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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흥 초기 이슬람 이해하기 : 623년 메디나 헌장, 무슬림과 유대인 공존 협정(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2-17 10:57
조회
1757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메디나 오아시스 지역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던 카즈라즈 부족과 아우스 부족은 622년 양측 간에 수자원 확보 문제와 연루된 유혈 분쟁의 조정자로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카에서 메디나(야스립: 이슬람 시대 이전 명칭, 본고는 편의상 메디나로 통일)로 초대하였다. 이 두 부족은 아랍인들이라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들이 갖고 있던 종교는 무엇이었을까?


 메디나로 이주하기 이전 메카에서 활동하던 예언자 무함마드는 부유한 상인으로 다신교인이던 꾸라이시 부족의 우마이야가문 수장 아부 수피얀 등에게 탄압을 받고 있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꾸라이시 부족의 하심가문 출신이었다. 당시 같은 부족 내에서 개인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신교인, 유대인, 기독교인, 조로아스터교인, 마니교인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공존하던 메카에서 다신교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지배권을 행사했다.


 반면, 메디나는 유대인들의 지배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유대교는 무함마드가 등장하기 2세기 전에 이미 메디나에서 잘 확립되어 있었고,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유대인들이 메디나에 거주하였다. 이 유대인들은 경우에 따라 부족 단위로 오아시스 농업, 금은 세공업, 무역업 등 서로 다른 직업을 가졌고, 아라비아반도에서 예언자의 출현 등에 관한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다. 이 유대인들은 아랍어 사용자들이었고, 아랍 이름을 가졌다. 다양한 문서들에 따르면, 메디나의 각 부족들은 하나의 종교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 기독교인, 다신교도 등 다양한 종교인들을 포함한다고 알려져 있다. 메디나는 유대교의 영향력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각 부족 내에 다양한 종교인들이 공존하는 사회였다.


 메디나 헌장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주도하는 메카 출신의 이주민 무슬림들과 메디나 주민들 사이에서 체결된 공존 협정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이듬해인 623년에 만들어졌다. 이 헌장은 무슬림들과 다양한 메디나 주민들, 특히 유대인들이 하나의 공동체(국가)를 결성하도록 규정하였으며,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및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하였다.


 다음은 메디나 헌장의 주요 내용이다.


메디나 헌장


자율적인 유대인 공동체; 무슬림과 유대인은 각각의 종교와 경제권을 가진다.

유대인의 권리: 유대인들은 사회적, 법률적, 경제적으로 무슬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유대인과 무슬림 동맹: 유대인의 적들은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과 동맹한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자율적인 다종교 공동체: 유대인 외에도 이 공동체에 포함된 다른 종교인들도 무슬림과 정치 및 문화에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

전사 공동체: 외부인들과의 관계는 모두 전쟁에 참가하거나 완전히 평화 상태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전쟁에서 메디나의 주민들은 모두 같은 편. 이 조약에 서명한 자들은 메디나가 공격을 받을 경우에 서로 도와야만 한다.

무함마드의 위상: 무함마드의 허락 없이 전쟁을 할 수 없다.

전쟁 비용: 유대인들은 유대인들 스스로 전쟁 비용을 부담하고, 무슬림들도 스스로 전쟁 비용을 부담한다.
이 공동체 구성원 중 누가 공격을 당하면 다른 구성원이 도와야만 한다. 유대인들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무슬림들에게 전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메카의 꾸라이시: 적들인 메카의 꾸라이시와 그들의 동맹은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다.
꾸라이시 상인들은 보호를 받거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꾸라이시 상인들은 메디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돕는다.

9개 부족의 유대인들 명시: 아우프 부족의 유대인들, 낫자르 부족의 유대인들, 하리스 부족의 유대인들, 사이다 부족의 유대인들, 자샴 부족의 유대인들, 아우스 부족의 유대인들, 싸흘라바 부족의 유대인들, 주프나 부족의 유대인들, 샤트비아 부족의 유대인들은 무슬림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종교가 있고, 무슬림들에게는 그들의 종교가 있으며, 이 원칙은 유대인들의 후원자들과 유대인의 친구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악한 행동이나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스스로와 가족에게 악행을 불러오기 때문에 여기서 제외된다.

메디나는 성지: 이 헌장에 나오는 주민들에게 메디나 안은 성지다.

사진 출처 - 구글


 메디나 헌장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디나로 초대한 두 부족인 카즈라즈와 아우스 부족을 포함하여 9개 부족(아우프, 낫자르, 하리스, 사이다, 자샴, 아우스, 싸흘라바, 주프나, 샤트비아) 유대인들에 대해서 동맹관계를 강조하였다. 낫자르 부족, 하리스 부족, 사이다 부족은 더 큰 규모의 카즈라즈 부족을 구성한다. 이 헌장은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규정하면서 다른 주민들에 대해서는 유대인들과 가까운 친분관계가 있으면, 유대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명시하였다. 따라서 이 공동체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다종교 공동체이다.


 또한 이 공동체는 전사 공동체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무슬림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유대인들일지라도 적들과 내통하거나 그들 편에 서면,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다. 실제로 624년 메카와의 전쟁에서 메카의 꾸라이시 적들 편에 섰던 일부 유대인들이 메디나에서 추방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많은 자료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불화로 몰아감으로써 종교 간 충돌로 결론 내는 경향이 있다.


 이슬람이 출현하기 이전인 5세기 후반 아브라함의 순수한 일신교 신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무함마드의 증조부 하심 빈 압드 마나프(하심 가문을 세운 시조다. 464-497년)는 증조모 살마와 함께 메디나에 거주하였다. 이 증조모 살마는 카즈라즈-낫자르 부족 출신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조부 사이바 빈 하심(497-578)은 메디나에서 이 증조부모, 하심과 살마의 아들로 태어나 메카로 이주하였고, 카바 신전의 잠잠 우물을 발견하여 관리하였다. 특히 그는 유복자로 태어난 무함마드를 키웠다. 이러한 사실은 무함마드가 무슬림 예언자로 우뚝 서기전에 일신교, 메디나 및 카즈라즈-낫자르 부족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언자가 된 이후 무함마드는 622년 메디나로 이주하면서 카즈라즈-낫자르 부족과 함께 거주하였고, 예언자의 모스크가 카즈라즈-낫자르 부족의 마당에 세워졌다. 또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들은 카즈라즈-사이다 부족이 소유한 건물인 사끼파에서 아부 바크르를 무함마드를 잇는 후계자인 제 1대 칼리파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이 카즈라즈 부족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디나로 초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메디나에서 정착하여 활동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후 이 부족은 무슬림으로 개종하였으며, 무함마드 사후에도 무슬림들의 정복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메디나 헌장 속에 나타나는 무슬림들은 각 부족 내 유대인들과 매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고, 종교나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하거나 분쟁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