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뭔가 불길하다(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01 17:02
조회
779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불길한 사태들이 줄을 잇고 있다. 죽음의 불안과 공포로 유례없는 경제적 재앙을 몰고 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위성 정당들의 등장으로 조삼모사 국민적 사기행각이 되고 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총선, 첨단 뉴미디어를 악용한 대대적인 성 착취 동영상 n번방 사건 등이 국민 모두의 심정을 한껏 짓밟는다. 일련의 사건들이, 주어진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인격적 감정의 방어선을 여지없이 뚫고 들어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신천지 운운하는 30만 명에 달하는 반사회적 · 비상식적인 거대한 종교 집단의 존재가 드러나고, 실제의 성 착취 동영상을 즐기면서 26만 명에 이르는 가학적 정신병적 증상의 이른바 ‘n번방 회원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들과 함께 묶어 거론할 수는 없지만, 아울러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 알 수 없는 국회의원 선거와 후보 공천을 둘러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랬다저랬다 원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전투구의 양상이 특히 제1야당을 중심으로 격화되어 국민의 신성한 정치 참여권인 투표권을 농락하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련의 사태들이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연발한 것이다. 게다가 현직 검찰총장의 장모라는 인물이 수백억의 은행 잔액 증명서를 위조한 행위로 공소시효를 겨우 며칠 앞두고 뒤늦게 기소되었다. 고소에도 불구하고 수개월 동안 전혀 미동도 하지 않다가 검찰은 언론의 강인한 보도에 밀려 뒤늦게 소환 조사하고 울며 겨자 먹듯이 공소시효 만기를 앞두고 막판에 기소했다. 이러한 검찰의 모습은 불과 몇 개월 전 검찰의 수사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강제 압수수색과 조사로 전국을 들끓게 한 ‘조국 사태’에서의 검찰의 모습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중첩됨으로써 비극적인 희극이 되었다.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검찰총장 장모 사태’는 공권력 행사의 자의성과 정당성을 둘러싸고서 사회정치적인 담론을 들끓게 했을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의료인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모범 운운할 정도로 국민 공동성을 발휘해 대처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조차 여전히 준동하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느라 전 국민의 일상적인 삶이 전면 중단되다시피해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위안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불안과 공포, 허탈감과 무력감, 원한과 분노, 자탄과 자괴감 등이 뒤범벅되어 집단 전체로 확산하면서 각자의 개성적인 삶을 유지하는 감정의 인격적 방어선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 사회의 하부가 어떤 괴이한 욕망으로 어떻게 조성되어 흘러가고 있었는가, 흔히 하는 말로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영생 운운하는 생명욕이 종교라는 왜곡된 탈을 쓰고 하부의 집단적 무의식을 파시즘적인 방식으로 암암리에 분출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미성년의 여자아이들을 오히려 선호하면서 악마적으로 돌변한 성욕을 채우기 위한 집단적인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다. 최첨단의 복합동영상 기술 매체가 주는 편의를 십분 활용하여 공갈과 협박의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성 착취를 수십 만의 ‘멀쩡한’ 인간들이 경쟁하듯 흥분의 먹이로 삼았던 게다. 이러한 사회 하부의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집단 무의식의 발호를 거울삼아 사회의 최상부를 점하고 있는 정치 권력자들의 집단 무의식의 모습이 무슨 유령처럼 비치기조차 한다면, 사회 전체가 비극적인 운명을 실현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2.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지만, 그런 인간들이 수십 만에 이른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하고, 나 자신 역시 그런 근본에서 출발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력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저 인간은 혹시 코로나 감염자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신천지 교도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n번방을 드나드는 자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인간이 아닌 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역병 바이러스처럼 암암리에 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침내 ‘나 역시 얼마든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저 인간일 수 있다.’ 하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저들과 다르다고 분명하게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나도 얼마든지 악하거나, 악한 쪽으로 욕망을 몰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숨겨져 있고 노골적으로 드러나 실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미스럽기 짝이 없는 악의 폭력이 집단을 통해 대대적으로 실현되면, 그 기화로 숨겨져 있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예감에 불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저들, 아니 저것들을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들로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아울러 저놈들, 저것들의 불길함이 나에게 옮겨붙으면 나 역시 아예 불길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바이러스에 빗대게 된다. 바이러스는 비록 자연이긴 하나 나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악의 폭력을 나에게 행사한다. 정말이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겨붙도록 하는 수단이 된다. 불길한 존재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수단인 나도 덩달아 불길한 존재가 된다. 우연의 주사위가 짝을 맞추게 되면 나도 자칫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나도 언제든지 남에게 불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속에 불길함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소질이 있음을 뜻한다. 