, 배심제의 변형형태이다. 기소배심제는 1933년에 영국에서도 폐지되었으나, 미국에서는 헌법상 중죄에 관한 기소배심제를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퇴조경향에 있다고도 하나, 미국은 배심재판이 기본이다.
일본도 1923년에 심리배심제를 도입하였다가 1943년에 폐지하였다. 한국은 배심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다만, 군사법원(軍事法院)에서 군법무관이 아닌 일반장교가 심판관이 되어 군판사와 함께 평결하는 점에서 일종의 참심제를 채택하고 있다(군사법원법 22 ·24 ·69조).
미국에서도 연방헌법은 중대범죄에 대해 대배심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나, 주에 따라서는 폐지나 제한의 움직임이 있다. 소배심은 평결의 전원 일치제나, 증거법칙·기소절차 등에 대해 판단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수단이 강구되고 있어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옹호론도 강하나 비판도 많다.
02_ 참심제
영미에서 발달한 ‘배심제’와 마찬가지로 민중의 사법 관여의 한 형식인데, 배심은 사건의 사실문제를 법률에 대힌 비전문인인 배심원이 직업재판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인정하고 재판관은 이를 채용하여 결론을 내리는 데 대하여, 참심제는 사실문제나 법률문제도 참심원과 법관이 합의하여 그 다수결로 재판한다.
참심은 배심에 비하여 인원이 적어도 되는 점에서 경제적이기는 하나, 그만큼 법관의 의견에 끌려가기 쉬워 민중 참여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참심은 주로 독일에서 형사사건에 대한 배심제의 보충이나 대용으로 발달했고, 현재 독일에서는 형사사건에 대해 참심법원(Schffengericht)과 배심법원(Schwurgericht)이라는 명칭의 참심제 법원이 있다. 비록 시민참가라는 형식은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참심원이 직업재판관의 의견만 따른다는 비판도 있다. 그밖에 특수사건을 다루는 법원에서 민간 전문가를 재판관으로 참여시켜 유효성을 발휘하는 예도 있다. 아직까지 한국은 이를 채용하지 않고 있다.
03_고문의 근절을 위해서는 사법민주화가 절실하다
_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
다시 고문치사사건이 터졌다. 15년 전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같은 것이 이번에는 그래도 인권을 지킨다고 자부하는 검찰에서 터졌다. 경찰도 아닌 검찰에서 터졌다. 일부에서는 이를 구타사망이라고 하여 고문이란 말의 사용을 피하나, 이는 밤샘수사 자체가 고문이란 것을 모르는 탓이다. 일제시대이래 수사관행상 가장 일반적인 밤샘수사는 고문으로 보아야 하는 범죄이다. 이는 헌법상 적법절차나 신체의 자유, 피고인의 방어권보장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일찍부터 밤샘수사가 고문으로 금지되어 왔다. 즉 밤샘수사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판례에 의해 고문으로 인정된다. 유럽에서는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전 4시까지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며 연속해서 5-6시간 계속 조사하는 것도 금지된다.
구타사망이 아니라 고문치사(拷問致死)이다.
고문 금지와 함께 중요한 문제는 묵비권의 실질화이다. 피의자와 피고인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든 불이익이 되든 관계없이 일체 침묵할 자유를 갖는다. 이러한 묵비권은 압도적으로 강대한 수사검찰당국의 수사력·소추력에 대항하여 방어력을 높이고 형사절차의 규문화를 방지하는데 불가결한 것임과 동시에 국가권력이라도 인격을 무시하고 진술을 강제할 수 없다고 하는 인격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묵비권이 충분히 보장받는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형사소송법상 구체적인 보장이 불충분하고 수사검찰당국의 규문주의적 체질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밤샘수사와 함께 고문을 낳는 또 다른 요인은 변호사의 입회권이 인정되지 않는 밀실수사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찰의 보호실 및 유치장이라고 하는 대용감옥 제도이다. 고문이 자행되고 묵비권이 침해되는 요인 중의 하나는 보호실이나 유치장 등의 대용감옥에서 수사가 자행된다는 점이다.
