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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국 통신 ]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사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6-09 (금) 15:36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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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18.xxx.74
위로와 폭력의 경계선 (강국진)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동시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은 능력과 열정이 넘치는 여성분이 하루 종일 갓난아기와 씨름해야 한다는 상황에 처하면 십중팔구 복잡 미묘한 감정에 노출될 것이다. 현모양처가 장래 희망이었던 여성분조차도 힘든 육아에 지치다보면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

 갓난아기와 씨름하다 우울증에 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듣기라도 하면 육아란 게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말로 대충 뭉갤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육아에 지친 여성에게 “나도 직장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거나 “넌 하루 종일 아가랑 있으니 복받은 줄 알아라”라고 말하는 걸 위로라고 불러야 할까 폭력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떤 이들에겐 야구 한 경기가 5시간밖에 안 걸린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또 어떤 이들에겐 야구란 ‘금수저는 금수저 자리에, 흙수저는 흙수저 자리에서 맡은 일만 하도록 하는 세계관을 반영하는 선전활동’처럼 느껴진다. 일부 삐딱한 분들이 느끼는 야구란 ‘던졌다, 쳤다, 받았다, 던졌다, 디졌다’의 무한반복에 다름 아니다. 어떤 이들에겐 축구경기가 날마다 없는 게 슬픈 일이겠지만 또 어떤 이들에겐 5000만 ‘전문가’들이 국가대표팀 감독 1년마다 모가지 날리는 국뽕경연장에 불과하다.

 어떤 분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열정적인 거리응원을 보며 한민족의 저력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에 호기심으로 거리응원 나가봤다가 하필이면 소나기 맞아서 생쥐꼴이 되고 보니 ‘내가 뭐 하러 이러고 있나’ 싶어서 관뒀다. 그 뒤로는 거리응원에 동참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겐 그 열기가 광기 비슷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좀 무서웠다.

 어떤 이들에겐 야구와 축구를 억지로 봐야 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분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에겐 축구와 야구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걸 말 그대로 일로 해야 하느라 축구와 야구가 싫어져 버렸을 수도 있다. 어떤 체육부 기자는 야구 보며 기사 쓰는 게 천직일 테고, 또 어떤 이들에겐 ‘내가 이러려고 기자됐나’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이런 분들에게 야구란 그냥 야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얼마 전부터 야구를 담당하게 되면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딱 하나다. 일주일에서 주말 빼고 닷새 가운데 최소 두 번은 야근이다. 한 번은 야구 담당 야근, 한 번은 내근 겸 야근. 역사는 두 번 반복되는데 한 번은 비극, 또 한 번은 희극이라고 했던가. 내게 야근은 두 번 반복되는데 한 번도 피곤하고 두 번은 더 피곤하다. 거기다 첫인상도 너무 안 좋았다. WBC 경기 취재가 내게 첫 야구 취재였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경기가 안 끝났다. 그리고는 졌다.

 페이스북에 야구 때문에 야근 하는 게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고 썼더니 온 동네 야구팬들이 주렁주렁 댓글을 단다. ‘너는 야구를 보면서 월급 받는구나’ ‘나도 날마다 야구 보면 소원이 없겠다’ 뭐 그런 댓글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그 분들 입장은 이해한다. 나도 그냥 집에서 두 다리 뻗고 병맥주를 홀짝거리며 야구를 보면 야구가 좀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나도 어느 야구팀 1번부터 9번 타자 이름을 줄줄 외우며 1회부터 9회까지 ‘정주행’했다. 새벽에 일어나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에 출전해 올드 트래포드를 누비는 모습을 응원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댓글을 봤을 때는 야구 보느라 너무 지쳐 있어서 싸울 기운도 없었다. 기운을 차린 뒤 그냥 페이스북 계정을 없애 버렸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다 좋지도 않고, 반대로 자신에게 싫은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다 싫지도 않다. 고기를 못 먹는 사람 앞에서 육식을 자랑하거나 육식을 강권하는 걸 우리는 ‘폭력’이라고 부른다. 담배 피우기 싫다는 사람에게 담배 연기 내뿜으며 담배 예찬해봐야 개저씨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인권의 기초란,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닐까. 세상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나한테 전도하려고 치근대기 전까지는.

 이쯤 얘기했는데도 “난 야구 좋은데” 하며 나를 질책하려는 분들이 꼭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일부러라도 최대한 삐딱하게 말해주고 싶다. “야구를 담당하기 전에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야구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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