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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구속’에 대한 오해(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15 12:01
조회
224

이 윤/ 경찰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나만 그렇게 오해했는지 몰라도 고등학교 시절 국민윤리 시간에 이 글귀를 보았을 때 ‘인간은 생각을 해야만 의미 있게 산다는 말인가? 건방진 말을 한 사람이군’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나중에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다스베이더가 ‘내가 네 애비다’라고 말하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오답을 정답으로 알고 산 세월에 비례한 충격이었다. 아마 아직도 잘못 이해한 상태로 살고 계신 분도 많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하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 일신상의 문제가 되면 언제까지나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그 중 하나가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수사기관의 ‘구속’이다. 구속은 법에 의해 권한이 부여된 강제수사 중 가장 강력하다. 평소에는 구속이 무슨 뜻인지 왜 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 수 있지만, 나 자신이 구속된다면 갑자기 팔이나 다리 하나가 잘라진 것처럼 인생 일부가 무너짐을 느낄 것이다. 몇 달 전 친척분의 아들이 친구와 싸워서 상대가 다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혹시 구속이 될까봐 전전긍긍하시기에 구속까지 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어떻게든 구속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 구속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잘못으로 구속이 되더라도 엄청난 일인데, 내가 잘못이 없는데도 또는 잘못한 것은 있지만 구속까지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구속되어 가족과 격리되고 직장도 갈 수 없게 된다면 인생 막장 느낌에다가 억울함까지 추가될 것이다.


구속의 이유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재판 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형벌권이 원활하게 집행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재판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재판 이후에 형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죄 없는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당사자의 방어권을 제한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무죄판결을 받는 것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범죄혐의가 상당한 정도로 입증된 사람만이 구속의 대상이 된다. 즉 구속의 요건 중 ‘혐의의 입증’이라고 하는 요건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고, 피의자가 도망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야만 구속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필요적 고려사유로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 재범 위험성이 있지만 ‘고려’사유일 뿐이고 구속을 시키려면 결국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 수사를 직접 하였던 경험과 지금도 경찰서에서 영장심사관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의 원래 취지와 실제 구속을 다루는 형사사법체계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구속이 처벌이라는 오해
 가장 큰 괴리감은 본래 목적과 달리 구속 자체를 형벌권 행사의 일부로 본다는 것이다.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저런 사람을 구속하지 않고 놓아주면 피해자들이 억울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마치 피의자가 무죄판결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러나 앞에 설명했듯이 구속은 재판에 피고인을 출석시키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형벌은 아니다. 나중에 유죄판결을 받으면 형을 선고받고 죗값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오해를 한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아마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할 경우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그 결과가 징역형이나 금고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범죄자에 대해 구속을 하지 않으면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낮고, 구속이 되어야만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사람들은 구속에 형벌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매일경제 뉴스에 의하면 검찰의 구속기소 비율은 감소하는데 법원의 법정구속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앞으로는 이런 오해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죄 지은 놈은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오해는 ‘죄 지은 놈은 구속된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죄 지은 사람들이 다 구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 명제는 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위 명제의 역인 ‘구속된 놈은 죄 지은 놈’도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죄를 지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단정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무죄추정의 원칙) 뒤의 명제가 꼭 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일로 인해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접하면 일단 그 사람의 죄가 인정되었다고 믿는다. 이후 재판에서 그 사람이 무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잘 기사화되지도 않거니와 기사가 나오더라도 사람들은 구속될 때만큼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의 구조 방기를 폭로하여 해경청장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던 홍가혜씨는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사를 잘 못해서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는 오해
 ‘구속된 놈은 죄 지은 놈’이라는 오해로부터 다시 파생되는 오해는 수사기관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사람들은 수사기관이 수사를 잘 못해서 죄를 인정받지 못하였거나,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어서 기각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여부는 수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라든지 범인임이 인정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수사를 잘 해서 모든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입증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주거부정이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해주지 않는다. 반대로 홍가혜씨 사례처럼 구속 당시에 범죄혐의가 상당하여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하더라도 재판에 의해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 영장발부를 위한 법원의 심사는 정식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수사를 잘 못하였다거나 수사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범죄혐의가 미처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수사기관은 최소한 그 부분만큼은 많은 검토를 거치므로 빈번한 일은 아니다.


