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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추억들 생각 (윤영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2-20 15:27
조회
372

윤영전/ 평통서문예원장


 지난날 많은 추억들 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8남매 중 맏형이 제1회 졸업생이고 3년 사이로 선후배 동문이 되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조카들의 모교가 되었다. 오래 근무하신 선생님은 남매와 조카들 담임을 맡기도 하였다.


 6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리운 초등학교를 찾았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이기에, 학교 주변은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학교에 인접했던 도로가 2차선에서 6차선으로 넓어졌다. 하루에 6차례 지나가던 증기기관차가 한 세대 전부터 다니지 않게 되었다. 교사가 단층으로 6개 교실이었는데 4층의 50학급으로 늘어났다. 재학생도 10배나 증가해 빛고을에서 규모가 큰 초등학교가 되어있었다.


 내 학창 시절 모교는 광주에서 변두리 시골학교였다. 그런데 학교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살기 좋은 마을로 소문이 나면서부터 학교위상이 달라졌다.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광주 빛고을에서 유명세를 타더니 어느새 우수한 학교가 되었다. 입학과 전학을 오려는 경쟁이 심해져 자연스레 인기학교가 되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내가 공부하던 때의 교사와 운동장은 옛날의 배가 되었고, 운동장 주변 작은 나무들은 어느덧 큰 나무가 되었다. 교목이었던 나무는 교사 한가운데 있었는데 당시에는 내 품안에 쏙 들어왔었지만, 이제는 튼실하게 자라서 모교에서 제일 큰 나무로 우뚝 서 있다. 교사 외에 대형 강당과 연구실험실도 2동이나 늘어나 있었다.



사진 출처 - 구글


 모교는 남쪽으로는 태봉산, 서쪽으로 금당산을 낀 무등산 자락에 자리해있다. 산에 제일 높은 해발 6백 미터에 옥녀봉이 있었는데 자주 오르곤 했다. 그때는 너무 높아서 오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그리 높지도 않다. 왜 그렇게 높게만 보였을까? 아마 당시에는 어린 아이의 눈높이여서 그랬을 것이다.


 한 세대 전,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모교를 빛낸 동문회상을 받았다. 앞으로 모범이 되는 동문으로 거듭나고 모교를 빛내라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쉽게 실행되지 않아 마음의 빚으로 남았었다. 그런데 10년 전에 내 저서와 어린이 도서를 기증하며 그 빚을 약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9년 전에는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제16회 졸업생이라 인사하고 그간의 생각을 전했다. 비록 작은 성의지만 모교의 발전과 후배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마침 총동문회에서 졸업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는데 끊겼다며 반겼다. 효행학생과 우수학생에게 효행장학금을 수여하기로 하고 선발은 학교에 일임했다. 교장선생님은 언제 나의 6년간 생활기록표를 보았는지, 우등생으로 학내 독창을 하고 시․군 음악경연대회에서 독창과 합창으로 입상을 한 사실을 알았다며, 졸업식 날에 직접표창과 축하노래까지 부탁하였다. 피아노 반주는 음악선생이 맡아주겠다고 했다.


 지난해 모교의 졸업식 날, 식장에는 졸업생과 재학생 5백여 명과 졸업생 학부형 5백 명 등 1천명이 참석하였다. 강당이 비좁아 밖에 서서 졸업식 광경을 지켜볼 정도였다. 내 순서에 앞서, 교장선생은 특별히 효행장학생에게 표창을 하고 축하말씀과 노래까지 불러주실 모교 16회 대선배 되신 졸업생이라고 소개를 했다.


 큰 박수를 받고 등단해 간단한 인사를 했다. “내 사랑하고 그리운 효덕초교는 우리 8남매가 동문이고 내 생애에 많은 추억을 안긴 모교이기에 이렇게 달려왔다” 60년 전에 학예회 때마다 불렀던 독창을 오늘 빛나는 졸업식장에서 후배들에게 들려주려니 감회가 깊다고 했다. 박수를 받으면서 모교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마치 활동사진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입학식에서 교훈을 보았는데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였다. 그 교훈은 내 평생 배움을 독려 해주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전 어느 날 폭풍한설이 몰아쳐 그만 등교를 못 한 적이 있었다. 오후에 담임선생님이 학교로 나오라는 연락을 하셨고 교실에 갔다. ‘이런 정도의 날씨에 학교를 결석하다니, 책상 위에 올라가 손을 들라’는 벌을 내렸다. 무려 2시간을 손을 들고 있었는데 “배움을 게을리 하면 장래가 없다”며 호통을 치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자괴하면서 다짐했었다. 어떤 배움에서도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겠다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1학년 때 22살의 맏형을 잃고 방황을 하며 2학년을 맞이했다. 6.25전쟁으로 인해 아버지와 둘째형이 부역자가 되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이었다. 그때 맏형과 모교 1회 동문이었던 김종길 선생님이, 제자의 상처를 위로해 주셨다. 그때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마음이 새겨졌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지난 세월 나에게 슬픔과 기쁨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줄곧 우등상과 개근상을 탔다. 학예회 독창과 합창경연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소풍을 가면 노래를 불러 상으로 공책과 연필을 받았고 내내 쓰고도 남았다. 입학 전에 서당에 다녀 습자부장이었고, 개교 기념 글짓기에서 상을 받아 전체 조회에서 낭송도 했다. 그리고 학생회장이 되어 전체 조회에서 쩌렁쩌렁한 구령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전쟁으로 인한 가족사의 비통함이 크기는 했지만, 고학을 하며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하여 향학열을 불태웠다. 군 제대를 앞두고 전쟁과 평화를 생각하며 최초 월남파병에 지원해 살아 돌아왔었다. 민주화로 진통이었던 때에도 학업을 계속하여 서울대와 정부기관에 근무하면서 평화통일을 향한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모교 효행 장학생 표창은 벌써 10여 년째 이어가고 있다. 졸업반 1명씩 총10 여명에 효행 표창과 장학금을 수여해오고 있다. 효(孝)사상이 점점 잊혀가는 요즘, 효행 향학 장려는 분명 필요하다. 효학 정신은 사회와 가정에 귀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그리운 추억을 회상하며 효행장학을 계속 이어 갈 것이다.


  * 윤영전(尹永典) 아호: (九巖 孝崗) 당호: 전호당(傳孝堂) (二歡堂) 효행상 2회 수상
  서초문학상. 오마이공모 우수상. 국회민족평화통일상. 서예초대작가. 한국작가회 회원
  한국작가회 소설가. 한국문입협회 수필가. 한국서예, 전통서예 초대작가. 칼럼니스트.
  저서:소설집 (못다 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집(평화, 그 아름다운 말)
  수필선 (강물은 흐른다) 고희문집(인연, 아름다운 만남) 애창가곡집 (CD)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