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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 ]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시형, 박용석, 방효신, 서동기, 서진석, 정석완, 조동순, 조예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21),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3-07 (화) 17:33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ㆍ추천: 0  ㆍ조회: 303      
IP: 218.xxx.74
팩트와 폭력, 바로 그 사이다 (지영의)

 : 무분별한 사이다 뚜껑 따기, 김빠진 사이다는 누가 마시나

지영의/ 청년 칼럼니스트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인 ‘팩트폭력’의 정의는 사실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정곡을 찔러서 반박 불가의 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혼란스러운 사회속에서 온라인 게시판과 댓글란, 그리고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팩트폭력’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혹은 상대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여지없이 폭로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한다. 거침없이 팩트폭력이 담긴 발언을 하는 것은 답답한 사회 문제에 속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이다’로 묘사된다. 이 현상은 일관, 거짓과 은폐 앞에서 사실을 속 시원하게 드러내는 당연하고도 정당한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이 팩트폭력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SNS에서 오가는 언어에 논리와 도덕적 성찰이 사라지고 있다. 예컨대 ‘팩트’라면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비윤리적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꺼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를 넘은 발언에 팩트라는 말을 얹어 직관적으로 던진다. 이 중 대다수의 경우가 ‘팩트를 이용한 논리적 제압’과 ‘차마 해선 안 될 말’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경계가 애매해지는 것은 ‘사실’이 자신이 하는 발언의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이기 때문에 말해야 하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존엄을 조롱하거나, 약점을 함부로 폭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회 윤리로서 지켜야하는 선이다. 이 선을 넘는다면 아무리 정당화 하려고 하더라도, 팩트폭력의 본질은 결국 언어폭력이다. 팩트폭력으로 개인을 비판할 때에 사용되는 ‘팩트’들은 피해자의 개인정보, 가정사와 지인 등 사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의 성형 사실, 이혼한 개인의 가정사. 당사자가 그 사실이 공공연히 적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고려되지 않는다.

 한참 만에 돌아온 연예인에 대한 기사 댓글에, 공백기동안 어디 어디를 성형했는가를 분석한 댓글이 수만의 공감을 얻었다. 얼굴 사진에 군데군데 붉게 체크를 하고, 과거의 사진과 정확히 비교한 그 댓글은 ‘반박불가’의 팩트폭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동안 사회적, 윤리적 약속으로 정해둔 보이지 않는 선을, 사람들은 ‘팩트폭력’이라는 말을 타고 넘어간다. ‘팩트’라는 말 하나로, 그래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팩트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람은 그 명제가 ‘사실’로 제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방어조차 쉽지 않다. ‘어쨌든 이게 사실이잖아’라는 말은 꽤나 가혹하고도 무섭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다수의 ‘팩트’가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팩트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팩트는 실은 사실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그 상황과 개인을 대하는 발화자의 가치판단일 뿐인 경우가 많다. 하나의 현상에 서로 다른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판단이 옳다고 다툰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통계가 나와 있는 수치조차 쓰이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쟁점이 갈리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크게 이는 문제일수록 가치 다툼은 더 심해진다. 서로의 가치관이 팩트라고 다투다가 어느 순간에는 주장이 만연해지고, 무엇이 팩트인지는 희미해진 채 논쟁만이 남는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슈들이 이렇게 지나갔다. 누군가에게 정답으로 제시하고 휘두를 만큼의 완벽한 팩트는 과연 있는가. 비윤리적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소통방식이 사회에서 이기는 화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많은 경우의 팩트폭력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무분별한 사이다 뚜껑 따기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사이다는 뚜껑을 연 즉시 톡 쏘는 청량함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다. 그렇다면 김빠진 사이다는 누가 마시나? 팩트폭력은 사실 우리가 그동안 소통할 때에 지키기로 약속한 ‘질서’를 파기하는 행위다. 모두가 지키기로 합의했던 질서가 사라지면, 피해를 입는 것은 가해자를 제외한 나머지의 사람들만은 아니다. 무질서 속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고정적이지 않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그렇다. 당신이 따놓은, 김이 다 빠져버린 그 사이다를 마시는 것은 결국 당신의 몫이다. 당신이 가볍게 휘두른 말, 그리고 그 말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언어폭력이 일상적인 사회. 사회속의 모든 행위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결국, 팩트폭력의 피해는 당신 또한 입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당신은 그게 ‘팩트’니까 괜찮을까?

지영의씨는 KTV 국민방송에서 인턴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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