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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

 

작성자 오창익
작성일 2016-12-28 (수) 11:45
ㆍ추천: 0  ㆍ조회: 265      
IP: 218.xxx.74
"아버지는 미치지 않았다"(경향신문 칼럼, 2015. 12. 22)
[세상읽기]“아버지는 미치지 않았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했다.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고, 새벽에 일어나 독서와 글쓰기, 운동을 즐겨했던 분인데, 이젠 아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치매환자’ 가족이 되기 전까지 ‘치매’가 단순한 병 이름인 줄로만 알았단다. 아버지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게 고약한 인권침해적인 용어라는 걸 깨달았단다. ‘치매( )’라는 병 이름에 쓰는 두 글자는 모두 미치다,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러니 ‘치매환자’는 곧 미친 환자, 어리석은 환자가 된다.

‘치매’는 여러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손상되어,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병을 일컫는다. 아픈 사람에게 그저 미쳤다거나 어리석은 바보라고 부르는 것은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는 모욕을 주는 것이다. 환자에게 일부러 모멸감을 주려는 게 아니라면, 당장 병 이름부터 고쳐야 한다.

일본에서 건너온 말을 별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정작 이 말을 만든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대만은 ‘실지증(失智症)’, 홍콩은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불린다. 나병을 한센병으로 부르는 것처럼 ‘치매’도 얼마든지 바꿔 부를 수 있을 텐데, 관련 법 개정 작업은 유야무야되었고 학계나 보건당국의 개선 노력도 없다. 노무현 정권 때의 보건복지부가 ‘치매’를 대체하기 위해 인지장애, 상실증, 인지상실증, 인지쇠약증 등의 명칭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이 고약한 용어는 지금껏 요지부동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치매’도 병이기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조기에 발견하면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고, 원인에 따라서는 완치도 가능하다. 진료를 받으면 증세가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병 이름이 어리석다, 미쳤다는 데서 멈춰있기에, 환자 자신이 ‘치매’ 증세를 밝히기 꺼리거나, 가족이 알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발병 자체를 숨기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이 학생은 ‘치매’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며, 청와대, 보건복지부, 국립치매센터, 서울시 등에 편지를 보내 용어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답변이라도 준 건 병 이름을 바꿀 권한이 없는 서울시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치매’를 앓고 있는 많은 분들이 단지 뇌 인지 장애만으로 어리석거나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할 수 없다는 게 이 학생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 준 아버지는 미치지 않았고, 어리석지도 않고, 바보도 아니며, 그냥 아픈 환자일 뿐이라고 했다.그렇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건, 그 사물의 본질적 성격을 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공자에 따르면 이름을 제대로 붙이는 게(正名) 정치의 본령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숱한 개념어들이 일본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예전에야 별 여과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세월이 훌쩍 흘러 한 세기가 넘었으니, 이제는 달리 변명할 길도 없다. 사람을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 말들은 아직도 너무 많다. 교도소나 소년원에서는 수용자나 소년범을 대상으로 ‘분류’ 작업을 한다. 각기 다른 개별 처우를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분류’는 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일이고, 사물은 일과 물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람을 일이나 물건 따위로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시 일본에서 건너온 말을 아무런 고민 없이 사용한 탓이다.

부디 눈 밝은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있다면, 이 학생처럼 반인권적이며 모욕적이고 차별적인 용어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치매관리법’부터 개정하면 그만이다.

추운 세밑이다. 역설적이지만, 춥기에 따뜻함을 나누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아파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추위마저 견딜 만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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