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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인의 평화이야기 ]

‘무명인의 평화이야기’는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중동지역의 실상들에 대한 지적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입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중동지역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의 평화를 생각할 수 있는 글과 음악 등이 무명인님을 통해서 제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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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10-05 (수)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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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각오한 거부권 조항 개정과 최명길식 실리외교

I Love You...I'll Kill You -- Enigma

 

 

"외래 종족이 우리를 사랑할 수 없다면  최소한도 증오가  그들 사이에 오래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제국의 운명이 계속되어야 할 이 어려운 시기에 적들의 불화보다 더 큰 행운이 없기 때문이다."  

 -  타키투스-

 

이 글은 본래  10월 15일 실시되는 영구헌법 찬반의 국민투표를  불과 2주 앞둔 시점인    지난 10월 2일   이라크 의회는  영구헌법초안의 부결과 관련한  일부 조항을  바꾸어 버린 일을  실시간으로 분석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익히 아시는 것처럼  상황은  10월 6일  다시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개정안에 대한  수니파의 거센 반발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기에   그것을 각오한  개정의 주체들이 수니파가 반발한다하여   자신들이 시도한  개정안을   또다시 일사불란하게 뒤집는  태도로  연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만...   어쨌든  이번만큼은 전 세계의 여론이  대단히 부정적이었던 것이   그나마 공정성 유지의 틀을  지키는데  크게 일조를 한 셈입니다.   미국마저도 비판적이었다는 외신의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개정안은 오히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이었음을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평소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약간이라도  존재는 경우   즉각적인 성명을 내면서   아예 노골적인 압력을 넣는 것이  미국의  일반적 행태였었기에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10월 2일 이후로  미적거리다   결국 UN 보다도 한참 늦게  비판발언을 흘렸다는 미국의 태도는  상식이하일 뿐입니다.   그만큼 상황을 계산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도 이러한 과정을 묵인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웃기는 것은  논란이 되었던 개정안이 통과된 10월 2일은   알 자파리 총리에게  "물러나라" 고  공개비판한 잘랄 탈라바니쪽  PUK 대변인의 발언이  외신을 통하여 전해졌던 시점이라는 것이지요.   분명히  겉모양은  날카롭게 다투는 모양새인데   현실속에서는 엉뚱한  동지적 우애를 과시했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들 스스로가  의기투합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새삼 부시정부가 도마에 오르는 것입니다.    

 

An Iraqi child examines the shoes of victims on the blood stained floor of a mosque in Hillah,10. 6. 2005.

 

이번 개정안 과정에 참여한  이라크 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보여준  찬성과 반대의  극단적 모습들이 의미하듯이   하루아침에  무소신적 행태를 보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국 개정안에 대한  의원들  자신의  자체적인 토의나  판단보다는   위쪽에서  떨어진  오더에만 충실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오더는 이라크 과도정부의 수뇌부뿐아니라   이라크 밖의 또다른 귀하신 분(?)과도  상의된 오더일 것입니다.^^   부시정부의 입장에서는  개정안에 대한  수니파의 반발을  저울질 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었을 것입니다만,  처음에는 줄곧 개정안에 반발한 수니파만이 떠들던  문제의 내용들이   며칠 후  세계여론의  비판과 반발까지  가세하면서  의외로 크게 확대되었기에  그 고비를 못 넘긴 셈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견딜만하다 싶으면  짐짓 무관심한척 행세하면서  슬쩍 분위기에 편승하려고 욕심을 부렸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만일  개정안대로만 실시된다면  부시는 두 발  쭉 뻗고 잠을 잘수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덕분에  제 자신은  이 글을  작성한지  불과  하루만에  헌법개정안이  철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솔직히 글 내용이 아깝더군요.  그래서  이러이러한 권모술수가  이라크라는 바닥에서 자행될 뻔 했었다는 교훈적 의미로  본 글의 내용들을 고스란히 남겨 두게 되었습니다.  

 

 

본 글의 내용을 과거형으로 바꾸어  다시 수정된 내용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해프닝으로 끝난 사실에 매달려   그렇게까지 할 만한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본 글의 내용은  하마터면   이라크에서  실시간으로  이러이러한  혼란한 미래가 펼쳐질뻔 했었다는 정도의 의미로서만 읽어 주십시요.     인간군상들이 즐겨 선택하는  소위 권모술수를 다루고 있기에  간접경험의 의미로서 읽어 보신다면  그나마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본 글의 내용만으로는  글이 담고 있는  내용적 가치면에서  다소 불만스럽고  미흡한지라...   중간부분에 최명길과 광해군 이야기,  여기에 덧붙여  10월 국민투표와 관련한 수니파 3개주의 지난 1월 총선 당시의 통계를  부족하나마  함께 삽입시켜 두게 되었습니다.  내용적 완성도를  좀더 높여 보려고  제 나름대로 노력을 한 글이지요.  그저 쉽게 말씀드린다면..  여러가지 내용들이 함께 섞여 있다는 의미이지요.  각각 분리하여 읽으셔도  그 자체가 하나의 글이기에  상관은 없습니다.  

