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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 ]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시형, 박용석, 방효신, 서동기, 서진석, 정석완, 조동순, 조예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21),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8-01 (화) 18:16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ㆍ추천: 0  ㆍ조회: 167      
IP: 218.xxx.61
밥 줘 (방효신)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아무리 더워도 한 달만 지나면 처서(處暑)다. 매년 그랬듯이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님은 서로 비슷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얼굴이 탔네, 좋은 데 다녀왔어? 더 예뻐졌다.” 이런 말은 40대가 시작한다. 20대의 응대도 고만고만한데, 일단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더 좋아 보여요. 젊어지신 것 같아요” 기혼 50대와 어린 아이를 둔 30대가 나누는 말은 색깔이 좀 다르다. “한 달 동안 급식을 안 먹어서 살이 빠진 것 같아요. 방학 동안 세 끼 밥 하느라 힘들었어요” 외모 얘기에서 살림이나 가족 여행 여부로 넘어간다. “아유, 그래. 방학이 더 힘들다니까. 집을 탈출하니까 좀 살 것 같아.”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기 마련이다. 며칠 전 친구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께서 딸 얼굴을 보자마자 요구하셨단다. “꿀물 좀 타 와라.” 개인 사정으로 바깥출입을 며칠 안 하시고 하루 종일 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주 5일 출퇴근하는 딸에게 하는 첫 마디가 먹을 것 가져오라는 말이었다. “잘 다녀왔니?” 라던가, “오늘 일찍 왔네, 배고프지?” 같은 말은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는다. 배려심 많은 착한 딸이, “집에 계셨네요? 배고프시죠? 저녁 뭐 먹을까요?”라고, 먼저 말을 꺼내야 진부한 TV 드라마라도 전개되는 2017년에, 나는 여자라면 누구나 밥 짓기를 숙명으로 여기는지 궁금해졌다.


영등포구청역 화장실에서 6월 4일 발견한 스티커.
미소지니(여성혐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미러링을 택한 ‘워마드’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 서부 지역 공공장소에서 이런 스티커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사진 출처 - 필자

 밥은 누가 하는 걸까? 아내일까? 누나일까? 실생활에서 상차림을 기획하고,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으로 재료를 주문해서, 칼질하고 가스 불 켜서 음식을 익히고, 돈도 안 나오는 그 일은 ‘누구’의 일일까? 사회화된 의무감을 가진, 착한 성품을 타고 난, 살림 파업하지 않는, 육아의 주된 담당자가, 잘 해왔고, 빨리 배우기 때문에, 밥을 하는 건 ‘여성’적 특성인건지, 주로 어머니가 담당해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을 때에는 딸이거나, 여동생이다. 당연하다는 듯 가족 중 누군가는 지정 성별이 ‘여성’인 자에게 밥을 요구한다. 자기 배가 고픈데, 남에게 밥을 요구하는 문제해결 태도는 어디서 배운 걸까? 자기 숙제를 엄마에게 미루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밖에 나갈 때 ‘네 신발은 직접 신으라’고 집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왜 목이 마를 때,  물은 자기 손으로 안 떠먹을까? 아직 애라서? 철부지 같은 남자는 평생 보살펴 줘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라도 있는 마냥 어머니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길들여져서인지 점심시간 당연한 듯 식당에서 일행의 수저를, 휴지 깔고 놓는 대다수 여성과 각자의 자리에 물이라도 챙기고 있으면 가정적이라고 칭찬받는 남성을 본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그리고 집에서 해 먹든, 집 밖에서 사 먹든 여자가 밥을 짓는다. 요즘은 직장 다니는 여자도 많고, 승진하는 여자도 많고, 밥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자고 남편과 합의한 여자도 많아서, 각자가 해결할 사안인가? 여성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예전부터 해왔던 것이고, 승진해봤자 부장급으로 가면 10%도 안 되며, 아이가 있는 집에서 끼니를 항상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50살 이상인 여성 조리 종사원 20여 명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주 5일 점심을 먹으면서, 여자인 나는 ‘밥 먹기’가 종종 불편하다. ‘아빠! 어디가?’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각종 먹방에서 백종원 같은 남성 요리사가 진행을 주도할 때, 미디어가 ‘밥 짓기’를 교묘히 포장하면서 일상을 짓누르고 있음을 재차 확인한다. 변화나 진보라는 게 있다면, 거대한 담론 같은 거 말고 밥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사소하고 개인적이어서 가장 정치적인 ‘밥’말이다.

방효신 :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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