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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책 위원회 ]

  ‘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윤다정(미디어스 기자),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3-11-06 (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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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지음 - 은종복

「빌뱅이 언덕」 글 권정생, 출판사 창비

어머니

은종복/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일꾼


 오늘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얘야, 책방 접어라,” 20년 동안 해 온 책방을 그만두라 한다. 어머니에게 빌린 돈이 천오백만원이다. “얘야, 넌 내게 얼마를 가져갔는지도 모르지.”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사실 몰랐다. 출판사에 줄 돈도 없는데 엄마에게 빌린 돈이 얼마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1993년 4월 1일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대학 다닐 때 만날 데모만 하던 선배가 무슨 책방을 하겠냐고 믿지 않았다. 그런 책방을 쭉 이어서 해 왔다. 누군가는 그랬지. 1930년대 카프 작가들이 “남은 것은 이념이요, 죽은 것은 문학”이라고. 내가 책방을 하면서 “남은 것은 빚더미요, 죽은 것은 내 영혼이다.” 책방을 10년만 하려고 했다. 그 뒤엔 농사를 지으며 그냥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책방을 하기 10년째 되는 날, 미국은 이라크를 쳐들어가 가엾은 아이들을 마구 죽였다. 나는 그 때 10년을 맞아서 떡을 나눠 먹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이라크 아이들 비명 소리가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떡을 사려는 돈으로 반전평화모임에 돈을 보냈다. 아마 20만 원쯤 될까. 아무튼 그날 뒤로 글을 썼다. 새벽잠을 줄이고 글을 썼다. 맨 처음 쓴 글이 ‘2013년 2월 15일 세계반전평화공동행동에 함께 해요.’다. 그 글을 한겨레신문 ‘왜냐면’에 실었고, 신문이 나온 뒤로 서너 사람에게서 격려 전화가 왔다. "아, 글이 이렇게 힘이 있구나. 책방 일을 하느라 집회에도 못 나가고 평화단체에 돈을 내는 것이 다였는데. 글이 힘이 되는구나." 싶어서 계속 글을 썼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내게 남은 것은 책방 매출이었다. 달마다 기적이다. 오늘도 카드 현금서비스를 200만 원 받았다. 내일 출판사에 줄 돈이다. 다음 달이면 카드론을 합쳐서 은행에 결제할 돈이 800만 원이다. 거기다 까맣게 잊은 어머니에게 빌린 돈을 합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오늘 지하철을 타며 잡지 <녹색평론>을 읽었다. 누가 쓴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얘기 줄거리는 이렇다. 누구나 마음에 독을 품고 있다. 잘 살려는 욕망이 자기를 밀치고 간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너그럽지 않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라. 미움도 사랑도 그냥 내버려두고 그냥 살아라. 목숨 붙어 있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뭐 그런 말이었다. 참 좋은 얘기다. 하지만 내겐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좋아 하는 권정생 선생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신이 열일곱 살 때 나환자가 있는 요양소에 있다가 나왔다. 그 나환자를 따라 나섰다. 남은 돈으로 깡통 하나와 성냥 한 갑을 샀다. 길을 가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어느 집에 들러 낮밥을 먹고 싶었다. "아니야, 내 처지에 무슨 점심밥이야. 오늘부턴 점심밥을 안 먹을래. 나는 철저하게 거지가 될 거야. 빌어먹는 처지에 무슨 때를 맞춰서 밥을 먹어."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백리를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니 아버지는 아파서 누워계셨고 전쟁 통으로 다 죽거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형제들 빼고 하나 남은 동생이 죽다 못해 살아 있었다. 그래도 권정생 선생님은 그 때 4개월 동안 먹을 것도 못 먹고 한뎃잠을 잔 것을 인생에 가장 큰 뜻이 있다고 했다. 예수 얘기를 하면서 왕에게 빌붙어 사는 거지 나사로이지만 당당하게 살겠다고 했다.

