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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국 통신 ]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사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9-06 (수) 11:13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ㆍ추천: 0  ㆍ조회: 120      
IP: 218.xxx.61
무서운 출근길 (최낙영)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때로는 작은 일이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북가좌동 삼거리에서 연희동까지, 제 출근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갑니다. 조금 부지런을 떨면 걸어서 충분한 거리를 버스로 출근하자니 은근히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남들이 알면 손가락질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때는 스스로 변명도 잘 만들어냅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오늘은 날이 더우니까...’ 등등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며 버스에 오릅니다. 하지만 어떤 변명을 갖다 붙여도 제가 버스를 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단지 걷는 것보다는 몸이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출근 때의 일입니다. 습관처럼 버스를 탔습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버스로 다섯 정류장쯤 됩니다. 모래내 시장을 지나면 사천교 정류장입니다. 거기서 중앙차선으로 직진을 하면 연세대를 거쳐, 이대앞, 광화문 쪽으로 가는 버스들입니다. 한편 오른쪽 차선으로 빠지면 연남동을 거쳐 신촌, 마포 쪽으로 가는 버스들입니다.

 제가 탄 버스가 사천교 정류장에 정차했습니다. 두어 사람이 내리고 또 그만큼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버스가 다음 정류장으로 출발하려 앞문을 닫으려 할 때 누군가 달려와서 버스 승강대를 잡았습니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지만 단단한 몸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버스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신촌 가지요?”

 하지만 제가 타고 있는 이 버스는 중앙차로로 직진하는 버스였습니다. 기사는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손님, 이 차는 연세대 쪽으로 갑니다.”

 버스 기사가 그렇게 말을 하면 보통 사람들은 버스 번호를 잘못 보았다거나 무언가 착각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그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는 승강대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버스기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닌데...? 아닐 텐데?”

 버스기사가 다시 한 번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닌데, 아닌데... 아닐 텐데?”

 앞쪽에 앉아 있는 승객 몇이 짜증난 표정을 지었지만, 버스 기사는 더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손님, 이 버스는 신촌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신촌 쪽으로 가시려면 000번이나 ***번을 타셔야 합니다.”

 앞자리에 있던 승객들도 거들었습니다.

 “아저씨, 다른 버스 타셔야 해요.”

 그제서야 버스 승강대를 놓으면서도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닌데...? 아닌데...?”

 버스가 떠날 때까지 그는 앞문 창 너머로 버스 기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무언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허... 별사람 다 보겠네.”

 앞자리의 승객들이 혀를 찼습니다. 저 역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설마 버스 기사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노선을 운전하는 기사의 말도,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까지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는 왜 자신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자기 생각에 대한 그런 확신은 어떻게 갖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면서도 그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에 대한 의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문득 소름이 끼쳤습니다. 갑자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정원 댓글부대로 암약(?)했던 이들 중 개인의 사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닌, 그 일이 그야 말로 구국 충정이라는 확신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던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영주, 고대영, 김장겸.., 요즘 듣고 보았던 이름들이 줄줄이 떠올랐습니다. 생각에 생각이 점점 부풀어 올랐습니다. 어쩌면 버스 승강대를 잡고 ‘아닌데... 아닐 텐데’라고 했던 그에게는 어쩌면 정해진 버스 노선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내가 택한 버스는 무조건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야만 한다는, 그런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끔찍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쓸데없이 지나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꾸 편해지려고 하는 게으른 몸 때문일까요? 앞으로는 걸어서 출근해야겠습니다. 그 결심이 또 며칠이나 갈까요?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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