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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산책 ]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정지영(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천정환(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6-14 (수) 11:08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ㆍ추천: 0  ㆍ조회: 134      
IP: 218.xxx.74
발상의 전환, 6.29선언 돌아보다! (윤영전)

윤영전/ 평통서문예원장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데 “6.29선언”이 있었던 그때가 벌써 한 세대가 흘러갔다. 조국분단 72년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유월항쟁의 6.29선언이 어느 사이 3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 1987년 6월 그날의 기억들을 돌아본다.

 그해 1월14일 서울대생 박종철 학생이 데모주동자로 몰려 수배를 당하던 중에, 경찰에 붙잡혀 남영동 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경찰은 “종철 군을 붙잡아 조사를 하던 중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를 하였는데 믿을 수도 없고 소가 웃을 일이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항의 집회를 하며 “종철”이를 살려내라고 가열 차게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 해 전 1986년 9월27,28일에는 건국대에서 전국의 2천 여 대학생이 집결하여 자주 평화통일을 위한 토론과 부정한 정권에 대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은 전원을 강제로 진압, 서울의 전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했는데 시설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다음 해는 88년 가을에 올림픽이 예정되고, 연초 2월에는 전두환 정권 단임 7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야당과 재야에서는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감옥에서 이부영 의원이 들은 박 군 죽음의 진실은 “박 군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숨졌는데 경관 2명이 아닌 3명이 더 가담했다. 이를 은폐하고 고문한 경찰 가족에게 총리공관에서 1억씩 주며 은폐를 했다.”라는 사실이었고 이를 사제단 김승훈 신부에게 알려주었다. 이어 5.18 광주항쟁 7주년이 되는 날, 명동 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광주의 영혼들을 추모하는 미사집전에 김승훈 신부가 이를 발표하였고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이어 성당 밖에서 신자들과 시민들이 분노하고 이어서 낮과 밤에도 계속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가 박종철 학생을 살려내라는 항의가 날로 확산되었다. 이에 전두환 정권은 국무총리를 비롯한 안기부장, 내무, 국방, 문교 등 민심수습을 위한 개각을 즉각 단행했다. 5.25 당시 총리로 이한기 원장을, 본인의 고사에도 일방적으로 발표해 필자도 총리를 보필하는 보좌관을 맡게 되었다.

 당일 종합청사에서 총리 이취임식을 하고 저녁 8시에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데 “박 군의 고문치사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해당자 엄벌은 물론 앞으로 재발되지 않도록 다짐한다”는 회견을 하고 총리 업무에 들어갔다. 필자는 총리를 수행하고 의전실에서 당시 반기문 의전장과 총리를 보좌하였다. 전 국민은 고문치사에 항의하고 직선제 헌법 개정을 전국적으로 학생과 시민들이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박 군의 고문치사에 항의와 직선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4.13호헌조치를 발표하여 더욱더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었다. 더구나 6월9일에는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시위 중에 경찰의 직격탄을 맞아 위급하게 되었는데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였다. 여기에 재야와 학생은 6월10일을 기해 항쟁을 선언하고 그날 전국의 차량들이 경적을 울려 항의를 하는 등 투쟁을 전개했다.


6.10 국민대회
1987년 6월 10일 명동 한일은행 본점앞에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날 저녁9시에 청와대에서 총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대통령입니다. 지금 명동성당에서 ‘해방구’를 설정하여 정부를 전복하려 맞선다는데 알고 있소. 당장 해결하시오. 명령이오”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필자는 절대 강제로 성당에 경찰투입은 안된다고 건의했고 총리도 동의를 하면서 은근히 걱정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9시 긴급 청와대 안보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청와대에는 국방, 내무, 법무, 문교 등 장관들 치안본부장도 미리 와있었다. 총리가 도착하자 대통령은 “참 한심한 나라다. 해방구라 칭하고, 법을 무시한 오늘의 현실에 답답하다. 여러분 의견이 있어요. 먼저 총리께서 말씀해 보시오” “예, 성당에 공권력 투입을 한다면 전국의 각 성당에서 종을 치고 또한 로마교황청에서 언급을 한다면 세계 10억의 천주교 신자반발로 이는 역효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요. 의견 말해 보시오” “예, 대화로 풀어야지요” “그럼 총리말씀 외 다른 대안이 없나?” 다른 의견 제시가 없자, “그럼 총리 말씀대로 대화로 풀되 3일간 여유를 주겠소. 만약 안 되면 그때는 방법이 없소”

