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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교사인권강좌> 인권교육으로 꿈틀대는 새로운 희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9 10:45
조회
442

장미희/ 우리교육 편집팀



새해를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주최한 인권 직무 연수를 들으며 시작했다. 인권연대에서 보내온 온라인 소식지에는 평소 뵙고 싶었던 여러 선생님의 이름과 강좌 제목이 연서처럼 나를 유혹했다. 시무식은 좀 빠지면 어떠랴, (나는 학교가 아닌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 새해를 보람차게 시작할 수 있는데.

강좌 첫날 첫 시간, 조효제 선생님은 강의실을 빼곡하게 채운 선생님들을 보면서 선생님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한 해를 희망차게 보낼 수 있는 힘을 얻었노라고 했지만, 선생님이 몰고 온 청량한 공기 속에서 뭔가 새로운 희망이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선생님이 강의실 문을 열고 한 발 내딛는 순간 선생님도 우리도 무언가 우리를 감싸는 어떤 에너지에 짜릿한 희열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예상은 했지만 실의에 잠겨 2007년을 마무리해야 했던 우리는 무엇이라도 우리를 자극하고 일깨워 줄 그 무엇을 열망했는지도 모른다. 강의실에 걸린 현수막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권이 해답이다”

조효제 선생님은 ‘인간화된 사회 발전’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발전’에 대한 고려 없이 ‘발전 중독’, ‘양극화’의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일깨워 주었다. 첫째,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는 ‘억압 권력’에 저항하는 ‘대항 권력’이 바로 ‘인권’이며, 둘째, 인권은 ‘인간 평등을 열렬하게 고창하는 인도적 미덕을 가진 이념’이기에 집단 논리를 강요하며 개개인을 소외시켜 온 우리의 인간관을 바로잡게 하고 생각이 다른 개인 한 명 한 명을 민주적으로 설득하도록 이끄는 기제가 되며, 셋째,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그 무엇과도 타협 불가능한 것이기에 작게(또는 적게) 요구하면서 이를 절대화하는 운동 방식, 즉 ‘최소 절대화’를 인권이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민교육은 없이 ‘황국신민 교육’과 산업화에 부응할 수 있는 ‘산업 일꾼 교육’으로 이어진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상봉 선생님 강의에서는 공동체를 운영할 때 소수자, 약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 여겨 온 경직된 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이 말씀이 이 기억에 남는다.

‘교과서에 없는 노동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노동 현장에서 퍼 올린 생생한 이야기는 물론 신문 기사, 영화 등 다양한 시각 자료를 제시하면서 두 시간 동안 통쾌하게 웃게도 만들고 목울대가 차오른 울음을 애써 꿀꺽 삼키게도 만든 하종강 선생님 강의는 함께 일하는 이들과 꼭 한 번 청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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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승 코리아!’를 ‘오 피스 코리아!’로 바꾸어 외치자며 ‘통일 사회를 위한 평화 교육’ ‘통합 사회를 위한 인권 교육’ ‘생태 사회를 위한 환경 교육’ 이야기를 들려준 고병헌 선생님 강의에서 가슴에 새긴 것이 있다. 간디의 말이다. “삶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내일 죽을 것처럼. 배움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영원히 살 것처럼.”

김녕 선생님 강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처럼 별 고민 없이 써 왔던 속담이 어떤 면에서는 반인권적 표현이기도 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김녕 선생님은 ‘인권’은 모든 교과 내용에 반영되어야 한다면서 각 교과와 인권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강의록에 담았다. (참고로 첨부 자료 중 함께 읽어 볼 인권 관련 도서 목록에는 내가 몸담고 있는 출판사에서 펴낸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와 <거대한 뿌리>도 담겨 있다.)

홍세화 선생님은 그동안 ‘관용’이라 번역해 왔던 ‘똘레랑스’를 ‘용인(容忍)’으로 고쳐 쓰자고 제안했는데, 이유인즉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을 뜻하는,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듯 한 뉘앙스를 지닌 ‘관용’보다는 본래 ‘참다(tolerare)’에서 유래한 똘레랑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고 용서함’을 뜻하는 ‘용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평소 잘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낸 후 후회하는 일이 많기에 ‘참다’를 강조한 이 용어가 내 가슴을 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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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는 음악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면서 작은 공연까지 마다하지 않은 이지상 선생님, 체험에서 우러난 성 소수자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려준 한채윤 선생님(한채윤 선생님 강의록에는 프랑스 국립심리학연구소에서 만든,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성애자를 가리는 심리 테스트용 설문 문항이 담겨 있는데, 나는 양성애자일 확률이 높고, 이성보다는 동성에게 좀 더 호감을 나타낸다고 나왔다.), ‘장애’를 나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박숙경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도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해를 보람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귀중한 시간을 마련해 준 데다가 인권 관련 참고 도서까지 품에 가득 안겨 준, 인권 침해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인권은 실천이다’를 몸소 실천하는 오창익 사무국장님과 인권실천시민연대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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