 나도 오늘 아침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 나사로가 되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책방을 끌어온 것은 첫째도 신용이요, 둘째도 신용이요, 셋째도 신용이었다. 출판사에, 손님들에게,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책방을 꾸려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짓말을 한다. 책방에 돈이 없으니 출판사에도 지불 약속을 못 지키고, 책방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책값을 싸게 주지도 않고, 내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에게 빌린 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그래도 책방은 계속 할 것이다. 요즘은 더 속상하다. 아까 녹색평론에 나온 글처럼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욕심을 내지 않고 살며 좋겠는데. 그게 안 된다. 내가 책방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더 이상 책방에 오지 않을 때,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사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믿었던 사람들이 책을 훔쳐갈 때, 나는 절망을 한다. 가끔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사람들이 학습지를 찾을 때 마음이 아프다. 지금 우리 책방에는 오만 권이 넘는 책이 있다. 대부분 책이 인문사회과학 책들이다. 하지만 팔리는 책은 수험서와 대학교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나는 생태 평화 인권 나눔을 실천하는 곳에 달마다 돈을 내고 있다. 내가 후원금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돈을 내고 있으니. 참 비웃을 일이다. 내가 꾸리는 책방에서 인문사회과학 책을 팔아서 먹고 살았다면 굳이 돈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수험서를 팔고 대학 교재를 파니 부끄러웠다. 사실 법관이 되고 공인회계사가 되고 큰 회사에 들어가서 세상을 맑고 밝게 하겠는가.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내가 처음에 책방 문을 연 것은 자연을 더럽히지 않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고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을 맞고 싶어서다. 갈수록 그런 꿈은 멀어졌다. 책방에서 파는 책도 그런 꿈을 멀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돈으로 땜질 하려고 그런 단체에 돈을 내고 있다. 이제는 그 일도 못 할 것 같다. 곧 책방 문을 닫아야 하니.

 아니, 버틸 것이다. 책방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 달마다 하는 책읽기모임이 일곱 개다. 녹색평론읽기모임, 철학 고전 읽기 모임, 시 읽기 모임, 소설 읽기 모임, 어린이 책 읽기 모임, 어린이 글쓰기 모임, 환경 책 읽기 모임. 거기다 곧 책방 바로 앞에 ‘어린이 책 놀이터’도 만든다. 동네 아이들이 오면 옛이야기를 읽어 주고 동화책을 읽어 줄 것이다. 그 일은 나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책 읽기 모임을 함께 한 사람들이 도와준다. 그래서 살맛나는 책방을 꾸렸듯이, 동네에 살맛나는 찻집, 살맛나는 술집, 살맛나는 밥집, 살맛나는 살림집을 꾸리고 싶다. 마지막으론 동네 나이든 사람들이 어린이 놀이터에 와서 아이들에게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꿈을 꾼다. 지난 날 한 겨울에 화톳불에 군밤을 구워먹으며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듯이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로 내려와 동네 아이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꿈을 꾼다. 그렇게 하려면 동네에 사는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은 하숙을 하거나 자취를 하면 단지 달세를 올린다거나 집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하며 집주인과 하숙생이 만난다. 그런 만남이 아니라 하숙생이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서 그들이 살아온 얘기를 듣고 녹음을 해서 책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한두 번 만나서는 안 되고 열 번 넘게 만나야 하고 녹음을 해도 되는지 여쭤보아야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다. 돈이 많건 자식들이 잘 살건 간에 외롭다. 얼마 앞서 신문을 보니 나이 팔십 된 어르신이 자기가 죽으면 아내가 요양원에 가게 된다고 스스로 차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승용차를 몰고 강에 빠져 죽었다. 유서에는 자식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세상을 뜨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썼다. 그 어르신은 집에 과수원도 크게 하고 자식들도 모두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목숨을 끊는 게 행복한 길일까. 그는 외로웠던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 있어도 품 안에 자식이다. 이제 동네에 사는 어르신들은 그 동네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자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이야기꽃을 피워야 한다. 노인정은 노인만이 모인 곳이고, 어린이집은 어린이만 모인 곳이다. 이제는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가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드는 세상을 꿈꾼다. 사람들은 ‘늙은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노인이나 어른신이라고 해야 옳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 땅에서 세 가지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한다. 아니 그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다. 첫째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학력공부에 찌들려 어른 얼굴이다. 다음은 일을 찾고 싶은데 못 찾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돈을 버는 기계를 바라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어 힘들어 한다. 다음은 늙은이다. 그들이 어떤 사상을 가졌건 돈이 많건 가난하건 외롭다. 아니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위 세 사람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모두 돈을 못 번다는 것이다.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며 생각 힘을 키운다. 간디는 그런 말을 했다. 아이들에겐 영어 수학 공부를 시키지 말라고. 인도가 영국 식민지 아래 있어서 영어를 꼭 공부해야 했지만 영어 공부를 하는 것 보다 자국 언어인 구자라트 말로 역사 공부를 하라고. 그게 더 쉽다고. 그리고 아이들에겐 축구나 야구 같은 구기 경기를 하라고 했다. 아무리 축구를 잘 하는 사람도 혼자 공을 몰고 가서 상대편 골문에 공을 넣지 못한다. 공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골을 넣는다. 그러면서 조직력과 협동심을 배운다. 아무리 투수가 공을 잘 던져도 타자가 공을 쳐야지 이길 수 있다. 또 타자가 친 공이 하늘 높이 떴는데 좌익수가 ‘마이 볼’ 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중견수가 이미 공 가까이 와 있다면 좌익수는 공을 잡지 않아야 한다. 안 그러면 서로 몸이 부딪쳐서 공을 못 잡는다. 아주 짧은 순간에 판단이 승부를 가른다. 이것은 책상에 앉아서 영어 단어, 수학 공식 하나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땐 이렇게 밖에서 뛰어 놀면서 자라야 한다. 그때가 지나면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 서로를 믿고 빠른 판단으로 함께 하는 힘은 어릴 때 놀던 또래모둠에서 나온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큰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동네에서 활동가가 되면 좋겠다. 사람이 사는 데는 먹고 입고 자는 데가 있으면 된다. 거기다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생활을 하면 더 좋고. 동네에 있는 살맛나는 밥집, 옷집, 잠자리를 만들면 그렇게 살 수 있다. 처음에는 힘들다. 하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알고 지내며 대안화폐를 써서 돈 없이도 사는 꿈을 꾸자.