 그날부터 총리는 관계 장관과 명동 김 추기경, 함세웅 신부 등과 활발한 접촉으로 3일후에 성당 내 1천여 명의 농성하던 재야인사를 설득해, 농성을 풀고 해산을 하여 대기한 버스에 올라타게 하였다. 더구나 외국 뉴스에 “한국의 서울에서 한철로 길에 마구 달리던 두 열차가 멈추었다”며 한국인도 대화로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며 극찬해 이총리 또한 마음이 흡족했다. 이는 총리의 주장인 소위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러나 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항의 시위는 계속되었는데 이에 정부는 강공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여의도에 군 2개 사단이 이미 출동했다는 정보에 필자는 여의도 현장에서 군에 직접 물었다. “어찌 군이 출동 했나요?” 헌데 “돌아오는 10월 국군의 날 행사에 미리 출동했다.”는 해명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총리에게 보고했다. 군출동설에, 총리는 이기백 국방장관에게 문의하였고 계엄을 실시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요하기에 미리 출동을 했다는 답변에 총리는 큰 걱정이었다.

 “만약 군이 출동하면 나라가 망하고 올림픽도 실시하지 못한다.”고 건의했다. 계엄령선언에 총리부서를 요한다면 그때는 바로 병원으로 입원해 버리세요? 총리께서 몸도 좋지 않으시고요. 계엄령은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 총리는 은근히 걱정이었다. 군인들의 무조건 순간 강권으로 밀어붙이면 다 되는 줄 아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정국은 결과적으로 지금의 호헌으로는 민심잡기 불가하니 과감히 호헌을 철폐하고 내각제 개헌도 철폐하고 오직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직선제 개헌만이 정국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파하느냐가 문제였다. 하루는 당시 여당의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를 만나 설득해 보라는 건의를 하였다. 명동성당 농성을 풀어서 나온 그 좋은 결과를 직선제를 관철하라고 대통령에 건의하라 했다.

 그러나 물태우 별명처럼, 다 따놓은 다음 대통령을 스스로 포기하라는 요구로 들렸는지 자신은 그 건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총리의 의견이라며 건의해도 좋다고 설득하여 전두환이 수락해서 나온 것이 “6.29선언의 내용”이었다. 이날 노태우 선언으로 “오늘같이 좋은날, 차는 공짜” 란 단어에 모두가 공감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로 역사에 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야는 모두 풀고 선거에 임했다.

 결국 내각제가 아닌 직선제 헌법을 제정하고 노태우 36%, 김영삼 28%, 김대중 27%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궁극적으로 양김의 단일화 안 된 출마로 어부지리를 노 후보가 얻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전국적인 부정이 난무한 국정원 박 보좌관 역할이 주요했다며 사제단은 대선 결과가 이미 알려진 비율대로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또한 이명박근혜 부정선거에 대한 대선 결과도 선거 소송에 계속 연류 된 사실이다. 그러나 1천7백만의 촛불혁명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 국민들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자부심과 긍지였다. 모두가 6.29선언 ‘발상의 전환’ 당시 이한기 총리의 의지였다. 궁극적으로 72년 한반도 분단이 이제는 평화통일의 길만이 삼천리금수강산에 꽃피리라.

 이 길이 8천만 동포의 염원이고 아름다운 꿈이 아닐까? 평화통일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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