신체구속의 원칙인 영장주의의 취지는 신체구속을 수사검찰당국에 위임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묵비권의 취지는 강제취조를 금지하는 점에 있다. 대용감옥제도는 이에 반하여 피의자, 피고인의 신체를 수사권을 갖는 경찰당국에 맡겨 그 자의적 수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체관리권과 수사권이 동일 기관에 속하는 체계 하에서는 수사 우선의 신체관리가 행해지므로 경찰유치장은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고 장시간의 연속적 수사, 밤샘수사, 이익유도적 수사, 폭력적 수사, 사술적 수사 등이 경찰 유치장의 밀실성에 의해 일상화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위험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대용감옥은 당연히 위헌이다.
1994년 3월, 대법원은 영장 없이 피의자를 보호실에 유치함은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영장을 가지고도 보호실은 물론 유치장에 구속하는 것도 국제기준에 어긋난다. 대용감옥은 체포·구속된 피의자, 피고인을 경찰서 부속의 유치장에 구금하여 경찰의 관리하에 두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행형법상 그들은 수사권을 갖지 않는 구치소에 구금되어야 하나, 유치장 구치의 예외가 인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예외의 인정은 1908년에 제정된 일본 감옥법 제1조 3항에 유래한다. 당시에는 구치소 증설비용의조달이 어려웠다는 것인데, 지금도 그것이 이유라면 참으로 문제이다. 현행헌법 하에서 유치장은 영장주의와 묵비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명백하게 위헌이다.
유치장에 가두는 것은 반인권적이다
또한 불법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변호제도의 불충분에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피의자가 기소되기 전 수사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이 활용되어야 한다. 수사단계의 피의자는 취조를 비롯한 모든 수사활동의 강력한 파상공격을 받아 위험한 입장에 처해진다. 그 단계에서 수집된 증거가 공판단계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수사단계야말로 피의자에게는 ‘가장 위험한 시기’이고 법전문가인 변호사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헌법상 명문규정이 없고 형사소송법상으로도 피의자에게는 국선변호인을 의뢰하여 그 원조를 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력 등의 사정으로 변호인을 의뢰할 수 없는 피고인은 아무런 대책 없이 수사검찰당국의 강대한 공격에 직면하게 되며 묵비권을 비롯한 방어권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피의자 국선변호인제도의 입법화가 강력하게 요망된다.
자백중심형 재판이 인권침해를 묵인하다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관행과 자백을 재판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하는 법원의 관행에 있다. 일반적으로 자백은 ‘증거의 여왕’으로 불려지듯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증거이나,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백에 의존하는 정도가 몹시 높다. 이는 형사재판이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자백조서에 근거하여 사실인정이 행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곧 자백조서작성을 통하여 형성된 수사당국의 유죄심증을 공판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여 사후에 확인하는 형태로 사실인정작업이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백중심형 재판’은 자백추구의 규문적 수사에 의존하는 결과로서 규문적 수사에 따르는 인권침해를 묵인하는 경향과 수사당국의 잘못된 유죄심증까지 무비판적으로 인수하는 경향을 낳는다.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을 낳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당국에 대한 법원의 무조건적인 신뢰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가 독점하는 재판제도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재판을 비롯한 사법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본다. 민주사회에서 법원의 역할은 막강한 수사력을 갖는 검·경찰을 체크하여 피의자와 피고인을 보호하는 것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법원이 검·경찰에 편향되어 있다. 이는 재판을 관료가 독점적으로 담당하고 일반인이 전혀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료 독점의 재판제도는 그 자체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재판에서 제시되는 증거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된다. 영미에서 12명의 일반시민으로 구성되는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 행해지는 이유는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이다. 배심제의 채택은 재판에서의 자백 조서에 대한 의존을 감소시키고,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바꾸지 않으면 고문치사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사법민주화는 배심제 또는 참심제라고 하는 시민의 재판 참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엇보다도 법제도와 관행이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밤샘수사나 밀실수사를 근절하고 그 온상인 대용감옥도 없애야하며, 변호사가 수사 단계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모든 피의자가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변호사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특히 대부분의 형사피의자가 변호사를 의뢰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국선변호인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나아가 시민이 전혀 참여하지 못하는 관료 재판제도를 어떤 식으로든 시정할 수 있는 시민참여의 그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교훈을 잊는 한 고문치사사건은 15년 뒤에도 다시 터질 수 있다. 아니 내일 당장 터질 수 있다.
