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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나는 중독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11 16:52
조회
62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자신을 의식한다. 이를 두고서 심리학에서는 “자의식”이라고 하고, 철학에서는 “자기의식”이라고 한다. 자기를 의식하게 되면, 인식 관계 즉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의 관계에서, 내가 둘로 나뉜다. 마치 거울을 볼 때처럼, 나를 보고 있는 나와 내가 보고 있는 나로 나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말을 “나는 나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진정으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


 데카르트가 활동했던 시대는, 비록 각자 신을 자기 요령껏 다르게 해석하고 활용했을지라도, 신이 사람들의 생각을 온통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이 사람이 되어 나타난 인물이 예수라 생각했고, 그 예수가 머리가 되어 거대한 하나의 몸인 교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그 교회에 속함으로써 내가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나는 교회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알게 모르게 생각했음이다. 그런데, 데카르트라는 인물이 나타나 “나는 나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감히 해버렸으니, 시대 전체가 크게 요동치게 된 것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고, 성당이나 교회당에 함께 모여 미사 또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저 자신을 생각할 알 줄 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데 교회가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내놓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이런 탓에 당시 교황청은 데카르트의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다.


 데카르트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저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이것저것을 요모조모 생각하는 일에 탁월했다. 기상 시간이나 취침시간 등이 전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예사로 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기 일쑤였다. 그는 생각함에 중독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초청을 받아 여왕을 비롯한 왕가에 철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문제는 궁정의 매사가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데카르트라고 해서 이를 어길 수는 없었다. 이에 억지로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무규칙에 습관화된 그의 몸은 그 나름의 리듬을 잃어버렸고, 그 스트레스에 면역기능이 약해져 결국 독감에 걸리고 독감이 폐렴으로 전화되어 54세에 사망했다.


2.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다. 돌연변이를 통해 생물 종이 진화하듯이 열심히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개념 미술가라고 할 수 있는 바바라 크루거는 1987년에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의 회화 작품에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는 글을 크게 써넣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쇼핑으로써 인간을 얼마나 헤어나지 못하게 중독시키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오늘날 홈쇼핑 중독으로 변환되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더군다나 내가 나를 생각하지 않으면 도대체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음을 데카르트가 역설 내지는 고백했다면, 바바라 크루거는 이놈의 자본주의 세상은 내가 쇼핑하지 않으면 도대체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몰아붙인다는 사실을 폭로 내지는 역설한 것이다.


3. 나는 나를 스스로 보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바바라 크루거가 자본주의적인 쇼핑 중독을 폭로한 지 벌써 30년도 더 지났다. 이제는 무엇을 하지 않으면 도대체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고 여기는가? “나는 페이스북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또는 “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두드린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람들 대다수가 SNS 플랫폼을 드나들면서 그 다양한 기능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착오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혀 세상에서 완전히 쫓겨나 버린다는 불안에 시달리다 못해 공포감에 휘둘리는 것 같다. 어쩌다가 집을 나서 이미 지하철을 탔는데, 아차!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순식간에 불안감이 밀려온다. 마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 것 같고, 오늘 하루가 완전히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듯하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것만 같고, 거래처가 모두 달아날 것만 같은 황망한 상태가 되고 만다. “나는 내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심중한 사태가 실감 나는 장면이다.


 나는 1989년에 마크 포스터(Mark Poster, 1941∼2012)가 쓴 『푸코와 마르크스주의(Foucault, Marxism, and History: Mode of Production Versus Mode of Information)』라는 책을 민맥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간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 포스터는 사회의 근본 구조가 생산양식에서 정보 양식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를 예로 들어, 신용카드로써 대금을 계산함으로 우리 모두 자신의 정보를 알아서 어딘가에 일일이 보고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이 책을 출간한 1985년 당시에는 대중적인 정보장치가 겨우 신용카드뿐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산 것은 1988년이었다. 그땐 아직 ‘www.’ 즉 ‘world wide web’이라는 탁월한 인터넷 기술도 없었고, 초고속정보도로망을 깔 수 있는 광섬유 기술도 없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날엔 스마트폰이라는 마치 괴물과 같은, 크기에 비해 어마어마한 정보장치가 전 세계인들의 손바닥을 뒤덮었다. 게다가 완전히 무선 인터넷 통신이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던 사실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확진자가 한 명 생기면, 그가 그동안 어디에서 어디를 거쳐 어디로 움직였는가를 여지없이 밝혀내어 그가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것이라 예상되는 곳을 지목해서 그날 그 시간에 그곳을 드나든 사람들을 찾아낸다. 스마트폰 덕분 또는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10월 3일 광화문 모임을 독려하는 포스터에 “핸드폰 끄고 모여!”라고 외치기도 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 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이제 “나는 나의 행동을 빅 데이터에 보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첨단기술에서 핵심은 수없이 많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 통신 기술이다. 음성,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 인간의 모든 인식 형태가 무선 인터넷을 통해 전자파로 바뀌도록 하고, 이어서 이 전자파가 0/1 즉 5v 전압에 의한 on/off라는 이진법 디지털로 바뀌어 저장되도록 한다. 그런 뒤 필요에 따라 실시간 또는 지연된 시간에 맞추어 다시 전자파로 바뀌도록 하고, 그 전자파가 다시 음성,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으로 바뀌어 전달되도록 한다.


