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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책 위원회 ]

  ‘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윤다정(미디어스 기자),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3-03-25 (월) 10:11
ㆍ추천: 0  ㆍ조회: 1540      
IP: 218.xxx.74
<대한민국 잔혹사> 김동춘 - 오창익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쁘다. 경쟁은 치열하고 정보는 쏟아져 들어온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불과 며칠 전 일도 까마득한 옛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긴 앞으로만 내달려도 힘든 시절이다. '과거 세력' 대 '미래 세력'의 대결, 선거판에서 흔히 내세우는 구도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언제나 미래의 편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앞으로 갈 길도 급한데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을 수 없단다.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그 과거란 것이 온통 잔혹한 것투성이라면 어떨까. 좋은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고, 폭력으로 점철된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과거라면 애써 그 과거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인지상정일 게다.

김동춘은 그런 면에서 주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그가 선택한 박사 학위 논문은 노동 문제였고, 주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한국전쟁이나 과거사였다. 노동은 인류가 문명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 인간의 본질적 활동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노동은 천시받고 있고, 심지어 불온시 되고 있다. 노동 문제를 공부하는 건 전문 연구자로서 프로젝트 등을 통한 돈벌이 포기 선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등 과거사에 천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연구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기도 어렵다. 김동춘이 공부만 했던 것도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4년 동안 상임위원으로도 일했다.

모두들 미래로 나가자고 할 때, 왜 김동춘은 끊임없이 과거를 살피고 있었을까. 김동춘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왜 이미 지나 버린 과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 김동춘의 책 <대한민국 잔혹사>(한겨레출판 펴냄)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 책은 한겨레가 펴내는 주간지 <한겨레21>에 2011년 5월 23일부터 2012년 12월 17일까지 연재했던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를 엮은 것이다. 대개 교수들이 쓴 책은 거친 문장이나 너무 전문적인 내용 때문에 읽기 불편한 경우가 많았는데, 김동춘의 책은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큰 장점이다.

 
▲ <대한민국 잔혹사>(김동춘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신선했다. 대한민국의 각종 폭력에 대해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그 심층을 보여주는 솜씨도 좋다. 2009년 용산참사를 통해서는 이승만 정부 시절의 제주 4.3사건이나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 민간인들까지 무자비하게 토벌한 과거의 사건을 떠올린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집중하면서도, 그 이면엔 과거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다. 용산참사를 보며 김동춘은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일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난 65년간 유사한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15쪽)

"과거 공권력의 잘못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기에 오늘날 이 잘못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렇게 될 위험성이 크다."(15쪽)

틀림없는 지적이다. 과거에 대한 공부는 그래서 필요하다. 김동춘의 작업은 그래서 '망각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잔혹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소수의 전문가 등 선수들을 제외하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낯선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특정 소수만 알고 일반 시민이 모른다면 그건 죽은 역사고, 거기서는 어떤 역사적 교훈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해서 김동춘은 친절하게 역사와 현실의 접목을 시도한다. 중요한 사건은 별도의 칸을 만들어 사건 개요를 알기 쉽게 요약해주고 있다. 글씨도 크고 편집도 시원하니 가독성도 좋다. 한번 손에 잡으면 금세 읽을 수 있다.

이미 60년도 더 지난 옛 일, 남의 일을 왜 지금 와서 되새겨야 하는지에 대한 김동춘의 생각이다.

"옳은 자를 강하게 하는 일은, 정치의 무대에 누가 서는가, 어떻게 정치를 하는가의 문제다. 그러자면 우선 옳지 않으면서도 힘을 갖게 된 사람들의 이력과 연유를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다가 탄핵당한 사람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일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33쪽)

여기까지는 평이한 권선징악적 주장이다. 하지만 이 뻔해 보이는 주장도 곧바로 이어지는 네 개의 단어 '관심, 앎, 연대, 공감'과 만나 떨림과 울림을 일으킨다.

"관심, 앎, 연대, 공감은 옳음에 힘을 부여하는 무기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정치를 힘이 정의로 군림하게 된 한국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다시 읽어야 하고, 힘이 정의가 된 역사를 반추하면서 정의가 힘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열망해야 한다."(33쪽)

<대한민국 잔혹사>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실명들이다. 역사는 이렇게도 기록되고 또 기억되는가 보다. 하긴 유엔이 인권의 진전을 위해 일하는 방식도 이렇다. '거명해서 창피주기(Naming and Shaming)'는 유엔이 인권문제를 두고 취하는 가장 일반적인 조치다. 무기력해보일 때도 있지만, 이건 어쩌면 가장 정확한 심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박근혜를 비롯한 친일파 후손들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엮음)을 두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나보다.

보완했으면 좋겠다 싶은 몇 가지 아쉬운 대목도 있다. 시점이 맞지 않거나 사실관계가 틀린 것들도 있고, 김동춘의 주관적 판단이 도드라져 지나치게 단정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근거 없는 주장처럼 여겨지는 대목도 좀 있는데, 주석을 달아 근거를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만 몇 권이라도 참고 문헌이나 더 읽을거리를 알려줬어도 좋았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이 서평은 <프레시안 Books>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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