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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

 

작성자 오창익
작성일 2015-08-11 (화) 00:09
ㆍ추천: 0  ㆍ조회: 529      
IP: 121.xxx.6
기억, 누구 편에 설 것인가(평화신문, 2015. 4. 26)
기억, 누구 편에 설 것인가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기억은 선택적이며 편파적이다. 모두 만족하는 기억은 없다. 객관적 기억도 없다. 탈출기는 모세의 기억이지, 파라오의 기억은 아니다. 억압에서 탈출해 해방을 체험한 사람의 기억과 억압을 강요하던 사람의 기억은 같을 리 없다. 사람에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심리적 본능이 있단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은 완전히 다르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같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니, 자신만을 비난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여긴단다. 그러니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했으니, 이제 그 일을 잊고, 과거는 과거로만 남겨야 한다고 여긴다는 거다. 반면 피해자는 가해자가 비합리적이며 무분별하고 이해되지 않는 인간이기에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신에게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여기고, 따라서 피해자인 자신은 물론, 가해자도 결코 그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는 거다.

4ㆍ16 세월호 참사에서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일종의 ‘교통사고’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젠 경제도 어렵고 여러 국정 과제도 많으니 과거의 일은 그만 잊자는 태도다. 전형적인 가해자의 입장이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는 피해자의 입장도 있다. 4ㆍ16 참사가 워낙 큰일인데도 아직도 풀리지 않는 현안이다 보니,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가해자 또는 피해자를 편들고 있다. 세월호가 ‘지겹다’는 사람들도 자신이 가해자의 편에 서 있다고는 여기지 않을 거다. 이제 그만 잊자고 했다고 가해자의 편이라 몰아붙인다며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기억을 갖는가에 따라 누구 편인지도 달라진다. 한마디로 잊고 싶으면 가해자, 기억하고 싶으면 피해자의 편에 서는 거다.

눈곱만큼도 가해자 편에 설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게 되는 가장 큰 까닭은 우리 사회가 대략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장으로 분열되어 있는 탓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지지하거나 선호하는 정당과 정치인, 또는 언론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 사는 건 녹록지 않다. 대개 어딘가 속해 있어야 편안함을 느낀다. 지연, 학연, 혈연 따위가 맹위를 떨치고, 동창회, 향우회 등이 많은 까닭도 여기 있다. 모진 세월을 겪은 탓인지, 사람들은 소속이 없으면 금세 불안해진다. 이런 소속감에는 견해도 포함된다. 특정 그룹 안에서 다른 견해를 가지면 바보 취급을 받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사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소비심리도 마찬가지다.

개인으로 살아 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탓인지, 유치한 구전홍보단 수준의 말 몇 마디에도 금세 자기 머리와 가슴을 넘겨 버리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야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이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믿을 만한 사람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일종의 특혜를 일상적으로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교회 가르침은 이럴 경우 단호하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 약자, 피해자의 편에 서라고 요구한다. 교황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단테도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사람에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군종교구를 포함한 모든 교구가 4ㆍ16 세월호 참사 1주년에 즈음해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여기에 정치적 유불리, 진보나 보수의 구분 따위가 낄 자리는 없었다. 그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기억하기, 곧 피해자 편들기가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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