출처: 월간[인권연대] 제39호(2002년 12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04_시민참여 없는 사법개혁은 없다
_홍성수/ 방송대 법철학 강사
'인권보장'을 국정의 지표로 삼고 '개혁'을 존재기반으로 삼은 정부가 탄생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법개혁에 관련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물론 그동안에도 부분적인 사법개혁은 있어왔다. 올해 초에는 집중심리제, 법관 증원 등을 골자로 하는 법원의 사법개혁안이 발표되었고, 10월 15일에는 판사 33명이 법관공동회의를 결성하고 법관인사제도개혁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사면초가에 놓인 검찰은 검찰인사위원회 설치, 특별수사검찰청 설치, 상명하복규정 완화 등의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법원과 검찰의 개혁노력을 무조건 냉소하고 야유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우리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사법개혁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법개혁을 추진한 사법당국의 태도는 ― 좀 거칠게 정리하면 ― "우리가 알아서 잘 해보겠다"는 식이었다. 특별수사검찰청의 설치, 집중심리제, 법관 증원 …….
모두 사법당국의 뼈를 깎는 자성을 보여주는 좋은 대안들이지만, 모두 자구적인 노력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진정한 사법개혁의 실마리는 국민을 '위한' 사법에서 국민에 '의한' 사법으로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제 국민의 힘을 직접 사법에 개입시켜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 '국민을 위한 사법'도 가능할 것이고, 사법에서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이론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현대 민주주의이론의 발전을 잠시 소개해야겠다. 피치자인 국민이 선출한 뛰어난 (엘리트) 통치자가 중앙권력을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통치한다는 식의 '대의민주주의'는, 이제 의사결정권한을 각종 하부단위로 이전시키고 그곳에서 시민들의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참여민주주의'(또는 심의민주주의)로 전환되어가고 있다.
예산배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브라질의 '참여적 시민예산'이나 학교행정의 결정권한을 교사, 학부형, 교장, 학생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로 이전시킨 '시카고시 주민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입법·행정과정에서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국민의 참여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가고 있으며, 국가의 주요요직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됨에 따라 재단과 교육관료가 독점하고 있던 학교행정은 이제 교육관련자(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몫이 되었으며, 동사무소는 아예 주민'자치'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행정영역에서는 '행정절차법'(1996)의 성과가 두드러진데, 이에 따르면 행정결정은 반드시 외부(즉, 국민)와의 교섭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바로 국민이 직접 통치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대안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엘리트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에서 국민에 '의한' 정치로의 전환이고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들끼리 알아서 해보겠다고?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 이러한 역사적인 대세에도 불구하고 ― 사법만큼은 여전히 국민의 참여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규정이 '입법권'과 '행정권'뿐만 아니라 '사법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러한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우리나라에서 법관이 되는 길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며, 법관 인사권은 '대법원장' 1인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 국민은 전혀 참여하지 못하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도 못한다. 법관선발과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법의 운용과정에서 역시 국민이 사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봉쇄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참여가 없는 사법은 필연적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을 어렵게 한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의 사법현실 중 대부분은 바로 국민이 사법과정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유제시도 없는 판결, 일반인의 상식과 유리된 판결, 국민들로부터 유리된 권위적인 사법실무, 권력지향적인 검찰권 행사 등, 우리가 안고 있는 산적한 사법개혁의 과제들의 근본원인을 '국민의 사법배제'에서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민에 의한 사법'이 사법개혁의 정방향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사법참여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사법개혁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즉, 기존의 사법개혁논의처럼 '법원과 검찰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사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직접 판결에 참여하는데 이상한 일본어투가 판결문에 등장할 리 만무하고, 일반인의 상식과 어긋난 판결이 내려질 리 없다. 