수사를 잘 하면 구속을 잘 시킨다는 오해
 앞의 오해를 뒤집어 생각하면 수사를 잘 해야 구속을 잘 시킨다는 인식도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없어졌지만 예전 경찰에서는 특진 등 형사활동실적을 평가할 때 예를 들면 구속은 10점, 불구속은 2점과 같은 기준을 적용했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구속을 시켜 점수를 잘 받으려 했었다. 이런 기준은 수사를 잘 해야 구속을 시킬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증거수집을 잘 하고, 사건을 면밀하게 잘 검토하고, 피의자를 잘 신문해서 범죄에 대한 시인을 받으면 당연히 구속이 될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사를 잘 해도 피의자에게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 피해자 등에게 가해를 가할 우려, 재범을 할 우려가 없다면 구속을 하지 않는 것이 구속의 원래 취지에 맞다. 그것이 불구속재판의 원칙이다. 지금은 경찰에서 위와 같은 실적평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수사관들은 부서와 개인의 성과평가나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 힘들게 수사한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의자를 구속한 사건이 수사관에게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이라는 결과만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수사관들이 구속영장신청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런 기준은 수사는 열심히 하였지만 구속까지는 시키지 않은 수사관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하다. 관리자들이 구속이라는 결과보다 수사의 과정 자체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이런 경향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누가 일을 잘 하였는지에 대한 완벽한 평가방법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의 성과에 대해 단순히 구속시킨 숫자로만 평가하는 것은 구속 많이 시킨 수사관이 일을 잘한다는 오해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20년 전 이야기지만 재산범의 경우 피해액 2천만 원 이상, 상해의 경우 전치 3주 이상이면 피의자 구속여부에 대하여 검사에게 지휘를 받으라는 기준이 있었다. 이런 기준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공식적인 것도 아니다. 위 기준 때문에 범죄로 인한 피해정도가 크면 다른 구속사유가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검사에게 사건을 보내 구속을 해야 할 것인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절차가 귀찮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보이는 피의자에 대해서 검사가 내 생각과 다르게 피해정도가 크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라는 지휘를 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데 아직도 이와 유사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 5월 1일자 세계일보 기사에 의하면 대검찰청 검찰미래위원회가 검찰의 구형과 구속 기준을 공개하라고 권고했으며, 기준의 비공개로 인해 검찰은 폐쇄적이고 자의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한다. 또 법조브로커 활동 및 ‘유전무죄’의 사법 불신을 키우는 데 검찰의 ‘깜깜이’ 사건처리가 원인이었다는 것이 미래위의 판단이라고 하였다. 위 비공개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예전과 같이 구체적인 피해정도가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면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예비재판처럼 될 수 있고, 경찰 수사관들로 하여금 피해정도가 큰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한다는 잘못된 태도를 갖게 할 수 있음이 우려된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례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구속이 되었고, 형사소송법상 구속의 필요적 고려사유에도 ‘범죄의 중대성’이 포함되어 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높은 처단형을 받을 것이 예상되어 도주할 가능성이 높으니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의 범죄행위가 중대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 경찰 수사관들도 잘 모르고 있다. 모든 범죄사건에 기계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기준이 있다면 공개하여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 그보다는 구속의 본래 취지에 맞게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도주하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명확하지 않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차원에서 합당할 것이다.


구속을 수사의 도구로 여기는 오해
 구속에 대한 가장 위험한 오해는 구속을 수사의 도구로 여기는 태도이다. TV나 신문에서 종종 ‘○○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이후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라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대한항공 조○○ 갑질사건, 드루킹 사건, 김학의 별장 성폭력 사건 등)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는데 왜 수사가 난항을 겪는지 의문이 생긴다. 구속을 수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범죄행위나 공범에 대해 잘 진술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 할 때 일단 구속시켜놓으면 술술 잘 진술할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도 구시대적이지만 수사기관에게는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구속의 이런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들이 입증하고 있지만 굳이 연구할 필요도 없이 누구라도 며칠만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한다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까지 진술할 마음이 생기게 됨을 알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생각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수사관들은 잘 풀리지 않는 사건의 피의자를 일단 구속시켜서 원하는 답변을 듣고 싶겠지만 자칫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수도 있으므로 가장 경계하고 피해야 할 태도다. 문제는 수사기관에 의한 구속영장 기각사건을 보도하는 언론과 그런 언론보도를 다시 수사의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수사기관에 있다. 언론이나 수사기관 모두 구속의 본래 취지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위와 같은 구속에 대한 오해들이 만연하다보니 범죄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를 봐줬다는 오해를 하기 쉽다. 수사관은 쓸데없는 오해나 그 오해에 의한 민원을 사지 않기 위해서 피해가 큰 사건이나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일단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검사가 청구하지 않아서 또는 판사가 기각하여 구속하지 못했다는 책임회피의 마음이 없지 않다. 그러다보니 수사과정에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죄를 지었는데 왜 구속을 하지 않느냐는 비난은 수사과정에서의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구속이 되어야만 징역형을 받는 것도 아니다. 불구속 재판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면 법정구속이 되기도 한다.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오해, 죄 지은 사람은 구속된다는 오해, 수사를 잘 하면 구속을 잘 시킨다는 오해,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해야 수사가 잘 풀린다는 오해. 일상의 평범한 생활을 하는 시민들과 수사기관들이 구속에 대한 이런 다섯 가지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신도 약해질 것이다. 순수하게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재범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성에 대해서만 판단하여 피의자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 정도만큼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사기관 종사자들과 사건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사부터 구속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누구라도 신뢰할 수 있는 형사사법체계가 확립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사정기관을 장악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