특히  1월 총선 수니파 3개주의  통계표와 관련한 내용은  10월 15일 국민투표 직전에  공개할 내용이었습니다만   이번에 일찌감치 공개를 해버리게 된 셈입니다.   국내언론은 물론이고  외신들도  언급한 적이 없는  저만의  현실적인 설명들을  미흡하나마  미래적으로 보여 드리려는 시도로서 해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부족하나마   이라크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자못 도움이  되어 드릴수 있다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글을 읽으심에 있어서  제 글의 구성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께는  무척 혼란하고  난해한 듯한 느낌을 드릴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언급하는 내용들이  담고 있는  하나의 일관성을  느껴 보시되...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께는  미리  이 점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With Vote Looming, Iraq Puts Security in Place

 

"맹인들의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이다."

-에라스무스-

 

지난 9월 27일  '알 쿠트'부근 사막에서 발견된 22구의 시체들..  사망추정시점은 적어도 1달이전  

 

소위 개정 이라고 표현은 합니다만   개정치고는 대단히 불공정한 모양새입니다.   내일, 모레가 국민투표일인데  이제와서  슬쩍  개정한다 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는 이야기이겠습니까마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임에도  한국내의 분위기는   아직까지도  이 의미를 구체적으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사화한 언론매체들도 얼마 안되는 것 같고   아마도 외신들의  분석내용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를 기다리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라크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제 자신은  정말 골치아픈  경우의 수를   또다시 따져야만 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우선  아래의 연합뉴스 기사를 읽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특히  이번 연합뉴스의 기사는  제 개인적으로  칭찬해 주고 싶은 분석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는 했었지만  정확한 상황파악은 못하고 있었다고 평가됨에 반하여  아래의 연합뉴스 기사는  작성자가  완전한 내용 소화를 하고 나서 작성한 기사이더군요.    어째서 그렇다는 것인지는  그 다음의 제 설명을 들으신다면  자연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2005년 10월 4일  한밤중에  티크리트 지역의 어느 이라크 민가를 기습적으로 수색하는 미군병사의 모습  

 

이라크 헌법안 거부권 조항 변칙 개정

2005/10/05 06:34

유효표 산정기준 투표자에서 등록유권자로 변경
수니파 반발, 유엔도 문제 지적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이라크 영구헌법안이 오는  15일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헌의회를 장악한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부결조항을 까다롭게 고치는 변칙을 동원해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안을 반대하는 수니파는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유엔도 투표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제헌의회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무얼 바꿨나 = 제헌의회를 이끌고 있는 시아파와 쿠르드족 의원들은 지난  2일 회의를 열어 거부권 효력발생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을 `투표자'에서 `등록유권자'로 바꿔 놓았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4일 보도했다.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지난해 제정한 과도행정법(기본법)은 헌법안이  효력을 얻으려면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에 `전국 18개 주 가운데 3개  주 이상에서 투표자의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전국 `투표자 과반수 찬성'에 의한 가결 부분은 그대로 두고 , `3개 주 이상에서 투표자의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돼 있는 거부권 관련 부분 가운데 `투표자'를 `등록 유권자'로 변경한 것이다.

 

방안의 모든 물품들을  뒤지는 모습입니다.   티크리트

 

◇ 왜 바꿨나 = `3개 주 투표자의 3분의2 이상'이 헌법안에 반대할 경우   부결되도록 한 조항은 헌법안의 국민투표 통과 가능성을 매우 불확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혀왔다.   이 조항은 당초 이라크 전쟁과정에서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쿠르드족에게 불리한 내용이 헌법안에 담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견제장치로 고안된 것이었다.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도후크 등 북부 3개주를 장악한 쿠르드족이 헌법안을 무산시킬 수 있음을 아랍족에게 주지시키는 무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수니 아랍족의 무기로 바뀌었다.

집권세력에서 저항계층으로 전락한 수니 아랍족은 인구 분포면에서 팔루자와 라마디가 속한 알-안바르주, 모술이 주도(州都)인 니네베주,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살라후딘)주 등 최소 3개주를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3개 주에서 투표자 3분의2 이상의 반대로 헌법안 폐기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었다.

 

의심되는 사람들은 일단 끌어내어 몸수색을 합니다.  티크리트

 

◇ 개정으로 예상되는 효과 = 거부권 효력 발생 기준이 투표자에서  등록유권자로 바뀜에 따라 헌법안 통과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저항세력의 중심으로 꼽히는 알-안바르 등 중서북부 3개주에서는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테러와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을 우려한  유권자들의 투표포기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돼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은 헌법안 가결을 바라는 쪽에 새 규정이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 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대표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 3개 지역 투표율이  낮아지면  `전국 투표자 과반수 찬성에 의한 가결' 가능성은 커지지만 `등록유권자 3분의  2  이상의 반대'가 필요한 거부권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용의자라 판단되면 결박후  이동시킵니다.  티크리트

 

◇ 수니파 반발, 유엔은 문제점 지적 = 연방제 조항이 국가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헌법안에 반대해온 수니파는 국민투표를 12일 앞두고 관련  규정이 변칙적으로 바뀐 것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수니파 정치그룹인 이라크 국민대화를 이끌고 있는 살레흐 알-무트라크는  이를 완벽한 기만극으로 규정하고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이라크 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헌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호세 아라나스 유엔 이라크 선거지원팀 법률고문은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라크 의회의 투표 규정 변경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의회와 행정부 측에 전달했다며 새 규정은 국제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

 

