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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국 통신 ]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사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6-14 (수) 17:09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ㆍ추천: 0  ㆍ조회: 404      
IP: 218.xxx.74
문화부 장관의 조건 (이지상)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시가 한 시대의 환부를 짚어내는 진단서 같은 것이라면 노래는 바로 그 환부의 깊은 곳에서 그것을 치유해 나갈 가장 현실적인 자양분이다. 시가 다만 시대의 진단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노래를 필요로 하며 노래가 환부로 함께 곪아 들어가지 않기 위해 시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 시와 노래의 만남은 필연적이며 그것은 양자가 함께 시대의 진정한 생명으로 살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김창남-

 말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나 그 말들이 시가 되지는 못했다. 시를 필요로 하는 시대는 당연히 아프다. 그러나 시 조차 필요 없는 시대는 아픈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무지의 시대다.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다. 그 가시들은 바람처럼 유영하다 정확한 목표지점을 찾아 화살처럼 꽂힌다. 그러나 모른다. 그 가시로 인해 어느 누가 상처를 입고 썩어 들어가는 가슴을 안고 사는지를. 어떤 이의 말은 사람을 살린다고도 하는데 그런 포근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시다. 시는 언어 속에 숨은 가시의 뾰족함을 감싸는 방패다. 태생부터 방어이니 누구를 해칠 여력이 없다. 진정한 날카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잘 벼린 칼을 휘둘러 단칼에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무뎌진 화살로 상대의 환부를 두드려 새살 돋게 하는 것이다. 시를 필요로 하는 시대는 아프다고 했지만 자신이 아픈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이가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자성과 자각의 시대를 사는 이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깊어진다. 살아볼만한 시대가 된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 머리를 세고
지금은 침 발라 돈을 세지
먼 훗날엔 무얼 셀까

–김준태 “감꽃”

 시언지가영언(詩言志歌永言) -시는 말을 뜻하고 노래는 그 말을 길게 늘어뜨린 것- 이라 했으니 노래 또한 같은 기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침 발라 돈을 세는 세상의 첨병이 되어 감정의 배설물 이외에 다른 기능이 없는 노래는 마취제를 잔뜩 바른 화살이 되어 시대의 환부조차 가늠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 무기가 된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을 때 그것을 극복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예술이었다. 실제로 인구 60만의 도시 이르쿠츠크에는 100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대극장이 7개나 있었고 몰려드는 시민들로 인해 자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어느 해 겨울엔 나도 그곳에서 뮤지컬을 관람했었다. 톨스토이와 체호프로, 볼쇼이와 레드아미 코러스로, 노보시비리스크 오케스트라로 대륙을 섬세하게 읊어대는 수많은 예술가의 혼으로 배고픔을 극복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시 한 수 소설 한 구절 기억하지 못하고 유행가나 한 소절 겨우 부르며 오직 그날의 돈벌이를 위해 매진하는 우리들의 삶을 반추해보면 그 땅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주변이 온통 시 인 세상을 꿈꾼 적이 있었다. 가슴에 담아둔 시 한 구절 없다면 눈앞에 아른거리는 영화 한 장면 없다면 눈물 글썽이며 부를 노래 한 자락 없다면 그 시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며 회의를 품은 뒤였다.


바이칼 호수
사진 출처 - 필자

 지난해 말의 촛불은 온 나라를 뒤집었다. 시민들의 열망을 표출하는 공간마다 노래도 넘쳐났다. 마치 노래 없이 무슨 집회를 열 수 있냐는 듯이. 그러나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에 바쁘게 함께 했던 예술인들 중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친구는 없었다. 노래 불러달라는 요구는 많았지만 노래 값을 준다는 사람들은 없었다는 얘기다. 노래는 도구일 뿐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회적 비아냥을 그들만 감내한 꼴이다. “스케줄은 아이돌인데 벌이는 김춘삼이에요” 넉살좋은 후배가수가 넋두리 할 때면 은근히 꼬드기고 싶었다. 우리 시베리아 가자. 거기는 우리 같은 사람 절대 밥 굶기지는 않아.

 대선전 차기정부의 문화부 장관의 조건을 내게 묻는 이가 있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제2의 최고은이 생긴다면 평생 무릎 꿇고 살겠습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좋다고. 모든 것이 화살인 시대. 그 화살을 쏘고도 혹은 맞고도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이들의 가슴을 꽃 한 송이로 피어 위무해야 할 청춘이 굶어 죽는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는 자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충분하다.

 인기 아이돌의 노래 세 곡을 들을 수 있는 값이면 적어도 열 개의 시노래 향연을 펼칠 수 있다.

 자본의 화살이 깊어짐의 씨알이 되는 지점이다. 바이칼의 심연 같은 깊이 있는 시대를 살고 싶다.

* 글의 일부는 작은책 6월호 필자의 원고와 겹칩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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