 마지막으로 늙은이들은 무슨 정치색을 가지고 있어도 외롭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나이가 든 사람들은 모두 공경한다. 호주 사막을 미국 여자 의사가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걸어간다.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온갖 벌레를 먹고 추위와 목마름, 사막 더위에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때마다 함께 가는 나이 든 사람이 슬기로 잘 헤쳐 나간다. ‘무탄트’라는 말은 지금 우리 같은 문명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는 사람들은 ‘참부족사람’이라고 한다. 참부족사람들은 도시인들을, 무탄트들을 괴물로 본다. 자연을 파괴하다가 스스로도 파괴하는 미친 것들로 본다. 사람들이 이성과 합리로 만든 세상이 갈수록 사람들 마음 벽을 높게 쌓고 있다. 이런 속에서 나이든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사진 출처 - yes24

 긴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책방을 접으라고 했는데 안 접겠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썼다. 다음 해에는 어머니에게 돈을 더 달라고 하지도 않고 동네 아이들과 젊은이, 늙은이가 함께 노는 꿈을 꾼다. 돈을 벌지 않아도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는 꿈을 꾼다.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었듯이 당당한 거지 나사로가 되고 싶다.

 내 꿈은 또 하나가 있다. 책방에 오는 사람들이 달마다 만 원씩 후원을 하는 사람들을 천 명을 모으는 것이다. 나는 책방에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꾸리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에 돈 만 원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천 만 원이 다달이 들어온다. 책방에서 책을 사서 법관이 되고 공인회계사 되고 대기업에 들어 간 사람들이 한 달에 만 원을 내서 그 마을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인가. 그날이 오면 내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한 보람도 있고.

 내 아들은 지금 간디학교에 다닌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손자에게 “애야, 너 대학은 들어갈 수 있니?” 묻는다. 내 아들은 대학을 못 들어간다. 지금 고등과정 일학년인데 초등과정도 대안학교를 다녔다. 아마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울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공부를 했어도 간단한 산술 계산도 계산기로 한다. 구구단 못 외워도 사는 데 불편 없다. 하지만 내 아들은 사람 마음을 잘 읽는다. 언젠가 내가 아내와 다툴 때가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느 날 밤길을 둘이 걷는데 내게 물었다. “아빠,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얼굴이 어두워 보여.”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내게 사랑한단 말을 안 해.” 그 얘기가 오고간 며칠 뒤 아침밥을 같이 먹는 자리에서 아이가 아내에게 말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 왜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 아내는 내 얼굴 흠칫 보더니 말을 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나 당신 사랑해. 하지만 내 일이 많다보니 그 말을 못했어. 그리고 왜 당신은 나만 바라보고 살아. 이제는 당신 삶을 살아. 우리 서로 결혼은 했지만 마음도 똑같은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내가 당신한테 무심하고 사랑한다는 말 안 해서 미안해.” 아이는 내가 없을 때 아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뒤로 아내와 사이가 좋아졌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가 동네 우리밀 칼국수 집에서 일을 하고 밤늦게 들어왔다. 그 칼국수 집은 동네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만든 것으로 아내가 큰 일꾼으로 있는데 적자가 나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아내는 월급을 못 받으면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에게 꼭 돈을 챙겨 주고 있었다. “엄마, 얼굴이 왜 그래.” 아내가 힘들어하면서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일을 못해서 엄마를 힘들게 해. 홀에 나가면 손님들이랑 수다 떠느라 주방에 오지를 않고, 설거지를 시키면 오 분이면 될 일을 삼십분쯤 걸려. 진짜 힘들어 죽겠다.” 아이는 가만 듣고 있더니 말했다. “그럼 엄마는 그 누나가 일을 못하니까 화가 난 거구나. 엄마는 그 누나가 일을 잘 했으면 하지? 엄마는 그래도 그 누나랑 같이 일하고 싶은 거 아니야.” “그렇지. 나도 같이 일하고 싶으니까, 이러지. 안 그랬으면 그만 두라고 하지.” “그러면 엄마 눈높이를 낮춰야 해. 아마 그 누나도 잘 하는 게 있을 거야. 부엌일은 엄마가 잘 하지만. 엄마도 모든 것을 다 잘 할 순 없잖아?” 아이 말을 듣고 나도 아내도 놀랐다. 늘 토론식 공부를 하다 보니 초등학교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말이 나왔다. 내 아이는 내 선생이다. 내가 아내와 다툴 때 뿐 아니라 책방 일로 힘들어 할 때도 가운데 서서 좋은 얘기를 해 준다.