한밤의 가택수색과정에서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들입니다.  2005.10.04  티크리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구헌법찬반 국민투표를  목전에 앞두고서   또다시  경우의 수를 따져야만 하는 복잡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먼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드린다면,  지난 10월 2일 이라크 의회에서는   영국헌법초안의  거부권 조항   '투표자의 2/3이상 반대'를   '등록유권자의 2/3이상 반대'로   슬쩍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국민투표가  2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말입니다.   이런 내용의 의미가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는 이유는  거부권 행사의 조건이  투표자 2/3 에서  등록 유권자 2/3이상으로  되어 버린다면,   국민투표 당일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반대표를 던지는 꼴 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bitimg31.gif  수니파 3개 州   10월 15일 국민투표에서  수니파가 2/3 이상의 반대표를  기대하는 지역은  알 안바르 州, 살라딘 州, 그리고 니나와 州 입니다.   '니나와'는  이따끔 언론보도를 통하여  '니네바'라고  소개되기도 하는데   이미 설명드린 것처럼  아시리아식 명칭이 니네바이고   아랍식 명칭이 니나와이기에   민족간 명칭문제에는  그리 신경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수니파 지역의 문제는 수니파의 정치참여 문제와  더불어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수니파 내부의 강경파와  미군과 같은  외부세력들의 방해공작을  얼마만큼  현명하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니나와처럼  수니파 아랍민족과  쿠르드가  혼재된 지역의 경우는  이러한  의미가 더욱 절실하답니다.   만일 제가 미국의 입장이라면  대략 2가지 방식의 국민투표 찬성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라크의 혼란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면  찬성표를 던지라고 호소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수니파의 저항세력 색출을 빌미로 수니파의 선거참여를 교묘하게 방해하고  강경파의 발언권을 키워주면서  수니파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시아파와 쿠르드 등  그나마  우호적인 세력들의  안전확보에 전력하면서   이들의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전체 유권자를 10명 이라고 놓았을때   2/3반대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7명이 반대표를 던져야만 한다는 것이니    1차적으로 투표율이  최소한 70%를 넘어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중   적어도  90%이상은 반대표를 던져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현재의 이라크 상황하에서   이것이 쉬운 일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도 힘이 들판에    일부 수니 강경파는  국민투표 참여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참고적으로  지난 1월 총선당시의 투표율만 하더라도  등록된 유권자의 58%만이  투표에 참여했을 정도였습니다.   70%도  채우기가 힘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bitimg31.gif   니나와 州의 투표결과를 주목하면서    제 개인적으로  위 그래픽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살라딘 州와 알 안바르 州 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쿠르드 민족의 비율이 높은 니나와 州의 향방이  중요한 변수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민족간 혼재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변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 총선이 의미하듯이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선거의 결과는 사실상  이러한 민족간, 종파간 비율들이  좌지우지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외부적 요인이 배제된  공정한 투표의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결과  또한  거의 산수에 가까운 결과가 나올 뿐이지요.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알 자르카위로 대변되는  강경파와  저항세력 색출을 이유로 감행되는 미군의 지속적인 군사활동들은   결국 수니파 지역의 투표분위기를 해치는 요소들이지요.   미군의 움직임은 명분상 시아파와 쿠르드에대한  수니 강경파의 적대적 움직임을 차단하고 제어하는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반대로 수니 강경파의 발언권을 키워주는 구실도 하기에   이러한 발언권 강화는  오히려 대다수 수니파의 정치참여 움직임에 부정적 압력으로 작용할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소위 군사타킷으로 삼는다는  외국계 강경파가 아닌  수니 토착세력에대한 지속적인 검열과 공격적 행위들은  수니파 표가 응집되는데 있어서  대단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수니파의 응집도는 떨어지고  쿠르드등 반대쪽의 표는 상대적으로 상승하게 된답니다.  그렇기에 니나와 州를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이 고스란히 국민투표 당일에  적용된다면   수니파로서는 이중고가  되어 버릴뿐 아니라   기존의 낙관적 예측들이   절망적 예측들로  돌변하게 될 것입니다.    설혹  수니파가  국민투표에 성심성의껏  참여하여  반대표를  던진다고 하더라도   개정된 규정에 의한다면   영구헌법초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확률이 사실상 희박하다고 보아야만 합니다.    덕분에 수니파의 선거참여 자체가   자칫 영구헌법안의 합법성만을  인정해 주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자칫  곰은 재주를 넘고  돈은   다른 분(?)께서 챙겨가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유사시를 대비한  안전장치로서  국민투표일 직전에라도    만일   미군들이  알 자르카위가  이끈다는  저항세력 소탕을 이유로   수니파 지역의  투표 분위기를  험악하고  개판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당일 투표율이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또다른  좀더 고급단계의  권모술수 기법은   현재 국민투표 참여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수니 온건파의 입지와 발언권을 대폭 삭감시키는 상황과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국민투표 참여를 반대하는  일부 수니 강경파의 발언권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 상황을 유도하고  계속 확산시킴으로써   투표에 집중할수 있는 분위기를  수니파 스스로가  깨뜨리는 모양새를 만들어 버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투표를 거부하는  움직임과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까지  유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월 총선 당시의 니나와 州 득표현황  