국민들이 직접 사법을 운용하는데 국민들로부터 유리된 사법실무가 가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법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인권보장'도 마찬가지이다. 수사편의를 위한 인권유린은 관료적 논리에 의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만약 시민들의 참여가 제도화되고, 그들의 시각이 사법과정 곳곳에서 투영된다면, 사법절차에서의 인권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검찰권의 권력지향성도 국민의 힘이 개입됨으로써 비로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의 수장을 시민추천위원회에서 선발하고, 검찰권의 남용을 시민들이 항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놓는다면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들도 하나하나 개혁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 의한 사법'은 인류보편의 상식이다
이와 같은 사법개혁의 방향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 실현가능성에 회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국민에 의한 사법'은 이미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오랜 기간 시행되어 오던 것들이다. 국민이 사법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개혁안'일지 몰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오래된 상식'인 것들이다. 문명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 중 배심제, 참심제, 치안판사제 등 '국민에 의한 사법참여'를 제도화하지 않은 나라는 찾아 볼 수 없다. 흔히 시민이 참여하는 배심재판은 미국의 고유한 제도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유럽에서도 배심제나 참심제를 채택하고 있고, 이는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 당장 국민이 직접 사법에 참여하는 제도를 시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법개혁의 방향을 '국민의 사법참여'을 높이는 쪽으로 설정하고 이를 실질화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다. 그리고 당장 실현가능한 것과 충분한 논의 뒤에 가능한 것을 선별하여 추진해 나가는 식으로 개혁은 진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대법관 임용이나 헌법재판관 임명 시 '실질적인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할 과제로 분류할 수 있으며, 법관선발에 국민이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나, 비소송적 분쟁해결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 등은 지금 단기과제로 설정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 국민심사제도나 기소절차에의 참여, 판결전 조사제도 같은 것은 중기과제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배심제, 참심제, 양형위원회제도 등 국민이 사법에 '직접 참여'하는 제도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사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문제가 많다는 것에 동감한다면, 문명국 중 거의 유일하게 국민의 사법참여가 봉쇄된 우리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사법당국이 '알아서 해주는' 사법개혁으로 만족할 수는 없으며, 국민이 직접 사법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지부진한 사법개혁을 하루 빨리 '단행'하는 것도 절실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법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국민을 '위한' 사법에서 국민에 '의한' 사법으로의 전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출처: 월간[인권연대] 제28호(2001년 12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05_미국의 배심제도
미국의 재판은 모두 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형사의 경우는 10%정도가 배심재판에 의한다. 따라서 90%는 재판관이 단독으로 처리하는 우리식의 재판관재판이다.
(1) 형사배심
형사배심은 수정헌법 제6조에 의해 보장하고 있다. 형사재판은 기소로 시작된다. 기소장이 피고인에게 송달되면서 자신의 비용으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는 자는 국선변호인의 요구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증거개시의 절차와 재판전의 타협 이후 어레인먼트(arraignment)절차가 취해진다. 이는 재판관이 범인을 불러 범죄를 인정할 것인가를 물어 피고가 무죄라고 답변하면 정식의 재판절차가 시작된다. 그러나 강간 등 중죄사건인 경우 피고가 권리포기를 하지 않는 한 배심에 의한 재판이 행해진다. 유죄평결에 따라 어떤 형을 부과할 것인가는 재판관의 권한이다.
(2) 민사배심
미국의 민사배심은 수정헌법 제7조에 의해 보장하고 있다. 민사소송은 원고가 소를 법원에 제기하고 소장이 피고에게 송달됨에 의해 개시된다. 소장을 송달 받은 피고는 그에 대한 답변을 법원에 제출한다. 만약에 피고가 항변을 하거나 반소 또는 재판관할의 오류를 지적하면 원고가 서면으로 반론을 하고 피고가 답변하는 절차가 몇번이나 반복되고 이 과정에 관련된 소송이 병합되거나 제3자의 소송참가가 결정된다. 그리하여 쟁점이 명료하게 되면 당사자 쌍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개시절차가 취해지고 재판의 진행방식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진다. 법정에서 다툴 것으로 결정되면 배심을 붙일 것인가 여부를 검토하여 당사자가 그것을 희망하면 배심에 의한 재판이 개시된다.
절차가 끝나면 재판관은 배심을 위하여 사건을 요약하고 적용법률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배심원이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한다. 배심원은 배심원실로 들어가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결론에 도달한다. 민사의 경우에는 우월적 증거의 원칙에 의하므로 그 결정은 과반수 다수결에 의하여 내려진다. 배심원은 다시 법정에 들어가 그 대표가 평결을 재판관에게 전달한다. 재판관은 원칙적으로 그 평결에 따라 판결을 내리게 되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독자의 판결을 내릴 수 있다.