 이런 아이를 어머니는 모른다. 오로지 열아홉 살이 되면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아이가 고등과정을 마치고 마을 활동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을에서 돈은 적게 벌지만 마을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할 때 슬기로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일은 영어 수학 공부 잘 해서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보다 내 아이가 더 잘하지 싶다.

 아참,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아이는 고등과정을 마치면 군대에 끌려간다. 내 아이는 학력으로 보면 무학이다. 검정고시도 보지 않았으니 무학이다. 지금은 최소한 중학교를 마쳐야지 동네 방위라도 간다. 그런데 간디학교 출신은 현역 입영 대상이라고 한다. 이 나라는 권리는 주지 않으면서 의무만 주어진다. 아내도 나도 후원하는 곳이 있다. ‘전쟁 없는 세상’이란 곳이다. 이 나라에서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총을 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내는 아이가 고등과정 삼학년 때 그곳에 가서 일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래서 설사 옥살이를 하더라도. 나는 차마 아이에게 이 년 동안 감옥에 가라고 말을 하지 못하지만 군대에 들어가기 보단 감옥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아시면 다시 펄쩍 뛰시겠지만. 아무튼 군대건 감옥이건 아이가 스스로 찾을 일이다. 단지 분단 된 땅을 물려주는 부모 마음이 아프고 미안할 뿐이다.

 아이는 고등과정을 마치면 다시는 할머니 집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기억에 할머니와 좋았던 일이 없다고.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정을 끊겠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래도 나를 낳아 준 어머니인데 아이가 그런 할머니와 안 만나겠다고 하니. 이런 점에선 내 아이도 아이인가 보다. 슬기롭게 할머니를 대할 마음이 없으니.

 그래도 어머니는 아이 대학에 들어가면 준다고 대학 등록금을 만들고 있다. 새벽바람에 일어나 남들이 버린 종이와 병을 모아서 한 푼 두 푼 모으고 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책방 살림에도 보태 주셨다.

 내가 왜 이리 못 났을까. 내가 좀 더 슬기롭다면 내 아들과 어머니 사이를 좋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난 그래서 동네에서 그런 꿈을 펼쳐 보고 싶다.

 대안학교 나온 아이들이 동네에 돌아와서 그 마을 사람들과 웃음꽃 피는 세상을 함께 만드는 것.

 이것이 대통령을 바꾸는 일 보다 더 크다고 본다. 세상이 평화로우려면 이래야 한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 저녁밥을 먹고 시간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랑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털털 웃는 마을을 꿈꾼다. 세상이 평화로우려면 백성이 임금 이름을 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임금이 백성 걱정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임금 걱정을 하게 되었다. 임금이 또 어떤 미친 짓을 할까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슬프다.

 책방을 잘 지키고 살맛나는 어린이 도서관, 살맛나는 술집, 살맛나는 찻집, 살맛나는 잠터, 동네 사람들이 어울리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 그런 마을이 한반도 남녘 곳곳에 수 만 개가 있다면 그날이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이다.