                                           Entity      Ballots
 Kurdistan Alliance List      77,246
 Iraqis      56,609
 Unified Iraq Coalition       23,224
 Iraqi List      21,040
 Al Rafideen National List       3,346
 Al Ezediah Movement for Progressing and Reform       3,128
 Coalition for Iraqi National Unity       1,900
 Tukman iraq front        1,650
 Independent Democratic Gathering        1,342
 Nation Union       1,317

img16.gif    니나와 주의 1월 총선결과  지난 1월 총선 당시의 니나와州 득표현황을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수니파의 참여가  저조할 경우의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 드리기 위함입니다. 위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전체 유권자의 17%만이 참여한 결과 득표 1위가 '쿠르드 리스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당시의 투표율이 고작 17%이기에 이러한 순위가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다른 수니파 지역들과는 달리 민족간 혼재의 비율이 높은 니나와 州의 경우 투표율이 저조할수록 수니파에게 불리한 것 만은 사실입니다.  쿠르드쪽의 표응집력이 수니파 아랍쪽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그러한 의미를 잠시 보여드리는 셈입니다. 이와 관련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글 후반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즉  수니파 저항세력 스스로가   예상되는 국민투표의 결과에   절망하면서   투표일의  분위기를   자못  험악하고  공포스럽게 만들게끔   투표일의 상황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누가 목숨을 걸고서  투표를 하러 나가겠습니까?    어차피 기권은 반대표가 되어 버리지요.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추는 의미로  미군쪽에서는   이를  빌미로  수니파 지역을 겨냥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함으로써   투표일의 분위기를   함께 험악하고 개판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면...    멋모르는  제3자들의 눈에는   당일 투표율 감소가  지극히  불가항력적인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 들여지게끔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완전범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설명드리는 거부권 개정안 뉴스 자체가  수니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1월 총선때와 같은 모양새로 귀결된다는 것이지요.

지금껏  이라크 문제를 다루어온 사람으로서   솔직히 평가한다면   이것은  '미필적 고의' 그 자체입니다.   이미 상식적 범주를 일탈한 개정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냉정하게 적는다면  교활한 권모술수일 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지금 수니파에게  화를 내라고..  너희가 투표에 참여하건 말건,  이미 결과는 예정되어 있다고..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것입니다.    우려했던 갈등상황이 벌어져서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건  말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영구헌법초안이 부결되는 것만을 막아 놓으면   특히 부시입장에서는  일단  "제도적으로는 합법적이었고  민주주의를 향한 성공적인 투표였었다." 라고  그 자체만으로  우길 심산이라는 것입니다.   벌써 제가 국민투표후  부시의 담화문 내용까지 적을 정도면..^^    이건 수니파를 너무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붙이는 듯합니다.

 

img16.gif  안보리 결의안 58조   지난 10월 2일  잘랄 탈라바니의 PUK족  대변인  아자드 준디야니는  "알 자파리 총리의 퇴진을 논의할 시간이 되었다"라고  민감한 발언을 했었습니다.     물론 당시 체코를 방문중이었던 잘랄 탈라바니는 바로 이튿날 이러한 사실을 부인한바 있습니다만  자신이  10월 1일  알 자파리 총리를 비난하면서 발언한  "독단전행이 심각하다"라는 발언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비판들은  마수드 바르자니와  잘랄 탈라바니가  다호크에서 회동을 가진 직후에  나온 발언들이기에  자못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즉  잘랄 탈라바니 혼자서 생각하고  흘리는 내용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쿠르드쪽의 최대불만은 과거 후세인 정권에 의한 '아랍화'정책때문에 Kirkuk에서 쫓겨난 쿠르드인의 권리 회복을 담고 있는  안보리 결의안 58조의 이행에 알 자파리 총리가 소극적이다 라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58조의 전문을  글 마지막에 실어 놓았습니다.)    바로 아래의 자료는  과거 제가 설명드렸었던 내용입니다.   잘랄 탈라바니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  배경이 되는  쿠르드쪽의 알 자파리에대한 정서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아르빌 쿠르드 매체인 The Kurdish weekly Jamawar의 지난 7월 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쿠르드인들의 64%가  현재의 알 자파리 정부의 정책들과 과거 후세인 체제의 정책들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색다른 결과를 전하고 있습니다.  거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쿠르드인들이 25% 인 것을 감안한다면, 쿠르드인들의 89%가 알 자파리가 취하고 있는 정책들에 대단한 불만을 지니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이러한 조사결과의 원인은 UN 안보리 결의안 58조에 따라 이행되지 않고 있는 키르쿠크 쿠르드 난민문제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도 쿠르드측에서는 알 자파리 정부에 1차적으로 안보리 결의안 내용이 이행되기를 요구하는 중입니다. The Kurdish weekly Jamawar 는 덧붙이기를 알 자파리가 현재 쿠르드 출신 외무부 장관 Hoshyar Zabari를 제거하기를(remove) 바라는 중이라는 루머성 소식까지 친절하게 덧붙임으로써..^^ 알 자파리에 대한 쿠르드내 부정적 인식을 더욱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소식입니다. 일종의 여론몰이식 압력의 일환으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 2005 - 7- 27  무명인

 

The brother of an Iraqi policeman, who was killed in an exchange of fire with suspected insurgents, in Baghdad  2005-10-7

 

 

Iran's Presence In Iraq

(이란이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보다  저항세력이 크레모아를 만드는 과정과 설치방법을 눈여겨 보시길..)


