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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과 인권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1-22 17:44
조회
7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수업하러 이층에 올라갔더니 내 학급 앞 복도에 반 아이들이 서 있다.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그 녀석이다. 수업 시작 타종이 울린 지 몇 분이 지난 시각인데, 왜 저러고 있을까? 더군다나 그 녀석은 가방을 들고 있다. 다가갔다. “광제 너, 왜 가방을 싸들고 나왔어?” “무기정학 먹으라고 하면서 싸들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누가?” “학생부 선생님들이요” “그래? 학생부 선생님, 누구?” “xxx 교련 선생님하고, yyy 체육 선생님하고......” “그래?! 들어가서 공부해!” 화가 났다. 아니, 이 놈들이 담임인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저거들 마음대로.


 1-1. 어제였다. 교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학교에서 가장 젊은 지학 담당 정 선생이 씩씩거리며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뒤로 우리 반 학생인 광제 녀석이 입에 피를 묻힌 채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못 본 채 ‘왜 저러나?’ 하면서 예의 주시했다. 정 선생이 책상에 앉는다. “그래? 내 강의한 것이 뭐가 틀려? 말해 봐” “선생님 강의가 틀렸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혹시 천정 정의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말했을 뿐입니다” “야이! 새끼야! 그게 그거잖아!” 고함을 지르면서 일어선다. 일어서면서 광제 녀석의 뺨을 친다. 맞고도 광제 녀석이 정 선생을 빤히 쳐다본다. 뺨을 맞고 나자 광제 녀석이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주변에서 말한다. “야! 조광제. 나가서 얼굴 씻고 와! 빨리 나가!” 그때였다. 광제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정 선생도 덩달아 소리쳤다. “너 이 놈의 새끼! 퇴학시키지 못하면 이 학교 관두겠어” 정면충돌이었다. 결국 광제 녀석은 얼굴을 씻고 학급으로 돌아갔다.


 문제의 지학 수업이 그날 마지막 수업이었다. 학급 종례를 끝낸 뒤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교무회의를 소집했다. “앞으로 학생들을 함부로 구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정 선생님은 연 이틀 학생을 감정적으로 구타한 것으로 보고가 되고 있으니 자중해 주시고요. 이상입니다”


 2. 고3 지학 시간이다. 선생님이 지구에서 하늘의 별들을 관측하는 일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하면서 판서를 해나갔다. 그러다가 뭔가 잘못된 양 강의를 멈추고서 판서 내용을 검토하는 듯 했다. 30초쯤 흘렀을까. 학생인 내가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말했다. “선생님!” “왜?” “혹시 저 맨 앞의 천정 정의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물들면서 깐깐하게 뭉쳐진 소리를 내뱉었다. “뭐! 뭐가 틀려! 이리 나와 이 새끼!” 나는 엉거주춤 교단 앞으로 나갔다. “이 새끼! 내 선생질 3년 넘게 하면서 니 같은 새끼는 처음 봐. 이리 와!” 교단 위에서 주먹을 냅다 내 얼굴에 내질렀다. 맞으면 별이 번쩍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한 번 주먹이 날라 왔다. 이번에 다른 쪽 주먹이었다. 나는 그의 두 팔을 잡았다. 말했다. “선생님 교무실에 가서 말합시다” “그래? 이 새끼!” 하면서 이제 뺨을 연거푸 때렸다. 나는 그냥 뺨을 내주었다. 그는 제풀에 지쳤는지 말했다. “들어가 있어” 그의 말대로 들어와 앉았다. 분하기도 하거니와 급우들에게 창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실 나는 건강이 안 좋아 휴학한 뒤 복학한, 1년 전만 해도 급우들의 한 해 선배였던 것이다.


 2-1.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교무실에 가서 끝장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씩씩거리며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의 책상 앞에 섰다. “그래, 교무실에서 말하자며. 말해봐!” “수업 처음에 천정을 말할 때 관측자의 머리 위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날 수업을 요약해서 쫙 말한 뒤, “이 대목에서 선생님께서 머뭇거리시기에 혹시 저 맨 앞에 천정 정의가 잘못된 것 아닙” 하고서 아직 말끝을 맺지도 못했는데, “뭐가 틀려!”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또 내 뺨을 쳤다. 선생님들이 나가서 얼굴을 씻고 오라고 다그쳤다. 그때 나는 크게 말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 조금 멀리 아래 책상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담임선생님이 보였다. 그때 그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 니놈을 퇴학시키지 못하면, 이 학교 관두겠어”


