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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

 

작성자 오창익
작성일 2015-08-11 (화) 00:27
ㆍ추천: 0  ㆍ조회: 607      
IP: 121.xxx.6
새 주교의 탄생을 축하하며(평화신문, 2015. 8. 9)
새 주교 탄생을 축하하며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잇따라 두 분의 주교가 탄생했다. 새 주교를 맞게 된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는 물론, 한국 천주교회의 경사다. 교회엔 경사지만, 주교가 된 두 분에게도 기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두 분 모두 자신이 부족하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괜한 소리가 아닐 거다. 주교란 자리가 지닌 의미가 그렇다. 늘 무거운 때론 무섭기도 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두 분께 마냥 축하만 드릴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역 교회의 사목 책임을 맡는 자리기에 흔히 영광스러운 자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상은 외로운 자리일 게다. 실무적 부담도 많고, 늘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도 따른다. 감독하는 사람의 자리, 지도하는 사람의 자리는 그래서 늘 부담스럽다.

지도자의 역할은 각별하다. 프로야구 만년 꼴찌 팀 한화 이글스. 6년 동안 5번 꼴찌였다. 이 만년 꼴찌 팀이 올해 들어 완전히 달라졌다. 모처럼 패보다 승이 많은 전적을 기록하고 있고, 질 때도 그냥 맥없이 경기를 놓치는 법이 없다. ‘마리한화’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다. 김성근 감독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취임으로 달라진 거다. 본당이나 교구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직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권위주의는 넘어서야 할 잔재지만, 권위는 중요하다. 주교라면 그에 맞는 권위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권위란 직책이나 권한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권위는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생기는 거다. 주교란 직책은 권위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오랫동안 프랑스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남다른 권위를 갖고 있었다. 피에르 신부가 선종하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피에르 신부에게 “끝없는 존경”을 보내며, “훌륭한 인물, 양심, 미덕의 화신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가톨릭 전통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프랑스지만, 피에르 신부는 늘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나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꼽혔고, ‘프랑스 양심의 상징’ ‘살아 있는 성인’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피에르 신부는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입회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사람들, 고아와 부랑인들을 위해 헌신했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엠마우스 공동체를 설립했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는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선종 직전 남긴 마지막 유언도 “인간의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허락된 짧은 순간”이었다. 그가 지닌 권위의 원천은 바로 사랑의 실천이었던 거다.

새로 주교가 된 두 분이 무엇보다 사랑의 실천에 매진해 진정으로 권위 있는 주교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대화다. 교황의 말씀처럼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자가 되면 듣는 일이 쉽지 않다. 보통의 경우 학식이 높거나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주교가 되는 탓에,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신부들은 물론, 신자들 그리고 교회 공동체 밖에 있지만, 주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주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듣되, 교구청으로 부르지 말고, 가급적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게 좋다. 견진성사처럼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그냥 가면 된다. 그게 바로 내어주는 삶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훌륭한 주교들을 많이 배출한 경험과 역사를 갖고 있다. 좋은 모범을 따라 좋은 주교, 사랑을 체현하는 주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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