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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

 

작성자 오창익
작성일 2016-05-26 (목) 22:20
ㆍ추천: 0  ㆍ조회: 304      
IP: 121.xxx.51
'고속도로 통행료'(경향신문, 2015. 9. 8)
[세상읽기]고속도로 통행료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평소 고속도로는 원성의 대상이다. 길이 막혀 저속도로가 된 곳도 많고 상습 정체도 심하다. 노면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휴게소 등 부대시설이 부족한 곳도 너무 많다. 그래도 통행료는 꼬박꼬박 챙긴다. 경인고속도로는 개통된 지 47년이고, 경부고속도로는 45년이 지났다. 그동안 받은 통행료라면 건설비용은 물론 거의 영구적이랄 만큼의 유지·보수 비용까지 다 챙기고도 남을 텐데, 여태껏 통행료를 받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도로 건설 탓을 하지만, 이미 국토 대비 도로율 세계 1위의 국가가 끝도 없이 도로 건설에 집착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별 필요도 없는 고속도로를 자꾸 만들면서 그 부담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이런 평소 불만이 그날 하루만큼은 봄에 눈 녹듯 사라졌다. 느닷없는 선물 같았다.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이날 하루 동안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준 것이다. 민자 사업자의 10개 고속도로 노선도 전부 공짜였다. 정부는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번 조치의 내수 진작 효과가 1조4000여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날 하루 동안 면제해준 통행료는 141억원이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만으로 내수가 진작된 것도 아니고, 전경련 산하 연구원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도 없지만, 엄청난 효과인 것만은 사실일 게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호응은 뜨거웠고, 많은 차량이 몰린 것도 당연했다. 하루 518만대,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추석의 525만대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전국 등록차량 4대 중 1대꼴로 고속도로를 이용한 거다. 그래도 극심한 교통정체는 없었고, 소통은 원활했다. 요금소 부근에서 막히는 병목 현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도 3건뿐이었고, 사망자는 없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단박에 결정되었다. 대통령의 의지였는지,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별 준비 없이도 누군가가 결심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래된 고속도로부터라도 통행료 면제를 당장 시행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만약 어렵다면, 설과 추석 등 큰 명절 때만이라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시행하자. 임시공휴일에도 했는데, 민족 최대의 명절에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말하는 ‘사기 진작’과 ‘내수 진작’은 물론, 시민들이 고속도로에서 지체하며 허비하는 시간과 기름값 등의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명절에도 쉬지 못하는 요금소 수납 노동자들도 명절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이왕 좋은 선물을 맛보여준 만큼, 진짜 선물을 필요할 때 해주면 좋겠다. 이웃 나라 중국만 해도 큰 명절엔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준다. 1년이면 20일이나 된다. 춘제(설날)와 국경절에는 각각 일주일, 청명과 노동절에는 3일 동안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준다. 대만은 진작부터 명절 때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왔다.

한국에서 국민으로 살면서 정부로부터 대접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내 ‘법질서 확립’을 외치며, 무서운 얼굴로 주눅들게 하는 게 주로 정부의 역할이었지, 웃는 낯으로 선물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하고 고단한 삶인데, 명절 기간만이라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전부 면제함으로써 좋은 선물을 받는 기분을 느껴보게 하자. 한국도로공사와 민자 사업자의 수입은 줄겠지만, 나라 전체로는 훨씬 이익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적자가 걱정일 수 있겠지만,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기업이니 얼마간의 손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쓸모없는 고속도로 건설만 좀 신중하게 해도 얼마든지 감당하고도 남을 액수다. 좋은 선물을 받고 느끼는 국민들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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