 2.2. 그 다음 날이었다. 두 번째 수업 타종이 울렸는데 반장이 학생부 xxx 선생님이 나보고 교련실로 오라고 한다고 일러주었다. 수업을 하지 않고 교련실로 갔다. 학생부 교사들 5인이 쿠션 의자에 마주 보고 둘러앉았다. 나를 가운데 나무의자에 앉혔다. “너, 어제 정호종 선생님이 강의하는 데 틀렸다고 했다면서” “틀렸다고 한 것이 아니라, 혹시 잘못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야 이 놈아! 그게 그거지” 나는 그들의 윽박지르는 전반적인 분위기에 상당히 압도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완전히 주눅 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다. “저 놈, 저 눈 봐 눈” 예사로 선생에게 덤벼들 수 있는 놈이라는 거였다. “너 때문에 어제 정 선생님이 교장선생님한테 얼마나 창피당한 줄 알아?” “……?” “책임질 거야, 안 질 거야. 너 같은 놈은 무기정학 먹고서 집에서 푹 쉬어 봐야만 선생님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그들의 허리쯤 높이를 쳐다보면서 빠른 속도로 생각했다. 학교를 그만 두자,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엘 가자, 등등...... “야 이 놈아. 왜 아무 말이 없어. 책임 질 거야 안 질 거야”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임지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지금 교실에 들어가서 책가방 싸서 나와!”


 2.3. 교실로 돌아와 일단 수업을 마쳤다. 나로서는 마지막 수업이라 여겼다. 끝난 뒤 반장을 불렀다. “교련실에 갔더니 학생부 선생들이 나보고 무기정학 먹으라고 하네. 책 보따리 싸오라고 해서 지금 나가려고” 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선생이 흥분해서 학생을 마음껏 치고 때린 건 데 무슨 무기정학이냐, 가만있으면 안 된다, 데모해야 한다 이거, 그 와중에 다음 수업시간 시작종이 울렸다. 일단 다른 친구들은 교실로 다 들어가고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나 세 사람만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저기 복도 중앙에서 다른 반에 강의하러 가시던 담임선생님께서 우리를 보시고는 우리 쪽으로 오셨다. “광제 너, 왜 가방 들고 있어?” “교련실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학생부 선생님들이 무기정학 먹으라고 하면서 가방 싸들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뭐!? 어떤 새끼가 그래!” “xxx 선생님 하고 yyy 선생님 하고” “그래? 알았어. 일단 들어가서 공부해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3. 그 뒤로 나는 학교를 무사히 잘 다녔고, 졸업도 했다. 지학 담당 정호종 선생은 두 달 쯤 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났다. 알고 보니 정식으로 발령이 난 교사가 아니었고 임시 강사였다. 나보고 무기정학 먹으라고 큰소리쳤던 체육선생 yyy와 교련선생 xxx는 나만 보면 못 본 척 피하는 것 같았다.


 4. 노망이 들면 오래된 일만 생생하게 남고 최근의 일은 재빨리 지워지는 법인가. 그리고 자꾸 옛일이 생각나는 법인가. 아무튼 43년 전 쯤의 일인데도 그 장면 장면들이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다. 무엇보다 교련실 학생부 교사들에게 잡혀갔을 때 들었던, “저 놈, 저 눈 봐 눈” 하는 말을 잊을 수 없다.


 “혹시 저 맨 앞의 천정 정의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고서 질문했을 때,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때 나의 눈빛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로서는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결코 그저 을의 위치에 있는 학생으로 비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1122web01.jpg사진 출처 - 한겨레


 

 학생은 결코 을의 위치에 있는 자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해관계 때문에 갑을이 임시로 정해지겠지만, 인간관계의 근본에 있어서 무슨 갑을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근본은 바로 눈빛에서 드러난다. 눈빛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인간됨의 타고난 권리를 표현하는 근원적인 위력이다. 바로 바라보는 눈빛에서 나의 존재가 건립된다. 따라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출발은 그의 눈빛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눈 안 깔아!”라고 해서 상대의 눈빛을 지우고자 하는 데서 인권에 반하는 일들이 시작된다. 눈빛이 인권이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 대해서건 모두의 눈빛이 부드러우면서 깊이 있게 살아있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알짜라 할 것이다.