 인도 간디가 말한 아쉬람이 그것이다. 군대를 두지 않고 마을 마을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군대다. 지금 미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사건이 터진다. 스위스는 집집마다 총을 가지고 있지만 총기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나라에는 먹고 입고 잠잘거리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국제기구가 많다. 제일 이름 난 것이 ‘다보스포럼’이다. 스위스 다보스라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국제회의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우리 라 돈으로 칠천 만 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며칠 동안 먹고 잘 수 있다, 그 회의를 취재하려는 사람들도 하룻밤에 칠백 만 원 하는 곳에서 잠을 잔다. 그래도 서로들 오려고 한다. 세계 정상들과 내로라는 부자들이 다 모인다. 그럼 그들이 머무는 숙소가 아주 멋질까. 그렇지 않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빌라 수준이다. 물론 총을 든 사람들이 경호를 확실하게 한다. 그럼 왜 우리나라 신라호텔이나 무궁화 다섯 개짜리 건물을 짓지 않는 걸까. 그렇게 짓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인다. 평화지대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그 나라 농사꾼들에게 한 해에 우리나라 돈으로 구 천만 원씩 준다. 그리고 그 나라에는 마테호른처럼 육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많은데 높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 돈을 더 많이 준다. 스위스가 시계를 잘 만들고 관광객이 많이 와도 먹을거리를 만드는 농사꾼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정치를 한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상비군이 없지만 다른 나라들이 쳐들어오면 언제나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 총을 지니고 있게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사람들이 군대를 간다. 남북이 다시 총부리를 겨누고 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한반도 남녘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는 미움이 그대로 총구로 옮겨지지 않을까.

 내가 책방에서 하는 책 읽기 모임 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마음이 아픈 일이 바로 이 점이다.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전쟁이 나면 총을 들고 나선다고 한다. 누구를 쏘고 누구를 죽이겠다는 건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집총거부운동이다. 총을 들지 않아 감옥에 가고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 다시 남북이 피바다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평화 감수성을 키워야한다. 대학은 사람 죽이는 공부, 돈 벌이를 어떻게 하면 잘하는 그런 공부를 그만두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자연이 제 목숨대로 살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무탄트메시지에 나오는 참부족사람이 되어야 한다. 참 슬프게도 참부족사람들은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아이를 더 이상 낫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단지 무탄트들보고 그렇게 살지 말란 메시지만 남기고.

 어머니는 내게 책방에서 이익이 나지 않으니 그만 접으라고 한다. 나는 이겨낼 것이다. 내 아이에게 꿈을 심어 줄 것이다. “아빠는 힘들고 어려운 인문학 책방을 꿋꿋하게 지켰어.” 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죽고 나서 권정생 선생님을 만났을 때 환하게 웃고 싶다. 지금부터 칠 년 앞서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그때 책방도 지금 자리로 옮겼다. 땅 위에 있다가 지하로 내려갔다. 월세가 오르고 책들이 늘어나면서 땅 밑으로 내려왔다. 권정생 선생님 꿈은 내 꿈이다.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세상을 맞는 것이다. 선생님은 칠십 평생을 살면서 그 꿈을 꾸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몸이 튼튼하게 태어나서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면서 아이도 낳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오순도순 살고 싶어요. 저기 빌뱅이 언덕에 핀 들꽃처럼 나무처럼 이름도 없이 뽐내지 않으며 살다 가고 싶어요. 어린이 글을 쓰거나 남북이 하나 되는 거창한 일도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권정생 선생님은 몸이 아프지 않을 때도 쌀 두가마니를 어깨에 인 것 같이 아프게 사셨다. 당신 나이 열일곱 살 때 앓은 신장 결핵으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오줌주머니를 차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권정생 선생님이 진짜 부자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마음이 가난한 자여, 그대가 하늘나라에 가까이 있다.’라고 했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처럼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까 그 말이 참 좋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다른 이 마음을 안을 수 있는 마음이 넓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자인 것이다. 물론 마음이 가난하려면 전쟁 같은 아비규환이 없어야 한다. 먹고 입고 자는 것 때문에 서로 헐뜯고 죽이는 세상이 없어야 한다. 거지 마음은 가난하다. 나사로 마음은 가난하다. 권정생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남을 도와주려고 하지 마라. 남에 것을 뺐지 않으면 된다.” 기업은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되로 주고 말로 뺏는 일을 한다.

 나도 선생님 뜻을 따라서 가난하게 살고 싶다. 가난하지만 책방을 꿋꿋하게 지키고 싶다. 그래서 내 죽어 권정생 선생님 만나서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

 어머니가 내 뜻을 아시려나. 그래도 어머니 도움이 없으면 지금까지도 책방을 못 이어왔다. 어머님은 말로는 책방을 접으라고 하시지만 책방을 진짜 접으려고 하면 당신은 나 모르게 빚을 내서라도 책방 하는 아들을 보고 싶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책방 하면서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 듣는 것을 누구 보다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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