 

 "고로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천천히 나아갈 때는 숲과 같고,  침략할 때는 불과 같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고, 숨을 때는 어둠과 같고,  움직일 때는 우레와 같이 거세게 하라"  

 - 孫子兵法 軍爭篇 第七 -

 

다케다 신켄 사후의 나가시노 전투를 그린  영화 카게무샤 

img16.gif   일본의 전국시대는 하극상의 시대   한국인들이 일본 사무라이에 대해서 가장 큰 오해를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사무라이가 대를 이어서 주군에게 충성한다" 라는 생각입니다.    대를 이어서 주군에게 충성을 한다는 생각은 다분히 유교적인 풍모입니다만   일본의 무사도 풍이  유교적인 풍모를 갖추게 된 것은  에도막부시절 때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그렇지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국시대를 통하여  일본의 사회풍토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하극상의 시대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철저한 이해득실과  계약만이 난무하던 시절이었지요.   아버지가 아들을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다케다 신켄만 하더라도 아버지를 쫓아내고 영주자리에 오른 인물이지요.   그것도 21살에 말입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하여  잠시 통일이 되었던  일본은   임진왜란후   다시  이에야스의 동군과  토요토미가의 서군으로 편으로  나뉘어  세키가하라에서 일대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당시 토요토미가의 편이었고 토요토미의 은혜를 받았던  서군의 제장들 태반이  산위에서 싸움구경을 하면서   도시락을 먹으며  이득을 저울질한 것은 자못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도쿠가와가의 에도막부가 열리게 된 셈입니다.   

 

잠시 머리를 식히는 의미입니다만..     일본 전국시대 무장들중 다케다 신켄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전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 마저도   무척 버거워 했었던 존재였던   신켄의 평소 병법철학은  "7할의 승리로 이익을 취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10할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상대방을 지나치게 궁지로 몰게 된다면    빠져나갈 길이 사라진 처지의 적들로부터  생과 사를 넘어선  저항에 부딪치게 됨으로써    결국 승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병력에  불필요한 손상만을 입힐 뿐이라는 것이지요.   상처뿐인 영광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변화무쌍한  일본 전국시대의 상황상   다이묘들간  자칫 불필요한 원한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상대방을  일단 제압하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익을 구함으로써  최초의 목적한 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자신의 우월한 군사적 권위와 위엄을 통하여   주눅 든 상대방을 속국화시키는 것입니다.  

 

다케다 가문의 몰락을 상징하는 나가시노 전투

img16.gif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조의 국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임진왜란 이전에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열어 달라는 일본의 요구에  조선의 선조가  "소국이 대국을 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국서를 일본에 보냈다는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를 치겠다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공상적 이유는 둘째치더라도   하극상의 시대인  전국시대를 겪었던  일본 무장들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운 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명예로운 일이었으니까요.  토요토미 히데요시  자체가  오다 노부나가 가문의  맨 밑바닥에서 은혜를 입으면서  출세하였음에도   결국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이후  주인 가문의 직위를 슬쩍 차지하여  전국시대를  평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판국에  선조의 점잖은 국서를 읽고서 얼마나 웃었을까요?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하극상의 풍조를 없애기 위해서 살아 생전에  여기저기에  은혜를 베풀며  자신의 사후를 대비한  보호막으로서  토요토미가의 인맥을 구성하려고 노력했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토요토미가 죽고난 이후  우려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하극상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종승자가 되었던   이에야스는  이러한  고질적인 하극상의 풍조를 없애기 위해서   유교적 무사도를 강조하였고  또한 그것을 주입시켰지요.    덕분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때까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다른 예를 말씀드린다면   병자호란때  청나라가 조선의 국왕을  살려준 이유가 이와 비슷합니다.   조선을 완전히 망하게 한들   당시 청나라로서는  조선을 경영할 만한 역량이 없었을 뿐아니라   명나라와 대치중인 국면이었기에  조선에만  군사력을 집중을 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남한산성내에서 벌어진  주전론이든  주화론이든    청나라에게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군사를 12만대군이나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일단  거창한  군사를 일으킨이상  그냥 되돌리는  리더는 없습니다.   실리외교라는 표현은 화살이 시위를  떠난 이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인조가 최명길의 의견을 수용할때의  남한산성 상황은  이미  일반 병졸들의 입에서마저   주전론자들을 처단하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아상태였었고    또한  믿었던  강화도까지  청나라 군대에 함락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청태종(홍타이지)

 

『 13일 왕과 세자가 동문에서 남문까지 순시하고 궁으로 돌아왔다.  홍서봉(洪瑞鳳), 최명길(崔鳴吉), 윤휘(尹暉), 허(許) 등이 나가 기다리자 용골대(龍骨大). 마부대(馬夫大)와 정명수(鄭命壽), 김돌시(金乭屎), 김여양(金汝亮)이 와서 서로 인사하고 앉았다.  용골대 등이 말하기를 "전번의 서약을 파기한 것은 우리들이냐? 너희들이냐?" 홍서봉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실수였다"고 했다. 용골대가 어찌 싸우려 하지 않느냐고 말하니  "소국(小國)이 대국(大國)과 어찌 감히 싸울 수 있느냐"고 말했다.』