06_독일의 참심제도
독일은 형사사법(刑事司法)에 있어서 직권주의(職權主義)에 의하여 운영되는 이른바 대륙법체계의 대표적 국가로 영미법체계에 상응하는 배심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은 수차에 걸친 형소법개정작업을 통해 영미법체계의 당사자주의에 입각 한 소송제도의 장점을 수용함으로써 직권주의에 의한 단점을 보완해 오고 있다.
(1) 형사재판의 참심원
① 구법원 : 1명의 직업재판관과 2명의 참심원(사건이 대규모이면 1명이 첨가)으로 구성된다.
② 지방법원에서는 대형사부일 경우에 3명의 직업재판관과 2명의 참심원으로 구성하고 소형사부일 경우에 1명의 직업재판관과 2명의 참심원으로 구성된다.
(2) 민사재판의 참심원
① 일반법원의 민사사건에서는 원칙적으로 참심원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방법원 상사부의 경우 1명의 직업재판관과 2명의 참심원이 재판하나, 농사부의 경우 1심의 구법원에서 상고심까지 참심원이 참여한다.
② 노동법원과 사회법원의 참심원은 모든 심급에 참심원이 참여한다. 즉 노동법원에서는 제1, 2심에서 노사 각 1명씩의 참심원이 직업재판관과 함께 재판에 참여한다. 최상급심인 연방노동법원 소법정은 노사 1명과 3명의 직업재판관으로 구성한다. 한편 대법정은 노사 각3명과 10명의 직업재판관이 참여한다. 사회법원은 모든 심급에 사건별로 전문부가 설치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관련 계층으로부터 각각1명씩 계2명의 참심원이 있다.
③ 행정재판에서는 제1심에서 2명의 참심원이 3명의 직업재판관과 참여하나, 제2심에 대해서는 참심원의 참여가 각 주에 위임되어 있다.
④ 재정법원에서는 제1심인 고등법원에서 3명의 직업재판관과 2명의 참심원이 참가하고 제2심인 연방재정법원에서는 직업재판관만이 재판을 담당한다.
(3) 참심원의 자격과 선임방법
형사재판의 경우 관할지역마다 시·구·동의 의회가 정당, 기업, 노동조합, 사회활동단체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보자 중에서 3분의 2의 다수결로 필요한 참심원의 2배의 명부를 작성하고 의회가 선출한 위원회가 성별, 연령, 직업, 정당 등 사회구성의 비율을 고려하여 선출한다.
민사재판의 상사부 참심원은 30세 이상의 상인,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의 간부 등 상업등기부에 등기되어 있거나 등기된 적이 있는 사람 중에서 상공회의소의 추천에 의하여 임명된다.
노동법원의 경우 노사의 단체가 제출한 명부에 근거하여 노동부 장관이 임명하나, 소수자 집단을 정당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 2, 3심 법원의 참심원이 되기 위해서는 제1심 법원에서 최저 4년의 실무경험이 필요하다.
사회법원의 경우 후보자 명부는 노사 단체 외에 의사회, 전쟁희생자단체 등에 의해서도 작성된다.
행정법원과 재정법원도 법원 단위로 의회 3분의 2의 다수결로 작성한 후보자 중에서 선고위원회가 3분의 2의 다수결로 선임한다.
참심원은 4년마다 선임하며 연임은 8년까지 제한하였다. 참심원이 되는 자격은 25세 이상 70세 미만의 독일국민이면 충분하고 그 외는 일정한 결격사유와 부적임 사유가 법원구성법에 규정하고 있다. 참심원이 되는 것은 독일국민의 의무로서 법상의 거부 사유가 없는 한 그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 보수는 지급되지 않고 직장에서 결근에 따른 보상과 여비, 직장과의 연락에 필요한 비용이 보상으로 지급된다.
‘수요대화모임’ - 홍세화 선생에게 듣는다
매월 네 번째 수요일에 진행되는 수요대화모임의 4월 손님으로는 한겨레 기획위원이신 홍세화 선생을 모십니 다.
‘똘레랑스’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해온 홍세화 선생은, 이번 수요대화모임에서 [소수자의 인권과 똘레랑스]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해주실 계획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영원히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기를 고집하는 홍세화 선생과 함께 소수자의 인권을 얘기하고, 나아가 똘레랑스와 인권의 문제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04년 4월 28일(수) 오후 7시 30분
장소 : 서울 보문동 노동사목회관(지하철 6호선 보문역 7번 출구 2분 거리, 장애인 접근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