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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너희도 내 애인을 사랑하라” 강요 말아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9 10:20
조회
640
“너희도 내 애인을 사랑하라” 강요 말아야
- 윤영해 동국대 교수 ‘이찬수 강좌’ 4강 강연…종교다원주의 배격하면 기독교 패배할 것

이연옥/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불교 신자들은 기독교를 ‘애증’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윤영해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가 ‘불자는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한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윤 교수는 지난 25일 ‘강남대 이찬수 교수 대책위’ 주최로 열리고 있는 ‘종교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네 번째 강연자로 나서 불교 신자들은 기독교 신자들을 ‘선망의 대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도 본다고 밝혔다.

기독교는 아시아에서 실패한 종교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은 20억 중에 불과 8천여만명만이 기독교 신자이고, 인도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이슬람교이거나 불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독 한국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25%에 이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윤 교수는 교회조직과 운영, 선교방법, 봉사활동 등 전반적 체제에서 구태의연한 불교에 비해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민주화운동이나 인권운동 등 역사 속에서 사회적 참여와 실천에 적극적”이었던 점을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의 적극적인 ‘선교’를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자 ‘선망의 이유’로 지목했다. 윤 교수는 “기독교 신자들은 입교하면 해야 하는 게 선교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심지어 지하철에서 승복을 입은 스님에게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기독교 신자들을 보면서 “불교 신자들은 이런 모습에 질겁하면서도 불교에는 왜 저런 열정이 없나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요즘 불교계의 찬불가, 일요가족법회, 가족탐방법회, 조계종의 포교원, 복지시설이나 학교설립 등도 기독교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배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 불교 신자들에게 기독교는 이해하기 힘든 종교다. 불교는 흔히 상식, 이성, 합리, 성찰 등 설명을 통해 이해를 구한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이해보다는 창조, 부활, 전지전능 등에 대한 믿음, 즉 초월적 신앙을 요구한다. 때문에 불교 신자들이 기독교를 이해하기는 당연히 쉽지 않다.

윤 교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고, 겉옷을 달라하거든 속옷까지 주라’는 성경구절을 예로 들면서 “원수까지 사랑하라면서 단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는 기독교를 이해하기 힘든 종교”라고 말했다. 선행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고 불신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혹하기만 한 것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신앙은 주관적이고 각자의 선택적 결단인데 기독교의 이런 면이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악의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불교에서 ‘절’은 ‘신앙고백’ 의미 없다

우리는 90년대 말에 있었던 기독교의 불교에 대한 온갖 비방과 노스님에 대한 폭행치사, 파괴행위, 동국대 법당 본관 앞에 ‘만’자로 조경해 놓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간 일과 불상에 붉은 페인트로 십자가를 새겨 놓은 일 등 기독교 배타주의에서 비롯된 참혹한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찬수 교수의 해직사건에 대해서 “절에 가서 절해서 절단 난 절절한 사연”이라고 말했다. 불교에서 절하는 행위는 인사와 존경의 표현이고, 그 다음이 수행의 의미다. 흔히 기독교 신자들이 하는 ‘신앙고백’의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기독교에서는 이 교수가 불상에 절한 것을 ‘인사’나 ‘존경의 표현’으로 보지 않고, ‘신앙고백’으로만 보았다. 윤 교수는 이러한 시각에 대해 기독교가 가진 배타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 배타성은 '신앙고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앙고백'이라고 우기고 믿어야 만족하는 자족적 무지에서 자라난 측면이 강하다.

불교 신자들은 신앙을 연애감정과 비유하기도 한다. 신앙과 연애 모두 주관성, 비합리적 감성, 절대적 충성요구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연애 감정에 몰입한 연인이라도 내 애인이 최고니까 ‘너희도 내 애인을 사랑해라’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종교 때문에 행복하고 좋다면, 다른 사람도 그가 가진 종교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내 애인이 예쁘면, 다른 사람의 애인은 그 사람의 눈에 충분히 예쁜 것이다”

내 종교가 절대적이고 진리라고 믿는다면 다른 종교도 그렇다고 (최소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타종교란 평행하게 뻗은 철길처럼 절대 만나지도 않고, 만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길게 뻗은 한쪽의 그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에 윤 교수는 “내 팔 내가 흔들고 네 팔 네가 흔들어라”고 일갈했다.

'인정'의 바탕위에 대화가 생겨난다. 특히 종교는 서로 간 대화의 필요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서로 같은 진리일 가능성을 가설로나마 남겨두는 다원주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다원주의는 자기 완결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윤 교수의 “다른 종교로부터 배우려고 기독교 공부를 시작했는데, 기독교 공부를 하니 불교가 훨씬 풍성하고 훨씬 다양하게 보인다. 불교가 나를 성숙시키는 만큼 기독교가 나를 성숙하고 충만하게 만든다”는 얘기는 그런 면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방증하고 있다. 이찬수 교수 역시 "불교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더 깊은 신앙의 신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말도 이와 같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윤 교수는 “인간은 비교를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한다. 나를 보고 ‘빡빡이’라 인식하는 건 머리를 기른 사람들과 비교해서이고, ‘이번 강의 되게 재미 없네’라는 생각도 지난 강의와 비교해서 나오는 말이다”면서 자기 신앙을 올바르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선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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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배타주의만 고집하면 패배할 것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독교는 사회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며 존경을 받았고, 신자들의 수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멈췄다. 윤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사회의 현안에 헌신하는 노력을 버리고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충족에 주력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기독교가 근대화시기에 우리사회에 전해지면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일정 수준 근대화를 이룬 현재의 상황에서는 배타적이기만 한 기독교의 교의가 근대적 시민의식과 함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교를 가진 다종교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한국적 상황을 무시하고 기독교의 구원론만을 고집한다면 기독교는 갈수록 고립될 수밖에 없다. 다종교 사회에서 배타성은 종교가 갖는 전형적 기능인 사회통합의 기능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윤 교수는 “기독교 신자들이 ‘자기희생’과 ‘사랑’이라는 기독교 본래의 메시지를 회복하길 바란다”라며, 기독교 신자가 자기신앙에 성실하다면 다른 종교에 대한 몰지각한 행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기독교와 불교의 공동의 적은 바로 ‘세속주의’라고 지적했다. 신앙이 가진 본래의 의미보다는 대형화, 상업화에만 몰두하고 종파 간 세력다툼에만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한 따가운 질책이다. 윤 교수는 “기독교가 그와 똑같은 메시지를 지닌 불교와 손잡고 세속주의를 향한 공동승리로 나아가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여전히 배타주의만을 앞세워 다른 종교를 공격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패배할 것이다”라고 강의를 마무리했다.

2월 1일(목)에는 ‘종교적 다양성을 소화해낸 신학 - 스미스, 힉, 라너의 신학’을 주제로 이찬수 교수가, 2월 6일(화)에는 ‘똘레랑스의 의의와 종교적 관용’을 주제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강의가 이어진다.

개별 강의를 수강할 수 있으며, 신청 문의는 인권연대(02-3672-9443)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