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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국 통신 ]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사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차례씩 글을 씁니다.

작성자 인권연대
작성일 2017-05-02 (화) 18:37
홈페이지 http://www.h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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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의 정체성 (이찬수)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당은 정치적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다. 이념이나 정책들은 정당마다 다르다. 정당의 정체성도 다양하다. 정체성이란 자기를 자기되게 해준다는, 말하자면 자기동일성이다. 영어 아이덴티티(Identity)가 정체성과 동일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체성의 이름으로 동일성을 추구하는 과정은 타자를 배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차이를 차별하기도 한다. 자신을 위해 타자를 배척하거나 주변부로 몰아낸다.

 게다가 이러한 행태에 공감하는 이들, 즉 ‘공범자’가 많아지면, 공범들의 힘에 의지해 더 자신 있게 자기 밖의 타자를 차별한다. 차별과 배제가 자기 정체성의 확보에 비례한다. 국익의 이름으로 외국을 공격하고, 민족의 이름으로 이민족을 배척하며, 종교를 내세워 타종교를 배타하는 과정에 자기 정체성을 강화시켜나간다.

 가령 미국 백인의 정체성(동일성)은 흑인을 거부해왔고, 남성의 정체성(동일성)은 여성을 소외시켜왔다. 흑인을 거부하며 백인의 정체성을 확인해왔고, 여성을 차별하며 남성의 정체성을 확보해왔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영국의 이주민들이 한 동안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자기정체성(동일성)을 찾으며 모국과의 관계를 단절한 것이 이른바 미국의 독립이다. 미국적 정체성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확립되고 강화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한국을 차별하며 일본적 정체성을 확인해왔고, 한국은 피식민지 시절 일본에 저항하며 한국적 정체성을 확보해왔다. 식민과 피식민, 지배와 피지배는 현상적으로는 남을 거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외적 ‘형식’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기가 주장한다고 확립되는 게 아니다. 타자에게 동의를 받을 때 확립된다. 타자로부터 동의를 받으려면 자신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타자와 타협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타자가 동의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 개방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체성의 확립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게 된다.

 이것은 정체성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억압하며 강화되는 정체성과 해방을 위해 저항하는 정체성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들이 많고 정체성도 여럿이어야 한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다양성의 내용에도 우열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다양성이지, 권력을 잡으려는 의도와 목적을 잘 보면, 정당에도 옳고 그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자칫 아무나 존중해야 한다는 몰가치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다양성이냐를 물어야 한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되, 국민을 인간답게 하고 갈등을 조화시켜 질서를 잡아나가며, 그렇게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저항적 정체성이 요청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대선을 목전에 둔 마당에, 후보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의 ‘내용’을 판단해야 한다. 그 내용으로 ‘옥석’(玉石)을 가려야 한다. ‘옥’인지 ‘석’인지를 가르는 기준은 사람을 살리는 정책을 얼마나 입안하고 시도하느냐에 있다. 그 과정에도 가능한 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려는 따뜻한 자세가 얼마나 반영되어 있느냐에 있다. 기득권을 편들고 은근히 양극화를 누리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저항하는 자세에 있다. 그리고 저항의 과정에도 가능한 한 전체 국민을 정책의 중심에 두려는 민주적 정체성을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을 위한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이를 동일하게 살릴 수도 없다. 그렇기에 고통 받는 이, 소외된 이를 먼저 살리려는 정책을 펼칠 도리 밖에 없다. 그러는 이가 있다면 그이가 바로 ‘옥’이다.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보며 그 구조를 바꾸려는 이가 ‘옥’이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정책과 실천이 ‘옥’이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정권의 허구를 의식하며 아래로부터의 ‘촛불’을 마음에 새기는 이가 ‘옥’이다. 개인과 국가의 주체성을 당당하게 세워가되, 약한 자 앞에서는 따듯해지는 자세가 ‘옥’이다.

 이와 달리 각종 현란한 정책을 쏟아놓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은근히 활용하며 결국 자기의 기득권을 강화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석’이다. 사람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이는 ‘석’이다. 자본을 우선하고 기술에 인간이 없으면 ‘석’이다. 북한에 대한 장기적 지원과 교류가 당장의 갈등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이는 ‘석’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자기중심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싸드 배치 전략에 그저 동의하는 이는 ‘석’이다.

 대선 후보들의 각종 언술에 자기 권력의 확장을 우선하는 음험한 욕망이 들어있는지 아닌지 잘 보아야 한다. 단순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그동안 자기를 위해 살아왔는지 전체를 위해 살아왔는지, 전체 중에서도 주변을 먼저 생각했는지 어떤지를 잘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런 정치적 행위도 자기 정체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런 정체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민주적 정치 자체도 불가능하다. 정체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며, 도리어 지속적으로 세워가야 한다. 자기 주체성을 확보하며 저마다의 정체성을 유지해가야 한다. 다만 그 정체성에 타자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 자기만의 배타적 정체성에서 상생적 정체성으로 전환하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더 그렇게 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체성의 어느 한 면에 경도되지 말아야 한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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