『 26일 포성이 종일 끊이지 않았다.  장졸(將卒)들이 또 소란을 피워 궐문을 향하여 크게 외쳐 말하기를 "척화(斥和)한 사람을 왜 내보내지 아니 하는고, 그 사람들은 지략(智略)이 많을 것이니 장군을 삼아서 전쟁터에 내 보내라" 했다. 체부(體府)가 말하기를  "척화한사람 홍익한(洪翼漢)을  이미 청나라에 말했으나  청나라가 끝내 대답을 아니했으니  이 사람 또한 청을 따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했다.  "너희들이 말하는 척화인은 누구를 말하는가?"  장졸들이 말하기를  "이름도 쓰지 못하는 무식한 무인(武人)들이 어떻게 책 읽는 재상(宰相)을 알것인가?  그들은 온돌방에 앉아서 배불리 먹으며 성이 적의 포탄에 부서짐을 모를 것이다" 하고  직접 들어와서 왕에게 하소연 하고자 했다.  왕이 수문사(守門使) 도승지(都承旨)에게 명하여 달래니 장졸들이 물러났다. 』 - 정축 1637년 1월  남한일기(南漢日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하에서  당시 인조가 택할수 있는 선택은 딱 둘입니다.   하나는  스스로가 모든 책임을 지고서 자결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하나는  목숨만은 살려 준다는 청나라의 약속을 믿고서  항복을 하는 것이지요.   탈출은 거의 불가능하고   외부의 근왕병들이  궐기하여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을 압박해 주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힘에 겨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조가 자결을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강화도가 함락되고  봉림대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실들까지  청군의 수중에 들어간 상황인데   그까짓 자결이 무슨 대견한 일입니까?   인조가 자결한다고   갑작스럽게  조선군들의 사기가 올라갈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조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항복을 해야만 할 것인데    그 과정에서  누구도 하기 싫어하고  더러운 오물보듯 했었던  항복협상을 교섭하고  항복을 위한  사무적 뒷처리를 최명길이  용기있게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점수를 줄 수는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순간에  기꺼이  희생적 행동으로 옮길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용기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현대적인 감각에서 보았을때   실제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런 상황을 빗대어  실리외교였다고  강조한다는 자체가  대단히 어색하다는  것입니다.    항복문서 작성에 관여한 그 자체가  실리 외교라는 표현을 적을만한  사실이라는 것인가요?    최명길이 군사적 대립보다는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 줄것을  주장했었다고 할지라도   전쟁은 이미 발생하였고   임금은  무릎걸음으로  청태종 앞에 기어나가  머리를 땅바닥에  힘껏  두드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명나라 멸망의 주범이었던  신종(만력제)

img16.gif 신하들마저도 얼굴을 몰랐던 황제 1  명나라 13대 천자였었던 신종(1573~1620)은  10세때 천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지만   정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단한(?)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자신의 스승이자 명나라의 기둥이었던 장거정의 사망(1582년)이후  잠시 나라를 다스리는 듯하다가, 결국 1590년을 기점으로 자금성에만 틀어 박혀서  삶을 즐기느라  장장 25년간 신하들과 대면하지 않았다는 기록적인 휴가일수입니다.(25일이나 25개월이 아닙니다.^^)    크로포드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부시는 새발의 피입니다.^^  이 정도면 대국답게 스케일이 자못 시원시원은 합니다만..  늙은 중신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신하들마저도 천자의 얼굴을 몰랐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또한 장거정이 세상의 욕을 먹어 가면서 개혁을 한끝에  국고를 채워 주었음에도  대단히 인색한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공석이 된 자리에 인재를 충원하는 것마저도 돈이 아까워서 안 한 천자이니까요.  심지어  재판할 관리가 없어서  백성이 20년간 옥살이를 한 일도 있다고 할 정도이지요.  이런 사람이기에 임진왜란 당시의 전비는 아까운 정도가 아니었음을 쉽게 알수가 있습니다.^^  

 

『19일 최명길이 국서를 지어 대궐에 들어가니  예판(禮判) 김상헌(金尙憲)이 빼앗아 찢어버리고 통곡을 했다. 병판(兵判) 이성구(李聖求)가 들어와 말하기를  "당신이 만고의 의리를 지키려는 것은 좋으나  왕과 세자는 어느 땅에서 사느냐"했다. 김상헌이 말하기를 "당신은 부찰사(副察使)로서 오직 한번 죽을 뿐인데 어찌 화친하자 하는가" 라고 한즉 이성구(李聖求)가 말하기를  "오늘날 정세를 보니 공략이냐 화친이냐 하는 판국에 나를 적에게 보내려 하는가" 했다.』

『 27일 최판서가 국서를 지으니, 다행히 성상의 은혜를 힘입어서 이역(異域)의 귀신을 면했다고 하는 말이 있더라 홍정승이 청나라 진중(陣中)에 갔다.  마부대가 말하기를 "너의 왕이 힘들여 외로운 성을 지켜서 구차히 생명을 부지하다가 지금 나오려고 하니 이것 역시 너의 왕의 행복이다.  마땅히 황제에게 알려서 날짜를 정하여 군대를 철수토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저녁 사방에 안개가 자욱했다.』

『30일 왕이 청나라 진군에 가서 예를 행한 뒤에  청나라 황제가 붉은 수의와 가죽옷 한 벌과 백마 한 필을 내주고 잔치를 베푸니 날이 저물어서야 왕은 서울로 돌아오고 세자와 양대군(兩大君)은 진중에 머물렀다.』  - 정축 1637년 1월  남한일기(南漢日記)

 

