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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국 통신 ]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사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6-21 (수) 14:47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ㆍ추천: 0  ㆍ조회: 311      
IP: 218.xxx.74
탄핵 백일, 사불범정을 심인한다 (오인영)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딱 백일 전이었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법의 말’은 아름답고 빛나는 시(詩)였다. 정당하고도 합법적으로 역사의 기사회생을 선언한 역사의 시였다. 그에 힘입어, 사필귀정(事必歸正)은 글자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나왔고, 주권재민(主權在民)은 ‘힘없는 말’이 아니라 ‘말로 된 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주문(主文)만 빛났던 것은 아니었다. 탄핵 인용의 이유들도 두고두고 새겨둘 만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의 위배행위가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런 위헌·위법행위는 국민 신임의 배반인 동시에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리고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탄핵을 인용했던 것이다.

 “피청구인 박근혜”만 탄핵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식 정치 방식과 노선도 함께 위헌으로 탄핵된 것이었다. 더불어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정치집단도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법질서의 수호에 실패한 세력으로 탄핵되었다고 봐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를 선택한 대통령 선거 결과는 위헌적이고 수구적인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숙과 반성을 모른다. 탄핵 인용과 정권교체 이후에도 고약하고 거친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말도 안 되는 일’은 하기 어렵게 됐으니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도 내뱉어서 ‘나라다운 나라’를 오염시키고 말겠다는 것인지. 저들이 내뱉은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뻔뻔함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막말에 오염(/면역)되었나 보다,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라도 막 써보자는 심보가 생겨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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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를 흔든다고 누구나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귀를 자른다고 누구나 고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애국, 예술은 제스처에 있지 않다. 당명만 바꾼다고 해서 언행이 바르거나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

 물이 맑으면 살 수 없는 고기가 있다. 그들이 살려면 물이 맑아져서는 안 된다. 사회가 맑아지고 시민들의 생각이 밝아지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건 말건, 정부가 꾸려지건 말건, 남이 죽건 말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자들.

 말 같지도 않는 말, 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말을 쏟아내는 정치 모리배들이 있다. 그들이 정당한 대의를 반영하거나 다수의 동의를 얻었기에 그런 가당치도 않은 말을 내뱉는 게 아니다. 오직 하나, 국회의원 자리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막말을 최소한의 분별도 없이 마구잡이로(사실은 ‘마구잡이로’가 아니라 ‘마침맞게’겠지만) 보도하는 방송과 신문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망언과 무분별이 판치는 세상이 주구장창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줄었길 희망한다.

 이념문제에서든, 한미관계에서든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자들도 있다. 자기보다 더 나가면 과격하고, 자기보다 덜 나오면 겁쟁이라고 생각하는 치들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종북, 반미주의자라고 부름으로써 ‘비인간화’하는 사람들. 미워하는 사람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차별해 놔야, 죄책감 없이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일까. 이런 자기중심주의에 인권과 다양성(diversity)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은, 물론 구분해야 한다. 차이(difference)를 차별(discrimination)로 몰아서는 안 되지만 옳음과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서도 안 된다. 1+1은 2이지 3이 아니다. 그릇된 것을 차이라고 용인하거나 다양성의 이름으로 관용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것은,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이라도 대개 잘못된 것이다. 나는 네 생각과 ‘다르다’면서 ‘잘못된’ 생각을 또박또박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개혁은 위험하고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구체제에서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은 개혁적 인물을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해” 공격하는 반면에, 새로운 질서로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개혁의 잠재적 수혜자들의 지지가 약한 이유는 뭘까? 과거에 법제도를 전횡하던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눈으로 확고한 결과를 직접 보기 전에는 새로운 제도를 신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회의적 속성 때문이란다. 하여, 마키아벨리는 개혁에 성공하려면, 주도세력이 정의로운 비전에다가 그것을 실천할 역량까지도 갖춘 “무장한 예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 ‘정의 없는 힘’은 무도하고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다. 이제 근 10년 만에 시민의 힘으로 ‘정의’를 구현함직한 정부를 세웠다. 얍삽하게 정치하는 방법만 알고 정치하는 의미(공공의 정의)는 묻지도 않는 자들의 언필칭 “협치”에 연연할 이유는 없다. 저들처럼 “힘만 숭상하는 자들의 내일이 어떤 몰골일지는, 어제 똑같이 그리했던 자들의 오늘을 보면 알 수 있다.”(기억이 나지 않아 저자를 명기하지 못했다. 저자의 양해를 구합니다.) 옳고 정의로운 일을 하는 데 옳고 그른 때도 없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해본 것은 이해한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약해지면 민주주의의 빈민이 되고 만다는 통각(痛覺)과 ‘각자의 싸움을 함께’ 해본 촛불의 체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탄핵 백일, 사불범정(邪不犯正)을 심인(心印)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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