더군다나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도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내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기침과 발열과 숨 가쁨의 증상을 보이면, 내 속에 숨겨져 있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바이러스가 노골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자연적인 폭력에 전염되면 안 되듯이, 사회적인 악의 인위적인 폭력에 전염되면 안 된다.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전염된 자를 나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그래서 ‘저 사람이 전염된 자다. 저 사람을 격리해야 한다.’라고 크게 외쳐야 한다. 그리하여 전염된 사람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하고 최대한 힘을 모아 치료해야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어느 곳에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곳을 폐쇄하고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최대한 샅샅이 뒤져 접촉자들을 검진하고, 결과에 따라 격리조치와 치료를 해 나간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두에 서서 총지휘를 하다시피 하면서 말 그대로 발본색원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어쨌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단 한 명에게라도 들러붙지 못하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국민 대부분은 이러한 국가의 노력에 최대한 협조함으로써 바이러스가 가하는 자연적인 악의 폭력을 근절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방역 및 의료 체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사재기 등이 전혀 없는 합리적인 국민으로 칭송을 얻고 있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n번방 성 착취 사건이 드러났다. 그러자 청와대 민원 게시판에 이른바 ‘박사방’의 운영자와 참여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신상 공개를 요청하는 500만 명에 달하는 민원이 순식간에 쇄도했다. 성인에 속한 약 1/6의 사람들이 청원을 했으니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주모자뿐만 아니라 26만 명에 달하는 유료 이용자들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이 2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많은 국민이 이번 성 착취 동영상의 불법적인 촬영과 유포의 범죄 유형이 악질적이고 유료 가입자들의 의사가 적극적이라고 판단했고 그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 주무장관, 국회의원들, 여성단체들, 관련 범죄 분석 전문가들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관용의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고, 경찰과 검찰은 이에 즉각 호응하고 나섰다. ‘조주빈’이라는 주모자의 이름과 얼굴 및 신상이 공개되었고, 검찰에 의해 12,000쪽에 달하는 수사기록물이 즉각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사진 출처 - freepik


3.
 성 문제에 이렇게 ‘폭넓게, 아주 민감하게, 모두가’ 반응한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반응 자체가 나로서는 충격이다. 충격적이라고 해서 잘못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에 뭔가 독특한 원리와 그에 따른 실제가 작동하는 것 아닐까, 하는 묘한 불안을 수반한 궁금함이 크게 앞선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자연의 폭력 사태와 n번방 성 착취 동영상 촬영과 유포에 의한 인위적인 폭력 사태는 뉴스의 머리를 앞다투다시피 하면서 심지어 며칠 남지 않은 총선에 관련한 소식들을 뒤로 밀어내고 있다. 앞의 사태는 생명에 대한 자연의 폭력이고, 뒤의 사태는 성에 대한 인위의 폭력이다. 생명과 성은 워낙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이 생겨날 수 없고, 생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이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에 대한 반응은 성의 위협에 대한 반응과 연결된다. 생명을 천시하면 성도 천시된다. 전쟁이 일어나 생명을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성 역시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생명이 고급스럽게 한껏 발휘되면, 그에 따라 성도 고급스럽다 못해 신성해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마침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인식이 전국적인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확산하는 와중에, 공갈과 협박 및 회유를 통해 강압적으로 성을 험악하게 노출하도록 하는 자들과 그러한 노출이 폭력적인 착취에 의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폭력적인 착취에 의한 것이기에 오히려 탐닉하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성을 천박한 수준으로 끌어내려 파괴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명과 성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본능적일 정도로 암암리에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인식을 실감하는 상황에서 성을 크게 집단으로 전락시킨 자들을 적발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들이 자행한 성폭력의 악행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중하게 다가와 견딜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생명에 빗댄 성 착취의 폭력 사태에 대한 이러한 대대적인 반응을 보면서 왠지 불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전락해버린 성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한 절망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런 불가능성이 첨단의 자본주의적인 기술 문명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차피 자본주의 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는 나로서 그러한 공모에 미필적으로 이미 가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범죄자들을 인지하여 조사하고 재판에 넘겨 처벌을 책임진 공권력을 담당한 자들을 믿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일거하여 직접 범죄자들을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까지 처벌하자고 하는 것이,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에 의해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 감염된 자들을 철저히 격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그들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와 무관한 자임을 스스로 확신하고자 하듯이, 그들 자신에게 숨겨져 있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뭔가가 현실화되지 못하도록 하려는 무의식적인 심사가 강화되면서 분노한 나머지 그렇게 대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