지금 읽어 보신 내용들이 의미하는 것처럼   당시의 상황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의 기계적인 뒷수습의 상황이었습니다.   대체로 김상헌과 최명길의  발언만을  인용합니다만    병판 이성구가 제기하는 불만은  이미 전의가  완전히  상실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현실적  상황은  당시 기득권 세력이 최명길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했었고.. 혹은 후대 사람들이 최명길의 용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와는 별개의 문제이지요.   그러나 감히 여쭙건데   요즈음은 이런 것을 '실리외교'라고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저 오십보 백보일 뿐입니다.    저 역시 최명길의 목숨을 내놓은 용기있는 처신들만큼은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제 허접한 생각을 강조하고자   한 인물을 흠집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당시의 실제 상황이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라크 파병을 운운할때마다  역사적 비유로서  최명길을 도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천하제일관 산해관

img16.gif  신하들마저도 얼굴을 몰랐던 황제 2    명나라 신종에게 있어서  공석이 된 관직을 방치할 정도의 인색함은  결코 나라를 위한 근검절약이 아니었기에 더욱 큰 문제였습니다.  자기무덤 만큼은 명나라 천자들중 가장 호화롭게 건설한 사람으로 유명하니까요.  어디까지나 사사로운 이유였었던 것이지요.  솔직히 만력제때 명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그만큼 명나라가 대국이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고  역설적으로 그만큼 '명나라'가 대국으로서의 역량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만..  만주지역에서 누르하치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신종과 같은 무능력자가 천자자리에 있었기 때문임은  지극히 자명할 뿐입니다.   결국 신종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619년 사르호 전투의 결과  주도권은 누르하치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신종은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악착같이 나라를 말아먹고 비로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지요.   만력제의 비석(無字碑)에는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를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천자로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라를 망가뜨린 것은 빼고 말입니다.^^

 

 이때 國中이 大飢하여 미(米) 1두(斗)의 가격이 銀 8냥이었고  사람을 서로 잡아먹는 일도 있었다.  國中이  비록 銀兩은 많았으나 무역할 곳이 없었다. 이 때문에  銀은 천하고 모든 물가가 등귀하여 말 1두(頭)가 은 300냥, 소 1두가 은 100냥, 비단 1필에 은 150냥, 베 1필에  은 9냥이었다.』  - 1626년 6월 천총(天聰) 원년  청태종실록

 

당시 청나라에게 있어서는  조선을 통하여  명나라의 경제봉쇄로 인한   자신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조선이 명나라의 움직임에 호응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이익이 되었습니다.   특히  누르하치 시절 후금이  명나라와 대립이후   조선은  명나라의 경제봉쇄로 인한  후금경제의 어려운 숨통을  티우는데  커다란  구실을 해왔었습니다.    인조반정후  정묘호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적이라기보다   당장 이러한 경제문제가 걸려있는 실리문제였습니다.  정묘호란 당시의 만주지역은 대기근까지 겹쳐 있었던 상황이었지요.    만일  국내의 일부 이라크 파병찬성론자들이 제대로된  역사적 비유를 들고자 했었다면   최명길이 아닌   그 이전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언급해야만 했겠지요.    현재의 한국이 처한 상황과  가장  유사한 형태는 광해군 당시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최명길은 인조반정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는  소위 인목대비와 영창대군 문제와 관련한  패륜문제이고   다른 하나가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기존의 대의명분에 어긋난다는 주장아니던가요?    그럼에도 광해군을 언급 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광해군이  임기를 못채우고  쫓겨난 임금이어서  불길한 비유로  생각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남한산성 고지도

 

 제 자신은  조선시대 임금들중  광해군만큼  아까운 인물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조선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수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아까운 사람입니다.    그 자신이  무능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하여  임진왜란 현장을  지휘하면서  깨우쳤던  현실적 감각들과 안목들을  본격적으로 펴보기 전에   신하들의 손에 의하여 쫓겨났으니 말입니다.   반면에 인조는 쿠데타를 직접 기획하고 지휘까지 한 인물이지요.     비록  광해군이 패륜행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왕실의 피붙이들을  충동질하면서   왕권을 끊임없이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한 것은  당시  인조반정에  참여했었던  서인들 자신이었습니다.   또한 그들 논리대로  따진다면   조카를 죽이고  중신들을 잡아 죽인  세조야말로  용서할수 없는 패륜행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이복동생들을 죽인  태종이 한 일은 또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광해군이  백성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폭군'자를 함부로 붙인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내용을 살펴보면  대동법 시행 등  그 반대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폭군이라 한들   자신들 기득권층을 섭섭히 대접했다는 의미일 뿐이지요.   실리외교의 출발 자체가  자신들이  지니고 있었던   모든 지식의 기반들을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록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었지만   수도를 파주근방으로  옮길 생각까지 했었던  임금이  광해군이었습니다.   지금의 풍경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습니까?   

 

img16.gif  사르호(薩爾滸)전투 1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명나라의 여진통제..  즉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느슨함 틈을 이용하여  여진을 통일해 나가는 누르하치(위 사진)의 기세가  욱일승천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자,  위기를 느낀 명나라는  1614년  왜란때 조선을 도왔음을 상기(再造之恩)시키면서   여진토벌을 위한 조선 군사의  파병을 요구해 옵니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 지원은 중국대륙이 전쟁터가 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지원이었음에도  명나라는 그것을 빌미로 은혜를 갚으라고 요구했었던 것이지요.  1619년 사르호 산에서 벌어졌던  이 전투는 흔히들 47만의 조,명 연합군과 6만의 후금군이 결전을 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만,  47만이라는 수치는 당시 명군 총사령관이었던 양호가 허세를 떤 과장된 수치이고,  조선군 1만을 포함하여  대략 10만~12만정도로 보시는 것이 타당합니다.  만일 47만대 6만이라면  또다른  동양판 '롤랑의 노래'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후의 청나라도 역사서 속에서  이러한 승리를 분명히 과장했겠지요.   그래야만 더욱 위대한 승리가 되니까요.   본래 명나라는 조선에 수만명의 군사를 요구했었으나  광해군이 시간을 끈 덕분에  급한 명나라가 양보하여  그나마 1만명으로 타협이 되었던 것이지요.        