 인간의 인식뿐만 아니라, 사물 인터넷 기술을 통해 사물들이 서로 이러한 각종 형태의 정보를 주고받는다. 여기에 이제 바야흐로 A.I. 기술이 함께 작동함으로써 그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인식 영역이라 여겨진 음성, 텍스트, 사진, 동영상을 인간보다 훨씬 더 미세하고 정교하고 정확하고 빠르게 만들고 전달하고 해석하여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아직은 이러한 A.I. 로봇에 의한 정보들이 인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진 출처 - freepik


 이 기술적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애플리케이션(앱)이 개발되어 수시로 각자의 스마트폰에 장착되기도 하고 삭제되기도 하는 등 해서 화려한 개개 기능들을 발휘한다. 그럼으로써 음성,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을 자기 취향 또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편집, 변형, 조작, 복사, 호환 등을 거쳐 수십억의 지구인들에게서 생산되고 전달되고 소비되도록 한다. 무한에 가까운 그 모든 내용은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거대한 중앙정보시스템의 무한정한 데이터 저장고에 남김없이 쌓인다. 온 지구인 각자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에는 정보를 받고 보낼 수 있는 각기 고유한 주파수의 전자파가 따로따로 할당되어 있다. ― 사물 인터넷의 기술에는 사물들끼리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아야 하기에, 그 사물들 각각에도 고유한 주파수의 전자파가 할당되어 있다. ― 그래서 각자가 인터넷의 어느 사이트를 방문했거나 그 사이트에서 어느 특정한 아이템을 클릭해서 검색했거나 내려받거나 한 것, 그리고 지인들이나 불특정한 상대와 주고받은 내용, 그러니까 댓글이나 ‘좋아요’ 또는 ‘구독’ 또는 ‘팔로업’ 등을 클릭한 것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자판이나 마우스를 움직인 일체의 것들은 각자에게 할당된 고유한 주파수를 주소로 해서 빅 데이터에서 이미 늘 개인별로 분류되어 확실하게 저장된다. 그리고 누군가 또는 대체로 누군가를 대신하는 자동시스템이 필요한 사항을 빅 데이터에 요청하면 그 필요한 사항이 누구에 관한 어떤 것이 되었건 또는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 관한 어떤 것이 되었건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는 소프트웨어 로봇인 검색 엔진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속도로 관련 내용을 찾아내어 제공한다. 이에 어떤 물질 상품이나 서비스 상품이건 간에 그것을 욕망하리라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마치 정밀한 미사일 폭탄이 필요한 탄착지점에 정확하게 가닿듯이, 수시로 반복해서 광고 정보를 보내어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예상 소비자들은 이미 그동안의 인터넷 활동을 통해 스스로 저 자신이 어떤 욕망의 존재인가를 탈탈 털어 보였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 그러한 원치 않는 광고의 공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당연히 탁월한 해킹 실력을 갖춘 자들이 나타나 온갖 도적질을 일삼아 이익을 보는가 하면, 그 반대로 암호 기술을 통한 보안 시스템의 개발이 엄청난 이윤을 올린다.


4. 나는 중독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결국에는 한 마디로 중독이다. 즉, 기술중독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가상 세계에의 중독이다. 점점 더 직접 만나 보고 만지고 싶은 욕망이 줄어든다. 그래서 한편으로 오히려 산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텃밭을 가꾸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고,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인터넷 가상 세계에의 중독이 얼마나 심한가를 반증할 뿐이다.


 흡연, 음주, 도박, 마약, 음식 등에 의한 중독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 중독들에 대해서는 물론 무조건 제대로 성과를 나타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러모로 방어책들을 구사했고, 적어도 그 나름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온 지구인들을 끌어당겨 푹 빠지게 만든 이 인터넷 가상 세계에의 중독은 좀처럼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제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내걸고서 디지털-A.I.를 중심으로 한 고도 첨단기술들을 둘러싼 격렬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외치는 상황이 전반적인 현실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서 당신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 하고 물을 것 이다. 필자로서는 뚜렷한 대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속내를 드러내어 말한다면, “나는 만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목에 걸고서 길을 걸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특히 어린 시절의 학교 교육이 인터넷 교육 대신에 지금 여기에서 육중하게 물질적으로 다가오는 이 모든 아름다운 자연들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기르며 함께 사는 법을 더 힘쓰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코트라이트가 쓴 『중독의 시대』(이시은 옮김, Connecting, 2020)을 읽은 탓이다. 코트라이트는 이 책에서 “스마트폰의 주된 위험은 개인적 대화, 수면, 운전, 공부, 사색, 운동, 일로부터 끊임없이 주의가 분산되는 것이다. 이래서는 친밀감, 건강, 안전, 지식, 창의성, 전문성, 사회적으로 구성된 몰입 상태를 달성하거나 유지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집에서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량을 제한하며 가족 식사 때 자녀들이 책과 역사에 관해 토론하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아울러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