 

『 화의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적은 없었습니다. 명나라는 우리 나라에 있어서 부모의 나라입니다. 형제의 의를 맺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진년의 일은 조그마한 것까지도 황제의 힘입니다. 우리 나라가 살아서 숨쉬는 한 은혜를 잊기 어렵습니다.

지난 번 오랑캐의 형세가 크게 확장하여 경사(京師)를 핍박하고 황릉을 더럽혔습니다. 비록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전하께서는 그때에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의리상 구차하게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병력이 미약하여 정벌에 나가지 못하였지만, 차마 이런 시기에 어찌 다시 화의를 제창할수야 있겠습니까. 』
- 윤집의 주전론 「인조실록」

 

윤집이 주장하는 이 내용을 읽으시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걸핏하면 파병반대론자들을  명분론자 운운하면서  인조 당시의 주전론자들의 인식과 동급으로 몰아가기에   이야기 나온김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 드리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인 줄로만 알았었답니다.   그렇기에 이와관련한 설명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된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파병반대를 하면  조선의 주전론자들과 같은 명분론자들이고   파병을 찬성하는 것은 최명길의 실리외교를 본받는 것이라고  잘난 척 떠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윤집이 주장하는 내용을 요즈음의 한국사회내에서  강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일까요?   아직도 이해가  부족하십니까?   그럼 윤집이 주장한 내용을  현대적 언어와 명칭으로  다시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그냥  재미로 즐겨주시면 됩니다.^^   

 

img16.gif  사르호 전투 2    사르호 전투에서  명나라 패인의 결정적 원인은  전군을 4갈래로 쪼개는 바람에   숫자적 우위를 확보하고도   실제 전투에 임해서는  명군 움직임의 호흡불일치로 인하여  4갈래로 쪼갠 의미가 반감되었고  오히려 후금군대에게 숫자적으로 대등한 상황을 제공한 꼴이 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것은 각개격파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후금군에 비해  한참 뒤지는 명나라 군사 개개인의 전투역량과 함께  전장의 날씨마저도  명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었기에   시종일관 명군에게는 자못 운이 안따른 전투였었지요.  게다가 당시 명나라 장수들을 더욱 괴롭혔던 것은   장수가 전장의 상황을 걱정하기 보다는  황제에게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의 입을 더욱 걱정해야만 했었던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명군은 나름대로 열심히 분전했으나  팔기로 정예화된 후금군에게 사르호 전투에서 군사의 반을 잃게 됩니다.  사실상 명나라가 대등하게 겨루어본 마지막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를 기점으로 명나라는 만주지역의 헤게모니를 상실했을뿐 아니라  패망하는 날까지 수세적 입장에 몰리게 됩니다. 

 

 북핵문제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적은 없었습니다. 미국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부모의 나라입니다. 형제의 의를 맺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1950년의 일은 조그마한 것까지도 미국의 힘입니다. 우리 나라가 살아서 숨쉬는 한 은혜를 잊기 어렵습니다.

지난 번 북핵문제의 형세가 크게 확장하여  서울을 핍박하고 워싱턴을 더럽혔습니다. 비록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께서는 그 때에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의리상 구차하게 한국의 이익만을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국방력이 미약하여 경제봉쇄 요구에 동참하지 못하였지만,  차마 이런 시기에 어찌 다시 대북대화를 제창할수야 있겠습니까.  』
-「청와대실록(?)」

 

비록 장난스럽게 바꾸어서  적어보기는 했으되  이런식의  주장은 파병반대론자들이 강조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편의 사람들이  지금껏 즐겨온 주장들입니다.  껍데기만 슬쩍 바꾸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라크 파병을 강조할때마다   자신들이 써야 할  명분의 껍데기를   엉뚱한 상대방들에게  슬쩍  뒤집어 씌우면서까지  '실리외교'랍시고,    광해군도 아니고  최명길을 들먹거리는 것일까요?    "어쨌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라는  그것 한 가지만으로  모든 것을  쉽게  합리화시키고 싶어서입니까?    그럼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과정들 속의  무능함들이 모두 합리화 된다는 것인가요?    저는 지금껏  모든 상황들을  냉정하게 지켜 보아왔던 사람이기에  당당하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광해군이  명나라의 요청과 명나라에 보은해야만 한다는 중신들의 주장에 못이겨서  강홍립에게  군대를 딸려 보낸후   상황을 보아서  불리할 경우   후금군에게  투항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일까요?   즉  명나라를 배신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까?   실제로  강홍립은  10만의 명군과 6만의 후금군이 맞붙은  사르호 전투에서   명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살아남은  5,000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질서정연하게  후금군에게  항복을 해 버리지요.   혹여 이라크 파병 한국군이   예상과 달리 이라크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는지라   미군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위 실리라는 이름으로  강홍립의 후금군 투항과 같은   파병군 철군이라는 선택을 하게 될까...   아니면  그러한 논리를  들고 나올까... 은근히 겁이 나기 때문이었을까요?    

 

 

툭 터넣고 말씀드리건데   지금의 한국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정부의 행위가  제 아무리  잘못된 것일지라도   단지  미국의 은혜에 보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었던  인물들이  누구였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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